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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좋은 점 2. 조급함에 먹히지 않아 좋아요.

바쁘다 중소기업 기획부서

by 청개구리씨

오늘은 제조분야 중소기업 기획부서에 나이 든 아저씨로 합류해서 편해진 점 두 번째로 "조급함에 먹히지 않아 좋아요"라는 화두로 글을 써 내려가보려 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대표이사가 되거나 임원은 돼야지 같은 야심은 없었던 거 같아요.


돌아가신 어머님이 고생해서 저를 키워 주셨고, 아버지 사업 뒷바라지 때문에 너무나 고생이 많으셨었기에 어머니께서는 제가 번듯한 직장인으로, 남들과 같이 가정을 이루고 조용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어찌어찌하다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어머님이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이 부분은 제가 우리 사회가 한참 발전하던 흥왕기 끝물이라 부족한 실력에 비해 운이 좋았던 거 같아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대기업에 오래 다닐 생각이 들어갈 때부터 없기는 했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니긴 한 거 같아요. 그리고 운과 시기가 따라서 대기업에 입사하기는 했지만, 전혀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항상 똑똑한 동기들과 선배들, 직장 동료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부족한 제 자신을 잘 알다 보니, 딱히 꼭 이기려는 것보다는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애쓰고 노력하며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뒤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이었지만, 회사의 인사 시스템과 프로세스, 문화는 혼자 알아서 잘하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이런저런 캠페인과 비교,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아갔었고, 저도 사람인지라 이왕 하는 거 "굳이 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라는 마음에 더 마음 졸이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둥바둥 그렇게 살 때도 많았던 거 같아요.


물론 그 덕에 아주 잘 나갈 때도 있었지만, 앞만 보고 피 말리며 달려가던 때에 아내와 아이들을 외롭게 내버려 두기도 했고, 어머니가 암판정을 받으시기 전까지 언젠가 좀 더 잘 되면 어머니 모시고 여행 가야지 하고 미뤘다가 영영 모시고 가지 못하는 후회를 남겼던 거 같아요.


그렇게 달려가다 급브레이크를 만나 20여 년간 쌓아오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 "0"이 되는 순간을 만나기까지 그 조급함과 몸부림은 멈춰지지 않았던 거 같아요 ^^;;;

(이때 내용들은 아직은 표현하지 못할 거 같아서 ^^;;; 언젠가 좀 더 나이 들면 다뤄 볼께요~)




이렇게 제 의지가 아닌 다른 여러 이유들과 상황들로 급 브레이크를 겪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이만 5학년이 되어버렸더라고요 ^^;


감사하게도 그렇게 다 잃은 그때 이후로도 중소 IT기업과 디지털기업, 지금 중소 제조회사에 기획부서를 맡아 이렇게 현역으로 아직도 일하고 있네요. ㅎㅎ


그리고 그렇게 중소 제조회사에 다니게 되다 보니, 여기도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도 많고 나이 든 엔지니어들이 죽어라 말도 안 듣고, 젊은 친구들은 우리 때랑 너무 다르네요. ^^;;;

이런 환경에서 뭔가 결과들을 만들고 일을 풀어가야 하는 부분에서 여러모로 힘은 듭니다만, 마음 자세와 여유가 과거와는 참 다르게 살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엄청 심각한 고민들도 들어보면 저도 만만치 않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지라 한발 떨어져서 삼촌처럼 조언해 줄 수 있고, 죽어라 말 안 듣고 고집 센 나이 든 아저씨 엔지니어들도 몇몇을 제외하곤 저보다 어리다 보니 기분 안 나쁘게 존댓말로 응대하다 보면 특별히 선을 넘지 않는 한 맞춰 주는 게 어렵지 않게 된 거 같아요.


예전엔 그렇게 마감에 쫓길 때 마감까지 어떻게든 아둥바둥 맞추려고 난리를 쳤었는데, 요즘은 조금 길게 보면서 약간 늦어져도 제대로 결과를 만드는 방식으로 경영진을 설득하고 풀어나가는 부분에서도 좀 더 여유 있게 대응이 가능해진 거 같아요.


뭐 아직 예전 선후배들 중 더 좋은 조건으로 잘 나가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이들을 보면서도 부럽거나 엄청난 야망이 솟구치지 않네요 ^^


요즘은 회사 다른 직원들 보다야 늦게 퇴근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일찍 퇴근합니다. ^^

집에 가서 아내가 챙겨놔 준 식사를 하거나 가볍게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하고 가족력인 치매 예방을 위해 영어, 일어 단어 공부하는 앱으로 (자꾸 까먹어서 자괴감은 들지만) 꾸준히 하고 스도쿠도 하고 가끔 아내와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다녀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저는 "0"이 되었던 사람이기에 딱히 노년의 대비 같은 건 국민연금 정도 외에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하루하루 감사하며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뭐랄까요? 여러가지로 빡세고 험난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마음과 눈에 긴장과 욕심을 좀 내려 놓고 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줄 수 있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마음과 기반이 생긴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보니, 저희 회사에서 저 이래뵈도 제법 직원들에게 신망 있는 아저씨로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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