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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Feb 20.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3화

나는 이렇게 두려움을 극복했다

이리 봐도 검고 저리 봐도 검은 피부들. 때로 나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긋 쳐다볼 때 그때 비로소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현지에 빨리 적응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거의 한 달 반 정도 살았는데 그동안에 참 많은 것을 배웠다. 


1.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면 내 마음을 바꿔라.


나는 가끔 우울이라는 늪이 두려웠다. 그 늪에 빠졌을 때 누군가 던져 준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말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꼈다. 참 이상도 했다. 아무것도 달라진것 없고 단지 그 말이 내 마음에 닿았을 뿐인데 온 몸에 새로운 피가 도는 것 같았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 말에 힘입어 나는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려고 노력했다. 한 달안에 대충이라도 훑어가자. 일단 목표를 정했다. 남편이 Nirda(국가 산업연구 개발기관)에 출근을 하고 나면 나의 르완다 살아가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일단 거창하게 표지 제목을 붙여봤다. 왜냐하면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이 과제를 수행하듯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름 성과를 기대하여도 좋았다. 


르완다에 와서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MoMo 페이를 쓰는 유통방법이었다. 마트 결제는 물론 개인 간의 거래나 세금 등을 모두 이 방식으로 한다. 아프리카 거의 지역이 이런 결제 방식을 쓴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다. 르완다 도착 첫날 핸드폰 개통과 함께 충전된 30,000프랑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기에 어쩌면 내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가 이것이었다. 게다가 현금으로 결제 시, 때로 잔돈이 없다며 잔금을 거슬러 주지 않기 때문에 빨리 습득해야만 했다. 


2. 하루에 한 번 무조건 집을 탈출하라. 


탈출하라는 표현은 집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집이 나를 가두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집에 묶인 것인지 생각해 보라. 나는 오전에 두 시간 정도를 글 쓰는 시간에 바친다. 글을 쓰려고 왔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글 쓰는 일에 시간을 헌사한다. 그리고 나면 마치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외출 준비를 한다. 모자, 선글라스, 그리고 우산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고지대의 특성상 비는 수시로 내린다. 지금 햇빛이 비췬다고 해서 잠시 후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 그러다가 비를 쫄딱 맞고 처량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Let's go!  외출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가차 없이 문을 박차고 나올 것, 이것저것 생각하고 미루다 보면 몸이 나른해져서 소파에 앉고 싶고 금세 저녁 할 시간이다. 


처음 시도는 심바(Simba) 슈퍼마켓을 통해 이뤄졌다. 마트를 방문하는 일이 마치 나의 일과인 것처럼 이곳은 나의 르완다 살아남기 프로젝트의 배경이 된다. 마트에 갈 때마다 나는 메모를 한다. 오늘 사야 할 물건을 정하고 또 혹시 내가 해야 할 대화의 내용을 영어로 연습한다. 바깥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어렵기 때문에 모든 준비는 집 안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한꺼번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사야 한다. 왜냐하면 마트와 집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상당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션은 쇠고기 안심을 사는 일이다. 르완다는 닭고기 값이 더 비싸고 쇠고기가 저렴한 대신 육질이 질기다. 그래도 그나마 안심은 부드러워서 먹기 좋다는 말을 들었다. Beef tenderloin, please  >라고 메모를 한다. 몇 번이고 발음을 들어보고 따라 해 보고 외우는 것이다. 쇠고기 안심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마트 점원이 내 얘기를 잘 못 알아듣는다. tenderloin을 못 알아듣는다. 나는 하는 수없이 매장에 펼쳐 놓은 고기를 눈으로 대충 훑어보고 가장 부드럽게 생긴 하나를 지목한다. what's this? 하고 물으니 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무조건 okay! 한다. 그리고  One 키로 하면 다 소통이 끝난다. 어느 정도의 중량인지도 모르고 나는 또 1킬로 한다. 아니지, One 키로!!!


소고기는 다 비슷하겠지 일단 먹어보고 판단해 보자. 미역국을 끓였더니 맛이 괜찮다. 국 끓이고 볶아서 먹고 이만하면 되겠다 싶어서 몇 번이고 똑같은 쇠고기 부위를 사 먹었다. 감자 몇 개와 당근 몇 개 이렇게 내가 들고 올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계산해야 한다. 절대 무게를 오버하면 낭패다. 땡큐! 인사를 건넨다. 


