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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Feb 23.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4화

멈춘 그 자리에서 해가 솟더라~!

새벽을 누구보다 먼저 깨우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남편이다. 그의 질주를 여기서도 누가 막으랴. 서울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그의 달리기는 계속된다. 



어느 날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 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날 내가 먼저 함께 뛰자는 제의를 했다. 르완다 날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낮이 되면 덥고 게다가 수시로 비가 오니까 새벽 운동이 좋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새벽잠이 많아서 빨리 일어나지 못한다. 뭉그적뭉그적 한다. 새벽에 나가는 우리를 위해 집사인 피델리는 일찍 대문 열쇠를 열어 놓는다. 아직은 캄캄한 정막에 잠든 하얀 철대문이 열리고 집 앞에서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춰 간단히 체조를 한다. 


새벽 운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인이다. 매번 보는 인도 사람은 혼자 체조를 하고 달린다. 외교관 가족인 백인 여성은 커다란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한 백인 여자는 달리기 선수처럼 머리에 띠를 하고 열심히 달린다. 어느새 우리는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Hello! 는 낯선 마음을 이어준다. 집에서 출발한 지 1. 5킬로미터 정도 지났을까.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본다. 잠시 멈춰 선다. 구름을 걷어내며 떠오르는 해, 하루의 삶이 저토록 강렬한 것이구나! 


그야말로 발걸음을 붙잡고 꼼짝할 수 없는 모습은 장관이다. 불쑥 몸을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구름과 바람과 함께 둥둥 보조를 맞추며 떠오른다. 아, 이 모습, 전에 문학기행 때 숨죽여 보았던 새벽 바닷가의 풍경이다. 살아가면서 문학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방향의 전환점을 얻었다. 문학 회원들과 함께 봉사하고 함께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먼 곳에 와 있어도 힘이 된다.  


정원 담벼락에 올라 하루하루가 다르게 환한 꽃이 핀다


한 회원의 카톡을 받고 가슴이 울컥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 집 담벼락에 핀 꽃 사진을 찍어서 보내자, 활짝 웃는 나의 모습과 닮았단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좀 익숙해졌는지 안부를 묻길래, 나는 "여기는 갈 때도 없고 아는 이도 없다며 외로움에도 익숙해진다"라고 했다. 그녀는 문학 회원들과 함께 봉사할 때마다 매번 맛있는 반찬으로 우리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매달 봉사가 있는 날이면 여럿 회원들이 함께 어울려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손길로 하나가 되었었다. 김치찜에 밥 해주고 싶다는 그녀가 보내온 글을 보면서 그만 눈물이 났다. 너무 고마워서.


거리는 백만 리~ 
마음은 곁에,  
김치찜에 밥 해주고 싶다요.




조깅하는 나의 모습,  조깅하다가 알게 된 르완다 주재 교황청대사관과 직원, 르완다 스타일의 파격 남자로 변신한 남편


생각 차이 

나는 같은 길을 가는 게 편한 반면 남편은 매번 조깅하는 코스를 바꾼다. 때로 이런 의견 차이가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또 아침 준비를 해야 하고 남편은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데 긴 코스를 잡거나 언덕이 많이 있을 때에는 힘에 벅차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남편은 어제와 다른 길을 택해서 가고 싶어 한다. 나는 뛰기도 전에 또 오늘은 어디로 튀려나. 살짝 걱정이 된다. 


남편은 여행을 갔을 때도 그랬다. 새벽에 달리기 하느라 길을 어렵게 찾아온 적도 있었고, 갑자기 정전이 되어 길에 갇히는 아찔한 경험도 했었다. 남의 땅에 와서도 이렇게 하다 보니 르완다 지리에 엄청 밝다. 현지인들이나 알만한 골목골목을 어찌 알고 저렇게 잘 다니는지 나는 깜짝 놀란다. 벌써 지름길도 알고 샛길도 섭렵했다. 샛길을 발견한 건 대단한 일이다. 이제 동네 마켓에 갈 때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오늘 길 하나 건졌다. 


그런데 오늘 잡은 코스는 좀 긴 것 같다. 이슬람 사원이 보이더니 야미람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곳이 이슬람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그곳이구나. 마치 우리의 시골 읍처럼 그런 모습의 동네라 정겹다. 거리를 두고 마주 늘어서 있는 간판들 속에 이발소도 있고 우리가 찾던 드라이 세탁소도 있다. 음식점과 작은 커피집도 여럿 보인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걸어간다. 벌써 버스 앞에도 몰려 있고 모토가 부지런히 거리를 누비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한가롭게 뛰고 있는 우리가 괜스레 미안해진다. 


새벽 5시 45분 출발해서 집에 들어오니 7시가 훌쩍 넘었다. 마음이 급해지는 시간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먼 곳까지 와서 힘은 들긴 하는데 드라이 세탁소를 발한 건 대박이다. 안 그래도 세탁할 양복이 있어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번 주말 가는 길에 이발소도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머리를 가위 하나로 내가 잘라 줬는데 아무리 봐도 정리가 잘 안 된 것 같아서 찝찝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꺼번에 고민했던 일들이 금세 해결된 것 같아서 큰 수확을 거둔 것 같았다. 남편은 내 손에 자꾸만 머리를 맡기고 싶어 하는데 나는 사실 자신도 없고 머리 깎아 본 경험도 없는데 어쩌랴. 그래도 괜찮다는 남편에게 그러지 말고 머리를 자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내가 잘못이었던가!!! 


평소에는 내 말을 잘 안 듣는 남편이 오늘은 웬일로 즉각 실천을 했다. 점심시간 무렵 남편에게서 영상으로 카톡이 왔다. 세상에~~ 벌써 이발을 했다. 그것도 완전 르완다 스타일로!!! 분명 조금만 잘라달라고 했다는데 이발기(바리깡)로 밀어 버렸던 것이다. 가까이에서 남편의 두상을 이렇게 자세히 보다니... 르완다 사람들 두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편의 두상도 이만하면 썩 괜찮다. 르완다에서 말하는 보스 같다. 보스는 주인, 책임자 그런 뜻으로 쓰인다. 머리를 짧게 했더니 자신이 이제 외국인이 아닌 것 같단다. 이제 점점 르완다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남편을 기념하며 사진 한 컷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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