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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pr 09.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23화

길이 아닌 듯한데 길이더라~!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딘가에 푹 빠졌다 온 느낌이다. 왕복 11킬로를 걸었고 온몸이 뻑적지근하다. 햇볕에 노출된 부위가 데었는지 따끔따끔하다. 남편의 목덜미는 시뻘거니 익을 대로 익었다. 르완다 현지인의 마을로 가장 깊숙이 들어간 본 날이다. 수도인 키갈리 외곽이라지만 너무 현저한 빈부의 격차가 눈앞에 보여서 마음이  짠하고 이것이 르완다의 현실이구나 싶다. 그동안 나의 시야는 지금까지 너무 국한되어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라 응원차 집을  일찍 나섰다. 어지간한 거리는 도보를 이용한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다. 괜히 비싼 택시요금을 지불할 필요도 없고, 외국인이라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기사와 실랑이 벌일 필요도 없다. 남편이 신뢰하는 구글 앱만 있으면 된다. 게다가 앱이 가장 가까운 단거리를 알려주고 있다니까 남편의 호언장담을 철떡 같이 믿고 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앱이 우리를 아주 친절하게 그 장소에 데려다 줄줄 알았다. 그런데 어라, 정말 난감한 일이다. 앱이 멈춘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참을 걸어왔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나는 순간 짜증이 올라온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냥 알고 있던 길로 가지~~" 


초행길이 갑자기 혼란스럽다. 길 헤매고 있던 박자문관님을 만난 것은 서로가 다행이다. 앱이 다시 가르쳐주는 길은 현지인 마을을 관통해야 한다. 황톳물이 흐르는 개천과 판자촌 마을, 좁은 길을 오르고 내려가며 걷는다. 생각 같아서는 길이 아닐 것 같은 생각이 가득한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 길밖에 없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눈앞에서 바로 본다. 난전에 앉아 있는 아낙들의 모습, 물건을 사 주고 싶어도 또 돌아갈 길이 멀어 마음만 쓰인다. 


르완다의 물 사정은 여느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생수를 실컷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았다. 이곳은 어디를 가든 하루 종일 먹을 큰 물병과 우산은 필수품이다. 개천 한쪽에서 호수를 통해 물을 공급받는 사람들을 본다. 그나마 이런 물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이곳은 좀 더 나은 지역이다. 낯선 외국인을 무중구 무중구 하며 쳐다본다. 건너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입까지 막으며 좋아한다. 한 아이가 물을 들고 오다가 자기를 찍으라며 내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이렇게 마을을 지날 줄 알았으면 가방에 사탕이라도 많이 넣어왔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몇 개 안 되는 사탕을 어린아이 손에 쥐어주자 얼마나 좋아하던지^^


현지인 마을을 지나면서 




도대체 kimisagara  EGO Center 운동장을 찾을 수 있기나 할까~! 

마을 사람이 일러 준 대로 걸어가면서도 길인 듯 아닌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아니면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우리도 할 만큼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런 오기를 가지고 오르막길 끝무렵에 닿자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반갑던지 다행스럽게 제대로 찾긴 찾왔다. 봉사단원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간의 고생은 다 어디로 가고 간식을 받아 들고 의자에 앉았다. 밀가루 빵을 꾹 꾹 씹어 먹으며 음료를 마시는데 그제야  뙤약볕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곱슬머리와 검은 목덜미가 반짝이는 게 보인다. 


르완다에 와서 한국의 코이카와 같이 일본에도 지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둘이 협력하여 봉사를 하는 아웃리치가 있는 날이다. 워낙 집에서 일찍 출발해서 시작 시간 전에 도착하긴 했다. 잠깐 앉아있는데도 햇볕이 어찌나 센지 핸드폰이 펄펄 끓는다. 여기가 적도 바로 밑이라는 걸 잊었다. 남편도 반팔을 입었고 나도 긴 소매가 아니어서 살이 뜨겁다. 


가장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역시 태권도다. 앉아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간다. 나도 저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연신 카메라를 누른다. 아!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가슴이 벅차다.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태권 도복을 입고 구령을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높이 차고 올라 판자 깨기를 할 때면 함성이 터져 나온다. 초급부터 검은띠의 사범들까지 골고루 시범을 보인다. 태권도, 역시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간판이다. 


식전 행사가 끝나자 준비된 여러 부스에서 활동이 이어졌다. 헤어 드레싱 부스에서 머리를 자르는 아이들이 보이고 옷 수선을 하는 테일러링 부스에는 재봉틀 앞에 현지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구슬을 꿰어 장식을 만드는 부스,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부스도 있다. 물과 세제를 섞어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부스에서 신기해 하는 아이들을 본다. 여러 부스 중에서도 구강 교육 부스에 아이들이 많이 몰려 앉았다. 르완다에는 아직 칫솔을 사용 안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니까 얼마나 흥미로운 교육이 될까. 수북이 쌓인 치약이 눈에 띄어서 한 컷 찍었다. 


마음을 모아 함께 한 자리에서  


오는 길도 또 헤맸다. 아까 오던 길이 하도 힘들어서 이번에는 좀 넓은 길로 가자고 방향을 틀었는데 앱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는데도 긴가민가 감이 안 온다. 그러다가 참 친절한 르완다 학생의 도움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학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칭찬을 하고 싶다. 덕분에 우리는 길을 헤매지 않고 언덕을 가로질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갈림길에서 우리가 헤매는 것을 알고 아까 그 학생이 냅다 뛰어온 것이다. 조금 전에도 우리는 그 학생에게 길을 물었었다. 방향만 알려주고 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학생은 한참이나 되는 오르막길을 우리 앞서 걸어가면서 안내를 한다. 결국 큰길로 올라와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르완다에서 만난 최고의 사람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천 프랑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건 온전한 마음의 감사였다. 


학생은 한참을 올라왔으니 또 한참을 내려가야 할 것이다. 학생 한 명의 친절이 마치 르완다 사람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나 친절한 사람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글을 쓰는 지금도 학생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람이 빛나는 것은 어떤 환경에 있어서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황톳길을 지나고 판잣집들이 즐비해도 보석은 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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