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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Mar 26.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21화

사랑아, 며칠만 더 있다가 가거라~~!!!

떨어진 꽃잎들은 보도블록 위에 융단을 깔아 놓았다. 

방금 전까지도 나무의 눈이 되고 귀가 되었던 흔적. 

지나가는 발소리에 귀를 쫑긋 거리다가 누군가와 눈 맞춤이라도 했을까^^

햇볕이 쨍한 날이면 눈부신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누군가의 마음에 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꽃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 얼마나 아름다운가~! 


툭하면 비바람이 요동치는데도 여전히 나무에 꽉 붙어 피어있는 꽃들은 대단하다. 

그 단단한 결심이 눈에 들어와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꽃이 야무지게도 붙어 있었거나 아니면 나무가 꽃을 절대 보내지 않으려 의기분투했거나, 

나는 공연히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비 온 뒤 거리에는 꽃잎이 이야기처럼 분분히 흩어져 있다. 

발끝에 차일까 봐 나는 꽃잎을 피해 듬성듬성 걷는다. 

노랗고 빨갛고 보랏빛 꽃잎들이 날개를 퍼덕이다 멈춘 자리,

어느 소설 속에서 본 듯한 소녀의 깨알 같은 웃음이 들어있다. 

종소리 모양의 꽃을 따라서 귀 기울이면 내가 명랑해진다. 



길에서 꽃잎을 주울 때면 선택받지 못한 것들에게 미안하다. 시든 꽃잎보다는 더 생생한 꽃잎들을 걷어 올리는데, 여기요~~ 하며 저마다 여린 손을 뻗는 것 같다. 무엇이나 선택받은 얼굴은 행복하다. 손바닥에 놓인 꽃잎들이 서로서로 기대 빈 공간 없이 행복이 꽉 차 보인다. 행여 꽃잎 다칠세라 조심조심 모으니 손바닥이 둥글어진다. 확실히 행복은 세모가 아니라 동그라미가 맞다.  


접시 위에 물을 넣고 나란히 꽃잎을 올린다. 물에서 미끄러져내리는 꽃잎들, 아예 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 도무지 낯선 곳에서의 한때에 익숙지 않다. 꼭대기에서 위를 올려다보았거나 거리를 내려다보기만 했을 테니 이해를 해야겠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는 누구나 서툴다는 것을 여기서도 배운다. 나는 꽃잎을 살짝 들어 올려 방향을 잡아준다. 나란히 자리를 잡아주니 점차 움직임이 잦아든다. 타고난 저들만의 색이 더 선명해진다. 그렇구나 사랑은 어떻게든 자신의 빛깔을 알아주는 것이구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은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왜냐하면 한 번도 그 자리에 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프리카라는 먼 땅에 와서 모든 것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상이니 얼마나 많은 헛발질을 하고 있을까. 공중에다 땅에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다... 그래도 헛발질을 해봐야 단단하고 무름을 파악할 수 있으니 그 또한 필요한 것이다. 결코 두려움이 없기를. 흩어진 꽃잎의 마음처럼 생각이 많은 날이다. 



사랑아~~ 며칠만 더 있다가 가거라!!! 

애지중지 다시 피어나는 꽃, 나는 이 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 집에 와서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랑!!!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결국 꽃의 날개는 접힐 것임을.  

꽃의 흔적은 잊힐 테고 언젠가 떨어진 상처 위에 꽃은 다시 필 것임을...

삶은 잊히고 소멸되고 다시 생성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이 짧은 단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곡해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냉철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속에 나를 함부로 빠트려서도 비하해서도 안 되는 것. 관대함이나 포용함을 나를 위해 잠시 접는다 해도 괜찮다. 경계를 허물며 받아들였던 날들을 추억의 서랍 속에 쟁여놓더라도 나는 나로서 인격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사랑은 완성이 없단다.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다. 완성이 없다는 것은 완성을 위해 계속 진행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선에서 생각을 접는다는 뜻도 있겠다. 성숙보다는 미성숙의 단계를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얘기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애매모호한 일이다. 초등학교 때 짝꿍을 좋아했던 첫사랑에서부터 마음속에 다녀간 사랑의 발자국들을 들여다본다. 표현하지 못하고 보낸 나의 사랑의 시간들. 어리석게도 추억의 사랍은 왜 자꾸 열리는 것일까. 


무슨 신파극 같은 얘기 같지만 사랑은 눈물이다. 요 며칠 동안 통 입맛이 없어서 살이 빠졌다는 엄마!!! 서울 같았으면야 전복죽 후딱 해서 달려갔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만 달려간다. 거의 매일 톡을 드려도 매일 그러신다. 밥 잘 먹으라고, 아프지 말라고~~ 그런데 나는 또 훌쩍인다. 다른 어떤 사랑보다 피붙이의 사랑은 진짜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사랑은 살아갈수록 깊은 맛이 느껴진다. 아무 조건 없이 주신 그 사랑을 내 것인 양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다.  


사랑은 그 말의 뉘앙스에서부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랑하고 발음을 하면 마치 단어에 동글동글한 바퀴가 달린 듯 가슴속으로 무언가가 미끄러져 들어오지 않는가. 어떤 때는 덜컹거리다가도 어떤 때는 매우 부드럽게 가슴에 안긴다. 너와 나의 사랑이 맞물려 잘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바람 속에서나 있는 법, 그런데도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미련의 날개가 있어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여전히 삶의 주변에는 사랑의 소재가 가득하다. 



꽃이 떨어져 내린 자리에서 또 꽃은 필 것이다. 더 아름답고 더 화사하게 피어날 거라 꿈꾸는 한 그렇게 될 것이다. 이상은 멀리 있지만 내가 끌어당기면 당겨올 테니, 꿈을 꾸는 한 나는 생명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열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사랑이 없으면 마음이 닫히고 입조차 닫히는 법이다.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랑의 자리를 아직도 나는 온전히 메꾸지 못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랑이다. 



그런데 여기 진실로 사랑을 완성하신 분이 계시다. 

자신의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기까지 온전한 피붙이의 사랑을 주신 분!!! 

그분은 나의 예수님!!!

나는 그분으로 인해 상처에서 꽃이 피었다. 

2024 3. 26 (화) 고난주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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