집에서 연습했던 문장들을 한 번이라도 써 본 날에는 왜 그리 자신감이 돋는지. 나름 성과가 있었노라고 또 내일의 주문을 예약하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쇠고기 안심을 Beef Fillet라고 부른다. 나는 얼른 메모지에 필렛!!!이라고 적는다. 다음에는 이렇게 주문해야지. 


그리고 계산대 앞에서 자주 긴장을 한다. 바코드가 찍히고 총액이 나오면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매대에 적힌 번호대로 눌러도 실패할 때가 있다. 그러면 직원이 직접 눌러준다. 그럴 때는 당황하지 않고 나는 외국인이라서 잘 몰라서 그러지~~라는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 된다. 나도 언젠가는 잘할 수 있겠지!!! 결재가 다 되면 핸드폰에 결재 내역과 남아있는 잔액이 뜬다. 이렇게 결재했던가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내 기억력과 손의 감각을 믿으며 기록 한 번 남겨볼까.  

*182*8*1*007745(계산대번호는 각각 다름)*결제금액#통화버튼--핀번호--결재됨


3. 무조건 부딪쳐라 


이 말은 겁먹지 말라! 라는 말과 통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빨리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나 스스로에게 있다. 르완다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의 짧은 시간 속에서 내가 당차게 느낀 것이다. 언제까지나 남편의 손을 의지할 수도 없는 일!!! 비켜나거나 돌아가지 말고 일단 부딪치자.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의 소규모 재래시장과 인근 상가 밀집 지역 


이사 온 후부터는 차츰 행동반경을 넓힌다. 심바 마트에서 이제는 근처 버스 터미널 쪽으로 눈을 돌린다. 현지인들이 몰려있는 상가가 몰려 있고 매우 혼잡한 곳이다. 작지만 재래시장도 있다. 잘 차려 놓은 대형 마트와는 달리 그들이 펼쳐놓은 과일이나 채소들은 하루하루 한 끼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몫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나는 그들과 값의 흥정을 한다. 똑같은 과일을 놓고도 부르는 값이 서로 다르다. 


길 가까이에 있는 곳보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구입하라는 말이 떠올라 나도 저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로 간다.  600프랑, 망고 가격을 양심껏 부른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두 개를 집어 든다. 그러자 그 옆에서 또 나를 툭 툭 친다. 사과도 사라하고 파인애플도 사 가란다. 


4. 어디서나 마음은 다 통한다. 


영어를 통 알지 못해도 걱정 없다. 젊은 호객꾼이 와서 다 통역을 해주고 저울을 달아주고 계산을 척 척하니까. 키가 크고 예쁘게 생긴 르완다 아주머니는 나와 말도 안 통하는데 한참 웃었다. 상인들의 짧은 언어와 나의 짧은 언어가 용케 교감을 한다. 내가 건넨 현지 언어 한 마디 해야겠다. 낭가애(얼마예요?) 망고 두 개 천 원에 준다. 나도 손이 즐거워서 가지도 사고 그린 빈도 샀다. 그런데 너무 자잘한 마늘을 언제 다 까나!!! 가방이 무거울 거라는 생각도 잊고 너무 많이 담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모페이를 충전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내 핸드폰 번호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작은 메모지 가장 앞쪽에 커다랗게 적어 놓았다. 충전할 때면 먼저 메모를 보여주고 금액도 적어서 보여준다. 그래야 확실할 것 같아서다. 이제, 혼자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물론 늘 가는 심바 마트 안에 있는 커피숍 겸 레스토랑이다. 몇 번 마음먹었다가는 그냥 돌아오기를 네댓 번은 반복하고 나서 생긴 용기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잠시 앉아있겠노라는 표현도 한다. 점원이 건네는 배려의 한 마디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yourmind!. 어디서나 마음은 다 통한다. 


5. 내 마음은 내가 다스린다. 


아파트 청소하는 분들의 즐거운 오후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를 보내며 똑같은 일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지금 이 시간이 내일은 추억이 될 것이기에. 오늘 말씀 한 장을 필사하며 마음을 새롭게 다져본다. 지금 마당에서는 현지인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싸움이 난 줄 알았는데 큰 소리로 웃는 걸 보니 아니다.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데 집에 생기가 돈다. 작은 먹거리에도 감사함을 표하는 저들의 손, 그 검은손에 나의 양식을 나누어 주며 르완다의 삶을 이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디서나 삶이란 이렇게 주고받는 정이구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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