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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서 킬리만자로까지

( 9/ 15 월~ 9 /16 화 )

by 시인의 숲


암보셀리 국립공원


공원 입구


암보셀리는 케냐 남동부 탄자니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작은 국립공원이다.

나이로비에서 약 230킬로미터, 차로 4~5시간이 걸린다. 암보셀리는 마사이(Maasai) 언어로 "먼지 나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운이 좋으면 탄자니아에 있는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다.

나이로비를 출발한 지 네 시간쯤 되었을까. 창밖으로 붉은 흙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붉은 망토(쇼카)를 걸치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사이족을 지나간다.




아쉬웠던 1차 투어~



동물도 나른한 듯 보인다



나는 사실 이보다 더한 짜릿함을 기대하고 있었다.

TV에서 본 것처럼 차량 가까이에 동물들이 다가오는 그런 것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아직까지는 특별할 것이 없는 너무 평범한 투어다. 이게 사파리 투어라고~!!! 내심 적지 않은 실망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바나 지대, 하늘은 더없이 파랗다. 초원을 달리는 차량 사이로 뿌연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때로는 회오리바람처럼 기둥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전이라 그런가 얼룩말을 제외하고는 동물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드문드문 보이기는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다. 우리는 마치 동물 찾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차를 타고 가다가 코끼리만 보여도 와!!! 와 얼룩말만 보여도 소리를 질렀다.


이 광경은 뭐지?!!!

순간, 눈을 의심할 정도로 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자 서너 마리가 세 군데로 나뉘어서 초원에 앉아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부근 초원에는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이었다. 사자는 마치 등 따시고 배불러서 더없이 필요한 것이 없어 보이는 평안함까지 묻어난다. 아무리 봐도 무슨 기회를 노리고 있거나 하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사파리의 오랜 풍경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그때 최성희 팀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는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여기까지 왔을까. 재네 들을 잡아먹을까. 아니, 혹시 사자에게 먹이를 따로 주는 것 아냐, 동물원처럼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지"

어찌 보면 너무 엉뚱한 생각 같아 보이지만 그땐 정말 그런 의문이 들었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의 모습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정말 의아했다.




암보셀리 세레나 사파리 로지


2차 투어를 기다리며
세레나 호텔표지판, 원숭이를 쫒는 붉은 망토의 직원과


국립공원 내에 있는 숙소는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객실을 비롯해서 수영장, 기념품관등이 있었는데 나는 무엇보다 원숭이를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새총 같은 것을 가지고 원숭이를 쫓는 시늉을 하고 있는 청년에게 물어보았더니 여기 오는 원숭이가 한 백여 마리가 된다고 한다. 2차 투어가 시작되는 4시에는 원숭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고 한다. 어쩌면 원숭이들도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알아놓고 먹이를 구애하는지도 모르겠다. 표지판에는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나는 객실의 창을 통해서건 밖에서건 원숭이를 만나면 그냥 반가운 것이다.


점심을 먹고 최성희 팀원도 합세해서 호텔 이곳저곳을 투어 했다. 우리는 기념품 가게도 둘러보고 망원경을 통해 사파리가 펼쳐놓은 사막도 보았다. 그리고 그네도 타 보고 잔디에 앉아 사진도 실컷 찍었다. 우리 부부 사진을 재밌게 찍어 준 덕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다.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을 햇빛과 풀밭과 바람과 더불어 보냈다. 너무 예쁜 도마뱀이 있어 한 컷 찍었다. 이런 색깔의 도마뱀은 르완다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본 가장 멋진 모습이다. 사람이 옆에 가도 놀라지 않는 걸 보니 꽤나 익숙한 모양이다.




2차 투어~~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파리 차량 탑승 시간에 맞춰 사람도 몰리고 원숭이도 몰렸다. 담벼락과 길에서 정말 많은 원숭이를 보았다.

