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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Mar 08.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8화

대숲이 울면 엄마 생각이 난다

마라무췌!!!(굿모닝)


우기가 시작되려는 조짐인가. 하루 건너 비를 뿌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난다. 어제의 비 때문인지 오늘 날씨는 지금은 쾌청하다. 집 청소하는 아리스에게 침대 커버 세탁을 부탁했다. 요즘은 날씨 때문에 가급적 빨래를 적게 할 수 있도록 옷을 여러 번 입는다. 잘 못하다가는 덜 마른빨래를 집 안에서 계속 말려야 하는 낭패를 본다. 오늘은 예상대로 빨래가 금방 말랐다. 침대 커버를 아주 깔끔하게 씌워 놓고 finish! 하며 아리스가 돌아갔다. 


이제부터 나는 내 시간을 온전히 갖는다. 방금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대숲 가지들이 수북한 잎을 비비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 뾰족한 부분보다는 둥글둥글하게 펼쳐진 대숲의 모습은 쿵쾅쿵쾅, 걸음을 내딛는 고릴라를 연상케 한다. 대숲이 주는 웅장함 때문인지 화면을 통해서 고릴라의 모습을 상상해 보더라도 몸집과 아우라는 대단하다. 집 정원까지 큰 팔을 뻗어 내릴 것 같다. 


나는 지금 집안이 주는 한계를 벗어나고 싶어 창문 밖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작은 응접탁자가 오늘은 카페가 된다. 슬슬 감기 기운이 와서 외출하려다 말고 눌러앉았다. 생강 끓인 물에 레몬을 넣고 꿀을 섞은 진저 차를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대숲에서 연상되는 고릴라의 모습을 르완다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고릴라 커피, 고릴라 호텔 등... 그런데 호텔이름이 고릴라라니!!! 듣기만 해도 정겹지 않은가. 얼마 전 고릴라 호텔 대문과 벽에 그려진 고릴라를 보고 사진을 한참 찍었다. 이웃나라 우간다나 콩고와 같이 넓은 서식지를 이루고 있다니 아프리카 땅에 있는 한 고릴라 투어는 꼭 해볼 생각이다. 아프리카 르완다, 이 얼마나 대단한 땅 인가. 


언젠가 동영상에서 본 고릴라의 모성애가 생각난다. 고릴라 투어를 하던 중, 관람객이 안고 있던 아가에게 고릴라가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결국 아가 손을 투명 유리에 대주자 고릴라는 아기 손을 잡고 싶어 계속 유리 쪽으로 손을 향했다. 사람과 같은 생각과 행동과 보호본능이 있음을 알고 난 뒤, 더욱더 친밀감이 들었다. 


길에서 자주 만나는 고릴라 형상


대숲이 있는 세 갈래 길 언덕이었다. 마트를 가기 위해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서 따뜻한 눈빛을 가진 고릴라와 만났다. 방금 수유를 끝내고 앉아있는 엄마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젖의 유선이 돌 때면 젖가슴이 얼마나 팽팽해지던가. 그것을 아기가 힘껏 빨아주고 나면 젖가슴은 축 처지지만 몸은 시원함을 느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기는 왼쪽 젖가슴을 빨며 한 손으로는 엄마의 오른쪽 젖가슴을 만지작만지작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도 엄마는 힘겨움보다는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울 것이다.  


아기는 여전히 엄마의 젖가슴을 한 아름 안고 있는데 방금 젖꼭지에서 입을 뗀 듯하다. 양 볼로 살짝 들어 올린 입꼬리가 여전히 입맛을 다신다. 낯선 이방인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자 약간은 수줍은 듯한, 약간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여차하면 엄마 뒤로 숨을 수도 있을 자세를 취한다. 아가에게 손을 내밀자 아가는 자기의 손을 뻗는다. 


내가 그 손을 잡으려고 하면 또 슬쩍 뒤로 가져가고 또 잡으려고 하면 뒤로 몸을 뺀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엄마의 한쪽 팔에 안겨 더없이 편안한 모습이다.  엄마의 살갗과 아가의 살갗이 마주 한다는 것만큼 강한 사랑의 전달력이 있을까. 아이를 타이르고 얼르고 안아주는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엄마만이 알 수 있는 모성애를 저들에게서 느낀다. 


도심을 벗어나 길을 가다 보면 길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르완다의 아낙을 볼 수 있다. 르완다는 대중교통수단이 있긴 하지만 걸어가는 일이 많고 보니 이런 풍경이 이상할 일도 아니겠다. 더위를 피해 풀밭이나 나무 그늘에 앉아 옷을 걷어붙인다. 이 모습은 너무 자연스럽다.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그녀 또한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르완다의 엄마들은 예전 우리 엄마들의 모습처럼 등에 아이를 업고 포대기를 맨다. 때로는 한 손으로 아이를 들어 자기 허리춤에 붙이고는 걸어간다. 검은색이 주는 강인 함이랄까 에너지가 좋아 보인다. 아기를 허리춤에 안고 있는 고릴라 엄마도 위험 시에는 아기를 덥석 안고 뛸 것이다. 끈끈한 모성애를 함께 느끼며 바라보면 어느새 동질감을 갖는다. 



움직임이 둔해졌나 싶더니 대숲이 저들끼리 또 부딪는다. 밖에 있는 가지들을 꽉 붙잡아 주고 있는 나무의 밑동, 수많은 밑동이 깊이 뿌리내려 대숲을 이루었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이겨내고 한 겹 한 겹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본다. 인내를 이겨내고 쑥 쑥 키를 키운다. 벗겨진 갈색 허물은 커다란 새의 날개 같다. 길거리에 떨어진 것을 주워서 곁에 올려놓는다. 여럿이 모여 하나를 이룬 대숲은 장관이다. 


고국에 있는 나의 엄마도 나를 저렇게 품어서 길렀고, 나도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딸을 저렇게 애지중지 젖 물려 길렀다. 그리고 나의 딸도 또 그렇게 내리사랑을 할 것이다.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갑자기 이서방과 네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났다"라는 엄마 말을 듣고 밤잠을 설쳤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온전한 사랑을 내가 받을 수 있겠는가. 대숲에서 바람이 울면 자꾸 엄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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