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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Aug 01. 2024

여행은 장소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프, 로드트립, 성공적?

6:00 AM


정확히 딱 2시간 잤다. 이마저도 꿈을 꾸느라 렘수면까지 도달하지도 못한 채 눈만 붙였다 뜬 기분이다.  


샌프란까지는 일본인 5명, 이탈리아인 4명, 한국인인 나를 포함 총 10명의 인원이 2대의 차로 나누어서 출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홈스테이에 머무는 5명은 시모네가 픽업하고 나머지 4명이 나를 픽업한 후 근처 마트에서 집결하기로 했다.


어제와 같은 지프가 내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운전자와 동승자는 모두 다른 이탈리아 남자 일행들이었다.


H, Hi, how are you?


모두 초면이었다. 심지어 어학원에서조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얼굴들이다. 뻘쭘함에 가는 내내 인사 외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마트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다른 일행들도 도착했다. 두 번째 차량에는 유키와 시모네 포함 일본인 친구들이 탑승해 있었다.


“곤니치와, 와타시와 린 데스”


다행히 인사정도는 구사할 수 있던 탓에 영어대신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건넸다.


“Wow”


모두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놀라워했다. 한 마디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는 것보단 적어도 인사정도는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넌 지사 심어줘야 나의 입지나 존재감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1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핸디캡과 동시에 하루 전 급히 합류된 멤버이므로 자칫하다 눈칫밥만 먹다 올 수 있으므로 더더욱 나 자신을 지켜야 했다.


사실 내가 합류하게 된 데에는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정원이 채워진 상태라 내가 절대 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모네와 유키는 나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 일단 저지르고 본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당일 아침, 여자 일행 한 명이 갑자기 빠지게 되는 바람에 내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되며 정원이 딱 맞추어진 것이다.


온 우주가 도와 나를 이곳으로 이끈 듯했다.



각자 간단한 아침거리와 간식을 사기 위해 마트로 들어섰다. 딱히 당기는 게 없던 나는 커피만 테이크아웃 한채 밖으로 나왔다. 마트 앞 주차장에는 남자 일행들이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인 남자들 중 시모네를 뺀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흡연자였다. 그중 타케시와 료타는 상당한 골초였다. 특히 타케시의 첫인상이 다소 세고 강렬했는데 아무래도 그의 수염 때문인 듯하다. 이곳에 지내면서 마주친 남자들 중 수염을 기른 남자는 그가 유일했다. 작은 키에 날씬한 체형이 날렵한 이미지를 주었고, 인중과 턱에 조밀하게 나있는 수염이 전형적인 일본인의 이목구비를 연상시켰다. 내 또래이거나 연상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알고 보니 23살이라 한다. 나이와 다르게 성숙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샌프란까지는 나와 시모네, 유티, 료타, 시쿠 이렇게 한 팀이 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다른 팀에 속한 일본인 여자 친구 미유는 이탈리아인 루카와 커플이라더라. 우리 말고 또 다른 커플이 있다는 것에 한번, 그것도 5살 차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시모네가 운전대를 잡고 그 옆은 인간 내비게이션 겸 주크박스 역할을 해줄 시쿠가 탑승했다.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조수석을 꿰차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나중에 운전자가 교대될 상황을 생각하며 참았다.


우중충하던 산타바바라를 벗어나니 듬성듬성 구름이 떠있는 높고 푸른 하늘에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벌어진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적당한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무엇보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건 시시각각 바뀌는 창 밖 풍경,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을 지나면 어느새 거칠게 깎여져 있는 절벽들이 이어지고 그 옆으로는 푸른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Stay 틀어줘 Stay”


유키가 휴대폰을 보다 뭐라도 발견한 듯 벌떡 허리를 세우며 시쿠에게 말했다.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노래 Kid laloi Stay. 딱 지금 날씨와 풍경, 로드트립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차 안 가득 메워지는 멜로디에 흠뻑 취해 따라 부르며 한껏 텐션을 끌어올렸다.


세 시간 정도 달리자 시모네는 시쿠와 교대하고 뒷자리로 넘어왔다. 유키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우리,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힐 때마다 그의 시선이 오른쪽에 앉은 내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괜한 부끄러움에 눈치채지 못한 척 줄곧 창밖만 응시했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가운데 담을 두고 기웃거리듯,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장난스러운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오히려 가운데 앉아 있는 유키 덕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어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꼈다.



“Look at that!”


6시간 넘게 달리자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가 옅은 안갯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게 빛나는 다리가 안개의 장막 사이로 보일 때마다 신비로움이 감돌았다. 다리 아래에서는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미국의 상징인 붉은색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하지만 금문교가 선사한 감동도 잠시, 점차 다운타운으로 진입하면서 방금 느꼈던 감동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항구 도시와 골든 게이트 브리지, 그리고 빅 테크 기업들이 위치한 실리콘밸리 등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정갈하며 청량감을 물씬 풍길 거라 상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거리는 쓰레기로 어수선했다. 한쪽에서는 마약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대낮임에도 이곳은 찬란한 이미지와는 달리 어둡고 혼잡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슬슬 숙소에 대한 걱정도 커져갔다. 이미 도미토리라는 화려한 전적이 있었기에, 이제는 여행에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우선순위를 가질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같은 아시아인들이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가치관을 지니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걱정과는 다르게 이들이 예약한 곳은 호텔이었다. 연식은 좀 있었지만 서양풍의 앤틱함이 물씬 느껴져 나름 매력 있게 다가왔다. 일단 제대로 된 로비와 식당, 프런트 직원이 두 명이나 상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웬만한 구색은 갖춘 호텔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시모네, 우리 방 몇 개 예약한 거야?”


급하게 합류한 터라 호텔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 “세 개일걸 아마?”


일단 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시모네와 단둘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방 배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누가 우리랑 같이 쓰는 거야?”


- “모르겠어 나도. 미유는 당연히 루카랑 쓰고 싶어 할 테고...”


“유키는?”


- “사실 유키랑 썸인 듯 아닌 듯 애매한 사이인 애가 한 명 있거든.”


“누구???”


처음 듣는 소식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 “파비오.”


“진짜? 아까 아침에 픽업할 때 내 뒤에 탔었던 것 같은데, 아니, 대체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대? 유키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썸이라기보단 파비오가 일방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거에 가깝지.”


“Uh oh...”


- “거기다 유키는 또 미유랑 친하니까 같이 묵고 싶어 할 테고...”


“잠깐만, 그럼 각 방에 침대가 몇 개인데?”


- “그건 가봐야 알아.”


커플이 세 쌍이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방 배정에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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