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그립다
이삿짐을 거의 옮기고 나니 텅 빈 집에서 우리는 난민처럼 생활해야 했다. 최소 며칠은 그렇게 버텨야 했다. 먹을 양식도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모두 보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날씨가 추워서 베란다가 냉장고 대용을 거뜬히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미리 르완다에서 있을 생활의 일부분을 연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입자가 들어 올 날짜는 아직 멀었다. 집 안 곳곳을 손 봐야 하는 일도 남아있다. 안방 화장실의 낡은 문짝을 새로 달아주고 베란다 창고에 무너져 내린 선반을 새로 짜서 넣었다. 벽에 있던 곰팡이를 제거하고 페인트를 칠 할 수 없는 곳에는 시트지를 붙여 깨끗하게 정리했다. 오히려 내가 거주하고 있을 때보다 남에게 집을 세 놓는데 더 손이 많이 갔다. 아, 이것이 주인의식이구나. 우리 집이라는 인식이 이렇게 남다를 줄이야! 미처 몰랐다.
네 개의 캐리어 가방에 그것도 23킬로에 맞춰 짐을 싸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편은 본인이 즐겨 쓰던 모니터와 본체를 가지고 가고 싶어 했다. 그것은 캐리어 가방 하나를 거의 차지했다. 뽁뽁이로 싸고 또 싸서 그 부피가 대단했다. 노트북 2개와 비상약. 의약품등이 한 가방을 차지하고 간단한 기념품, 우리의 옷 가지들, 식료품을 넣었다. 게다가 브리타 정수기, 3인용 압력밥솥, 드라이기, 핸드다리미등을 넣어야 했다.
저울에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씩 반복하며 짐을 쌌다. 막판에는 가져갈 식재료를 덜어내야 했는데 그것이 르완다에 가서 새록새록 생각날 줄이야! 비비고 볶음김치가 더욱 그랬다. 기내로 가져가는 가방 두 개와 백팩도 그대로 통과되었다. 7킬로라는 무게를 달았다면 영락없이 돈을 더 지불해야 했지만 말이다.
2024년 1월 4일 새벽 12시 30분 늦은 출국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것들을 엄마네 집으로 옮겼다. 사람이 머물다가는 자리에 무슨 짐이 이토록 많은 것인가! 부랴부랴 차려주신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팔순 노모의 눈빛을 보며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그 눈물은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자꾸만 반복되었다.
그 절정은 야옹이의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응하며 커지던 야옹이의 검은 눈동자와 마치 내게로 내밀 듯 하얀 팔을 쑥 내밀던 모습,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휴지로 눈물을 찍었다. 몇 번이고 마음은 울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는데 울컥울컥 쏟아지는 눈물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사랑하는 야옹이 울 예삐가 딸에게 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야파트 길냥이 쿠키를 좋은 캣맘이 돌보게 되어서 안심하고 떠난다. 마지막 쿠키를 보러 갔을 때 쿠키는 앞 발까지 들어 올리며 정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쿠키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엄마가 다시 왔을 때 너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었지만 또 마음이 아플까 좌 미루고 미루다가 얼굴 한 번 보고 가려고 찾아갔던 아파트 정자아래 쿠키를 두고 돌아오면서 진한 눈물을 흘렸다. 안녕 쿠키!
막상 비행기에 오르니 모든 것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 눈물은 나지만 몇 번이고 마음을 싸잡아 본다. 남편은 코이카에서 마련해 준 이코노미석에 앉아있고 나는 그 훨씬 앞자리인 일반석에 앉았다. 옆에 앉은 사람은 흑인과 중국인인 듯하다.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식사도 맛있게 먹었고 자리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계속 울어대는 쌍둥이 아가의 울음소리도 익숙해졌다. 흑인들은 아기가 울어도 달래지 않고 스스로 그치도록 기다린다. 그것이 우리네 부모와 다른 점인 것 같다. 앞에 앉은 흑인 부부는 인내심이 많고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 개구쟁이 두 아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돌본다. 그들과 가끔 까꿍 놀이를 하며 몸이 힘들지 않게 짬짬이 스트레칭을 했다. 가운데 자리였지만 화장실도 자주 들락거렸다. 누군가 귀띔해 준 대로 말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11시간 30분 비행하여 이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르완다까지는 2시간 40분 정도가 걸린다. 환승시간이 긴 편이다. 핸드폰 충전이 한쪽 벽에만 설치되어 있어서 코드를 꽂아놓고 의자에 앉아 있다.
나는 또다시 비행을 할 것이고 그곳에서도 가끔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움의 자리는 떠난 자와 남아있는 자나 다 같은 몫이어서... 출산을 앞두고 엄마의 빈자리가 생각날, 큰 딸 정선이에게 태명처럼 가득한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