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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Mar 01.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6화

나를 가둔 것은 바로 나였다. 

한 겹 방충망 사이로 안과 밖이 경계가 되기도 한다. 



홀로 있던 집을 탈출했다. 일단 계획은 성공이라고 해야겠다. 

일주일에 두 번은 밖으로 나가 글을 쓰기로 했다. 이곳은 고도 1,520미터 높이에 있는 주변 카페다. 내가 유일하게 맘 편히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것과 테이블마다 콘센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웅장하리만큼 커다란 나무가 마당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올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진다는 것이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남편과 나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대단하네를 연발하면서 탄성을 지르며, 굵은 나무 밑동이 붙었다느니 하나라느니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 무언가를 수 있다는 것만큼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 있을까. 

노트북을 들고 철대문을 밀면서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이렇게 뿌듯한 걸까. 아직 아무것도 담은 것이 없는데 마치 오늘 일을 담아놓은 완벽한 행복을 느낀다. 나도 여기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노트북의 무게가 오히려 마음의 알곡을 심는 것처럼 당당한 걸음을 걷게 했다. 


BASO 카페에서 


앞이 탁 트인 테이블을 찾아 앉는다. 밤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집들을 마주 본다. 태양 아래 붉은 지붕을 훤히 내다보이고 있다. 산비탈에 들어 선 저 많은 집들 중에 함석을 얻어 놓은 지붕과 아스팔트 끝에서 흙길이 시작되는 내 어릴 적 그 골목 같던 집들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흙길을 만나면 경계 하나 사이로 신발에는 먼지가 뒤덮인다. 그 좁은 골목골목을 가다 보면 약수동 꼭대기 계단 많던 집이 생각나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쪽을 택한다. 

고국이라면 카페의 안쪽 구석을 즐겼을 텐데 여기서는 조용함도 아니고 분위기도 아니고 사람 냄새나는 곳을 찾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활기를 함께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앉은자리 왼쪽에는 흑인 여자 두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고, 오른쪽에는 흑인 남녀 커플이 햄버거로 식사를 한다. 군복을 입은 멋진 군인 둘이 왔다 가고 백인 남자는 핸드폰에 푹 빠졌다. 내 뒤로 중국 남자가 컴퓨터를 연신 두드리고 있다. 마당에서 백인 여성 둘이 즐겁게 수다를 떤다. 목소리가 아주 가늘고 고음의 웃음을 웃는다. 그러나 귀에는 방해가 아닌 즐거운 수다로 들린다. 


나를 방해하는 건 태양 속에서 빛나는 수풀의 움직임과 맘껏 지저귀는 저 새들뿐이다. 바로 눈앞에서 매나 독수리 같은 새의 날갯짓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들이 카페 울타리에 앉아 있다. 방금 창공을 힘차게 올라 날개를 맘껏 펼치고 돌아온 당당함이 르완다의 기백처럼 묻어있다. 


나는 카페라테와 치아바타를 주문한다. 거의 주문이 똑같다. 치아바타는 가격도 크기도 맛도 담백해서 선호하는 빵이다. 달랑 하나 남은 이 빵을 주문한 것으로 나는 꽤 만족하며 5,800프랑(6천 원 정도)을 지불한다. 봉지에 담아서 건네준 빵 두 조각을 접시에 올려놓는다. 마주하는 사람이 없을 뿐,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외로움이라 치부하지 말아야겠다.  


오후 2시 10분. 

한낮인데도 바람이 선선하다. 눈을 잠시 감았는데 바람이 피곤한 눈을 부드럽게 만져준다. 피부에 닿는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위로 밀어붙인다. 나는 카페 앞쪽에 앉아서 들고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기 있게 들여다본다. 방금 모자를 쓰고 개를 데리고 온 백인 여성이 벤치에 앉았다. 그녀가 쓰고 있는 모자가 카우보이 모자라는 것, 그리고 사전 같은 두꺼운 책을 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개와 주인이 한 폭 그림처럼 어울린다는 것. 여전히 보이는 것만 보면서 그녀를 읽고 있다. 


빵을 씹는데 바삭거리는 것이 함께 씹힌다. 이곳에 살다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며 먹는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어느 정도의 글이 완성되었는가 싶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 허전하다. 하나 둘 사람들이 왔다 떠나 간 텅 빈 테이블이 고즈넉한 풍경처럼 앉아있다. 간간이 들리는 남은 자들의 대화에도 나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고요함 속에 젖어 있다. 오히려 들리지 않는 것도 감사하다. 



아프리카 땅에 뚝 떨어져 내린 후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문 한 번 열고 나오는데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을까. 나를 가두는 것은 바로 나였다. 방충망 하나 사이로 안과 밖의 경계가 그어졌다. 어둠을 벗겨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촘촘한 새로 밖을 내다보면서 오후로 기울어지는 해를 보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또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분다. 

바람은 어찌 알고 꽃잎을 미리 떨어뜨리며, 

숲은 어찌 알고 저리 흔들리는지 

구름은 또 어찌 알고 자신의 색깔을 무채색으로 바꾸는가. 

나는 또 어찌 알고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나 때맞춰서 집으로 돌아왔는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나는 내일의 생기를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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