오전 투어를 할 때 실망했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탑승을 했다. 그런데 마음을 비워서일까! 오후로 가는 사파리 풍경은 오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정말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동물이 우선이다. 사파리 차 앞을 얼룩말이 지나가고 기린이 지나간다. 차량은 동물이 다 지나갈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정적을 울리면 안 되고 동물들을 놀라게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사파리 차량의 열린 지붕 사이로 일어서서 보면 동물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사바나의 동물들


무리가 섞여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한낮 초원에는 코뿔소와 얼룩말이 기린과 물소, 누우, 버펄로, 톰슨 가제, 독수리, 개코원숭이... 등이 그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덩치가 크거나 작은 동물들이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서로 다툼이 없이 평화스러워 보이는 저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저녁으로 가고 있는 시점에서 본 동물들의 모습은 또 달랐다. 낮에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었다면 저녁에는 줄을 지어 어딘가로 향하는 듯하다. 마치 사람들이 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저녁 풍경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동물들도 밤이면 자기의 거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둑한 기운이 내리는 초원을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밑바닥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기분이다. 그것은 어떤 외로움이라고 해야 될까. 그래서 윤지영 팀원은 함께 오지 못한 아내를 생각했던 것일까..!!!. 엄마 코끼리와 아빠 코끼리 다리 사이에서 걸어가던 아기 코끼리의 모습은 여느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저녁 석양을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코끼리 가족
사파리의 석양




석양이 지고 이렇게 2차 투어가 끝나가는가 싶었다.


어둑한 길을 가다 말고 사파리 차량이 문득 멈춰 섰다. 쉿~!!!

저기, 저기~~ 운전기사가 가리키는 쪽에는 덩치 큰 사자 한 마리가 서 있다. 차량과 사자와의 거리는 불과 50미터 정도의 거리.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올 것 같은 긴장감이 들었다. 운전기사는 차량을 아주 조심스럽게 후진했다. 그리고 뒤에 오는 차량에게도 손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일단 사자와 차량 간의 거리를 확보하고 숨죽이며 적막감이 도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지금, 사자는 풀숲 더미 근처에 있다. 드디어 사자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걸까.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는 얼룩말 한 마리가 보인다. 그리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또 다른 얼룩말 두 마리가 걸어오고 있다.


허탈하게 돌아서 가는 포식자의 뒷모습



가장 숨막혔다!!

얼룩말이 가까이 올수록 아... 너무 떨리는 순간이었다. 사자는 풀숲으로 살며시 몸을 숨긴다. 우리는 포식자의 침묵을 지켜보고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어떻게 될까? 잘 지나갈 수 있을까.!!! 정말 다행하게도 앞서 오던 얼룩말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또 두 마리의 얼룩말이 그 앞을 지나가도록 사자는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덤벼들 틈을 끊임없이 노렸겠지만 세 마리의 얼룩말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사자는 얼룩말이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저 벌판으로 뛰어갔다. 또 다른 먹잇감을 향해 갈 것이다. 한 낮의 평온했던 들판과 달리 동물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눈앞에서 보았다. 포식자의 뒷모습을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희미한 사자의 모습과 황량한 사막과 어둠의 조화가 사파리의 진짜 밤풍경일 것이다.



뒤늦게 인사를 하는 하마, 투어차에서 찰칵


투어를 마칠 즈음 되니 물속에서만 있던 하마가 뭍으로 올라와 인사를 한다. 바로 눈앞에서 독수리가 벌판에서 무언가를 낚아채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았고 또 특이한 이름의 새도 보았다. 시크리터라고 불리는 새는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 뒤에 볼펜을 꽂고 있는, 비서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킬리만자로가 보인다


다음날 아침, 킬리만자로는 드디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곤한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 거대한 몸을 구름 속에서 일으키며 사파리의 종착역처럼 덤덤히 앉아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라도 건질 수 있었으니 우리의 투어는 정말 기대 이상이라 해도 되겠다. 각자의 마음속에 큰 선물 하나씩 담아 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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