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화해 모색을 위한 일본 탐방
"귀무덤"의 먹먹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돌아 "고려미술관"이란 곳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이번 새로운 남북화해를 모색해 보기 위한 비전트립의 핵심 방문지 중 첫 번째 방문지로 "정조문"이란 한 재일교포의 조국을 향한 일관된 사랑과 정체성을 묵묵히 자신의 인생으로 살아낸 흔적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단순히 학교 시험과 학력고사 시험용으로 암기하고 지나갔던 시대의 한 에피소드일 뿐이라 생각했었는데, 조선과 일본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죽일 듯 싸우기도 했지만, 양국이 서로 화합하고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당시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애썼던 흔적으로서의 분명한 역사적 기록이고 흔적이었음을 다시금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던 자리기도 했었습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정조문"이란 분과 그분의 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느껴진 것은, 일본의 선진문물을 살펴보는 정 3품 관료인 할아버지와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정조문"선생님은 본인이 힘들게 일본에서 부대끼며 살아갔지만, 조국을 향한 마음이 남달랐고, 조국을 향한 안타까움과 열정도 크셨을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 재일교포들이 많이 행하던 '파친코' 사업가로 일평생 벌어들인 사재로 고려와 조선의 문화재들을 일본사람들과 여러 경매들을 통해 구입해 당시 일제강점기에 노예처럼, 부족한 나라 백성 취급을 받은 재일조선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또 우습게 보는 일본 사람들에게 뛰어난 문명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보이시려고 애쓰시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노력하다 돌아가신 그의 인생은 비록 덜 알려지고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살아생전에는 받으시지 못하셨을지라도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평생 한 개인의 피와 땀이, 조국을 향한 소망과 간절함이 구석구석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뜻을 같이 하는 일본인 지식인들과 아드님이 그 뜻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 "고려 미술관"을 보존하고 지키며 널리 알리려 애쓰고 살고 계심을 들으면서, 이렇게 타향에서 소시민들도 이렇게 조국의 화해와 평화의 회복을 위해 일생을 애쓰며 살아가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런 이들의 수고와 땀방울이 당장 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이렇게 방치되어 있구나 싶어 서글프고 속상한 마음이 올라와 참 안타까웠습니다.
정조문 선생님의 아드님과 여러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정조문 선생님의 유언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문화재는 통일된 조국에 기증해 다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는 "당신은 조선사람이며 남과 북이 분단된 어느 곳도 내 조국이 아니기에 조국이 다시 통일되면 그때 조국으로 가겠다"라고 하시며 조국의 통일을 고대하고 기다리다 그렇게 영면하셨다고 하는 내용을 들을 때, 오기 전에 사전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이 먹먹하고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그는 통일된 조국을 소망하다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남과 북이 갈라서 있고 서로가 서로를 더 미워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개탄하시겠는가 싶어요.
일본 아베 전 총리 때 적극적으로 추진되었고 역사교과서 왜곡시도를 통해 2010년대 전까지는 일본 교과서에 "조선통신사"와 그 의의에 대해 소개했던 내용들이 지금은 한 줄도 명기되지 않고 있다며 아드님이신 "정희두"선생님은 속상해하셨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일본 역사교과서에 이 "조선통선사" 부분을 복원해 한일이 전쟁과 다툼의 시간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화해를 위한 이 창구를 놓치지 않았던 역사의 노력들을 일본 다음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그 열정과 노력이 다시금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하며 고려박물관 여정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