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 16 화요일)
korea garden 레스토랑에서
케냐에서 학교 사역을 하고 계시는 네 분의 선교사님들을 한식당에서 만났다.
2007년부터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윤희창 목사님은 남편이 사망한 후, 아들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었다. 고인이 된 남편이 박민부 목사님의 친구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김주경 사모님과 박목사님이 이들 선교사님들을 챙기는 마음이 더 남다르게 보였다. 케냐에 오신 지 10년이 되었다는 박경림 선교사님 부부,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각각 전공하였고 이곳에서 음악사역을 하고 있다. 몸바사에서 4년 사역을 하고 나이로비로 왔다고 했다. 지금은 선교 단체를 돌아가며 5개 학교를 방문하여 가르치고 있다.
코리아 가든에서 오랜만에 한식 불고기 뚝배기로 점심을 거뜬히 먹었다. 오늘 점심은 박민부 목사님이 대접해 주셨다. 감사 감사해요~~! 오후 일정이 약간 변경되었는데 일단, 선교사님들이 강추하는 곳으로 정했다. 영화 아웃 어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카렌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기린 먹이 주기 체험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기린은 어제 암보셀리 사파리 투어하면서 실컷 봤는데 뭐가 새로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가서 체험해 보란다. 그런데 정말 대반전이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대단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기린센터 (Giraffe Centre)
기린 센터는 영국인 조크레슬리 멜빌 부부가 멸종 위기에 있는 로스차일드 기린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보호 센터다. 당시 케냐에는 120마리도 남지 않았던 기린들이 이곳에서 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보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멸종 위기종 보호뿐 아니라 환경 교육의 장으로 운영되고 있고, 자연보호 교육도 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는 기린 먹이 주기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 별생각 없이 왔는데 의외로 많은 투어 차가 서 있고 표를 끊으려고 줄을 서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매표소를 통과해서 데크로 들어갈 때 직원이 나눠주는 기린 먹이를 받아 가면 된다. 펠렛이라고 하는 건초 알갱이다. 둥근형태의 데크 위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데크 아래쪽에는 엄청 큰 키의 기린 서너 마리가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막상 먹이를 주려고 하니 겁이 났다. 기린의 혀가 가까이 오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직원이 다가와 먹이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기린의 혀에 살짝 얹어 놓으라고 조언해 준다. 제대로 먹이를 주는 방법을 배우고 나자 먹이를 먹으러 고개를 돌리는 기린을 내가 따라간다. 날름날름 받아먹는 모습이 엄청 귀엽고 사랑스럽다. 각각의 기린에게 이름이 붙여져 있었지만 외우기 힘들어서 하나의 이름만 부르면서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기린에게 먹이를 먹이는 그 짜릿한 감동은 직접 해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 나는 우리 고양이 예삐에게 먹이를 먹이 듯 정성 들여 입안에 넣어 주었다.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는 내내 내 마음이 얼마나 큰 감동으로 벅차오르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기린의 혀에 먹이를 올려놓는 일은 서로의 타이밍을 잘 맞춰야 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어느새 기린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척 척 박자를 잘 맞췄다.
기린의 혀는 생각보다 훨씬 길고 탄력이 있고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다. 쌍꺼풀진 눈은 선해 보이기 그지없다. 이름을 부르면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돌린다. 먹이통이 바닥을 드러냈는데도 한 녀석이 목을 길게 빼고 먹이통에 긴 혀를 집어넣더니 바닥을 쓰윽 핥고 간다. 우리는 폭소를 자아냈다.
"너, 벌써 나랑 친해진 거야"~~!!!
아웃 어브 아프리카 카렌 블릭센 박물관
아웃 어브 아프리카는 실제 인물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고, 영화는 1985년에 제작되었다. 카렌 블릭센 역에는 메릴 스트립, 데니스 펀치 해튼 역에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았다. 메릴 스트립은 카렌의 지적이면서도 고독한 매력을, 로버트 레드포드는 자유롭고 카리스마 있는 데니스의 매력을 훌륭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주 오래전이지만 영화를 관람한 적 있다. 그때는 아프리카에 대해 알지 못했던 터라 지금과 같은 공감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케냐를 다녀온 후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케냐를 경험하고 난 후 다시 본 아웃 어브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카렌을 생각하며
배경은 케냐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과 붉은 흙먼지 속, 덴마크 출신인 여류 작가 카렌은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귀족이다. 막연히 아프리카를 동경해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함께 케냐로 와서 커피 농장을 경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사냥에 몰두하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고, 그녀는 이방인으로, 케냐의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며 점점 독립적으로 변해간다.
그러던 중 사자의 습격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이때 연인인 데니스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사냥꾼 데니스 펀치 해튼과 운명적인 만남은 사랑으로 깊어지지만 현실적인 제약과 각자의 선택 속에서 애틋한 형태로 남게 된다. 한편 커피 농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의 노력과 용기로 유지되며, 카렌은 케냐에서의 삶을 통해 사랑, 자유, 자연, 인간의 관계를 글과 편지 속에 아름답게 기록한다. 커피 농장에 화재가 나게 되면서 결국 덴마크로 돌아가지만 케냐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읽은 데니스에 대한 추억은 평생 그녀의 마음에 살아 숨 쉰다.
영화 아웃 어브 아프리카는 자유롭지만 애절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방인이 케냐에서 겪는 삶의 기록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면 일행을 안내하여 설명해 주는 담당자가 지정이 된다. 우리는 먼저 넓은 정원에 전시된 농기구들을 둘러본 후 카렌이 살았던 집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안타깝게도 사진이 없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색감이나 모양 등이 매우 훌륭해 보였다. 어디를 봐도 귀족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실내에는 카렌의 인물 사진, 책장, 사파리용 모자를 쓰고 사냥하던 모습의 사진이 있다. 카렌의 우아한 방과는 대조되는 남편 방에는 작은 침대와 총이 썰렁한 분위기로 놓여있다. 두 방의 분위기가 마치 이들 부부의 소원해진 관계처럼 보인다.
데니스가 카렌에게 선물한 볼펜과 야외용 전축, 그리고 나침판은 영화에 복선처럼 깔린 의미가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줄거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결혼 생활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아프리카의 멋진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 음악을 듣고, 나침판으로 인생의 길을 찾으며,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수 있을 거라는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싶다.
후문으로 나가 정원을 가로지르면 커피콩을 블랜딩 하던 곳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볶은 커피콩을 마대에 퍼 담고 있는 열정적인 카렌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꾼들과 하나가 된 여주인의 인내와 도전정신이 묻어나는 한 장면이었다. 커피콩을 볶는 둥근 통로에는 몇 마리의 원숭이가 놀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더니 얼른 통 안으로 몸을 숨긴다.
연인 데니스의 장례식 장면에서 자작시를 낭독하던 카렌의 모습이 떠 오른다. 그녀는 끝내 데니스의 관 위로 한 줌의 흙을 뿌리지 못했다. 그 흙을 손에 쥐고 언덕을 내려가는 그녀의 등 뒤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데니스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숨 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 40년이 지났지만 사바나의 일몰과 초원을 찾아 이동하는 누우 떼의 모습과 장엄한 자연의 풍경들이... 그리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애잔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케냐의 추억 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