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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pr 02.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22화

밥이 주는 의미

밥, 밥, 밥!!!

남편은 밥에 대해 애착이 많은 사람이다. 새벽밥을 30년 넘게 짓다 보니 나의 첫 시집이 알려주듯이 <밥에도 표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압력밥솥 돌아가는 소리가 늘 새벽을 깨웠다. 새벽예배를 다녀오면 온 집안에 훅 끼치던 밥 냄새 그렇게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다. 밥솥이 숨을 뿜어내며 맛있는 밥이 되듯이 밥알이 훌훌 섞여 모난 것들이 둥글어질 때 한 솥밥 그득 윤기 나는 밥이 지어진다. 힘들었던 일상을 밥상머리에서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모든 가정이 다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밥을 먹으며 익어가는 가족 간의 사랑이 그리울 때가 있다. 힘들어도 옹기종기 모였던 그때가 그립고 또 사랑스럽게 보듬어주지 못했던 그때가 늘 아쉽다. 지나고 보면 사랑을 전하는 것은 쉽다면 쉬운 일인 것을 조급함을 조금 더 내려놓을 것을 하는 후회를 한다. 사랑을 더 많이 채워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선뜻 시간을 내주면 되었던 것을 말이다. 너무 많은 잣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먼 땅에 와서 다시 새겨본다. 


식사같이 할래요~!!!라는 말은 마음에 닿기만 해도 정겹다. 


르완다가 경상도만 한 땅덩어리라더니 3개월 있는 동안 뜻하지 않게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캄캄한 밤에 건넸던 인사 한 마디에 인연이 닿기도 했다. 굿 이브닝~~!!! 당연히 중국인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와 묻는다. 한국인이세요!!! 남편이야 르완다식 짧은 머리에 얼굴도 둥글둥글 누가 봐도 딱 중국인 같아 보일 텐데,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한국 사람 같더란다. 아마 나의 정확한 한국식 영어 발음에 기인한 건 아닐까 싶다. 거리에서 한국 사람을 처음 봤다면서 얼마나 얘기가 진행되는지  한 집 건너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먹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분을 저분도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반갑다. 이렇게 해서 또 한 분의 교수님이자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식사 자리도 두 번이나 초대를 받았다. 다음에는 우리가 대접하겠노라고 날짜를 잡아 놓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둘째 딸과 나이가 같은 그녀가 있다. 오늘 카톡의 짧은 대화 속에서 반가움이 느껴졌다. 요 며칠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점심을 같이 먹을 생각을 했다. 갑자기 떠 오른 생각을 잘 붙잡은 것 같다. 언젠가 그냥 흘려버린 생각들에 대해 후회를 할 때도 있었다. 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고 시간은 정말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 언제 밥 먹어요~~!라는 말은 너무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오늘 당장 실천하기로 한다. 


오늘의 메뉴는 온전히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야 감자수제비를 비롯해서 마트에 가면 흔히 살 수 있는 것이 많지만 르완다는 사정이 다르다. 수제비를 만드는 데 마땅히 그릇이 없어 큰 냄비에 밀가루를 넣고 반죽을 한다. 양을 조절하는 것은 매번 어렵다. 밀가루 반죽을 넉넉히 해서 한 덩이 또 들려 보낼까. 에구 나는 또 엄마표 극성이 발동한다. 이거 가지고 갈래? 하면 그녀는 확실하게 대답할 테지. 아니요, 저도 해 놓은 게 있어요~^^라던가. 네 감사해요^^하던가. 요즘 젊은이들은 대답이 확실하다. 


한알 육수 두 개를 넣는다. 많은 양을 가져오지 않아서 아끼는 것이지만 맛있는 국물을 내기 위해서 기꺼이 두 알을 투척한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자매 입맛을 위해 고추장을 풀고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 푹 끓인다. 국물이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감자를 듬성듬성 썰어 넣는다. 마침, 어제 장 보기를 잘했다. 무엇보다 감자가 넉넉해서 많이 넣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지난번에 자매가 가져온 매콤 육수 한 개를 아껴서 쓰고 냉동실에 넣어놓았는데 마지막으로 탈탈 털어 넣었다. 매콤한 냄새가 부엌에 진동할 무렵, 그녀가 빼꼼히 문을 열고 나를 부른다. 에구 이렇게 해야 얼굴을 보네~~!


반가운 얼굴이다. 나는 얼른 냉장고에 숙성시켜 두었던 밀가루 반죽을 꺼낸다. 약간 진 듯한데 냄비 바닥에 붙지 않고 떨어지는 걸 보니 또 괜찮게 된 것도 같다. 사실 나는 밀가루 반죽을 잘 안 해봐서 영 자신이 없다. 부엌살림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매번 서툴다. 그렇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선택한 것. 일단 국물이 잘 우려 나서 맛이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감은 적중했다. 국물 간 보는 것은 그녀의 몫으로 남긴다. 


맛있다고 입맛을 다시는 그녀의 칭찬을 듣자 마음이 부푼다. 역시 칭찬은 사람의 기분을 업 되게 한다. 더 맛있게 해 주고 싶다. 어느 정도 국물이 잘 우려나 팔팔 끓고 있는 냄비 앞에서 함께 납작 납작하게 반죽을 뜯어 넣는다. 좀 더 되직하게 만들 걸 그랬나 싶다. 뜯어 넣고 보니 전처럼 납작하지 않고 약간 두툼하다. 이만하면 많을 것 같은데도 나는 또 뜯어 넣고 또 넣는다. 저어 보면 왠지 작은 듯하다. 많이 먹이고 싶은 엄마 욕심인가. 국물이 조금 진하게 보일 때까지 끓인다. 그래야 더 맛이 난단다. 그녀 의견을 존중^^


진짜 얼큰하다. 짙은 국물과 쫄깃쫄깃하게 잘 익은 수제비. 약간은 도톰하지만 씹으니까 구수한 맛도 난다. 수제비는 역시 감자가 맛있어야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르완다 감자 맛!!! 한국 가면 이런 맛을 못 느낀다니까 실컷 먹어둬야겠다. 르완다는 모든 요리에 감자가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브런치나 로컬 식당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감자튀김이다. 각종 음식에 곁다리로 잘 나온다. 


엄마표 수제비와 양배추 김치


그녀도 한 그릇, 나도 한 그릇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그래도 냄비에 아직 조금 남았다. 사진 한 컷 찍어야 했는데 깜박하고 잊었다.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인 수제비가 빠지면 안 되지 싶어서 식어버린 수제비라도 찍어서 올렸다. 청소하는 아리스를 부를까 하다가 오늘은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만두기로 한다.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계획된 일들은 잘 되고 있는지 점심을 나누면서 얘기를 한다. 계획한 일이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얘기를 해주니 고맙다. 이 먼 곳에 봉사단원으로 와서 일하고 있는 기특한 그녀,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면 그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 가면 봉사단원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의 삶을 곁에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현지 언어를 배우고, 저마다의 기관에 적응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만만치 않음을 듣는다. 서로의 경험담과 고충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교회 예배가 끝나고 식사 시간에 나눌 수 있으니, 역시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주 배불리 점심을 먹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양배추 김치를 나눠주었다. 심심하게 담았으니 신 것을 원하면 식초를 약간 넣으면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행복한 뒷모습을 보니 오늘은 내 맘이 더 두둑해진다. 우리는 함께 사랑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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