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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pr 16.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24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과정이 필요해

"마마"


그녀는 나를 마마라고 부른다. 그녀의 이름은 아리스!

집에 오는 청소부이며 일주일에 세 번 청소를 한다. 지금까지 3개월 이상을 지내다 보니 그녀가 참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 그냥 내가 청소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남이 내 집에 오래 머무는 것도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사는 자그마한 공간이고 내가 따로 일을 나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리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의 밥줄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많이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먼저 온 이들의 조언이나 충고를 많이 들었던 참이었다. 르완다에는 큰 도둑은 없대. 대신 좀도둑을 조심해, 집 안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집사나, 청소부나!!! 뭐 이런 말들이었다. 


그러니 나도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참 부끄러운 고백이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아끼는 붉은 스카프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서랍 속에 딱 그 자리에 늘 두는데 보이지 않는 것이다. 퍼뜩 든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이 했던 좀도둑에 관한 것이었다. 참 이상한 것은 한 번 의문을 가지면 생각과 생각이 서로 얽혀 스토리가 짜이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왜 하필 그때 나는 안방, 건넌방 창문을 닫지 않고 방충망만 해 둔 채 외출을 했을까. 그리고 집사인 피델리는 왜 그때 대문 밖에서 외출하는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을까. 왜 안 하던 행동을 했을까.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피델리는 그날 이후로 장기 휴가에 들어갔다. 그러니 의문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은 아리스가 좋아하는 색인데 청소를 하다가 서랍을 열었을까!!! 열려 있던 창문으로 누군가 들어왔을까!! 사실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했던 것이다. 그 후 무엇이 보이지 않으면 깜짝 놀랐다. 그 후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나는 정신이 좀 없었다. 서랍에 잔뜩 들어있던 의약품들이나 중요한 것들을 캐리어 가방에 나눠서 보관을 했다. 전에는 이런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르완다에는 의약품도 매우 비싸다는 것을 또 생각하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 달았다. 외출할 때는 문 점검을 철저히 했다. 화장실 문까지 꼭꼭 걸어 잠갔다. 그냥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어떤 생각이 휙 하고 떠올랐다. 어떤 한 날의 일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고 그 생각이 나자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깨이는 것 같았다. 무언가 해결이 될 것 같아 안도감이 느껴졌다. 아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마음 한 편 붙잡을 수 있는 기대감이 생겼다. 사실 그 일 때문에 주일날 설교 말씀조차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갔을 때 추웠던 기억이 났다. 그때 붉은 스카프를 매고 갔고 그곳에서 또 풀었던 생각이 났다. 아마 노트북 가방에 넣어두지 않았을까. 집으로 돌아올 때는 햇볕이 바짝 났었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얼른 노트북 가방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자 자꾸 시간을 미뤘다. 만약, 없으면 어떡하지. 제발 가방 안에 들어있어라~~!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 보았다. 가방 앞쪽 쟈크가 있는 맨 아래 보드라운 천이 만져졌다. 아~!!! 여기 있었구나. 그때 나는 정말로 아리스나 피델리에게 미안했다. 그들을 공연히 의심한 죄가 너무 크다. 고백하건대 내가 너무 그들을 몰랐다.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을 의심했으니 내가 얼마나 하찮은 사람인가.


나 혼자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기도하다가 해결된 이 사건은 나만의 호들갑이었지만 마음의 불안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이들을 신뢰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는 못 했지만,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리스가 짙은 감청색 가방을 나에게 들어 올린다. 


"기프트"


무슨!! 선물~!!! 나는 정말 어리둥절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선물이지. 물어볼 새도 없이 내 발아래 후루룩 쏟아놓은 건 분홍색 슬리퍼!!!


새것임을 표시라도 하듯이 흰 플라스틱 끈과 함께 놓여있다. 사방이 꽃 모양이다. 언젠가 아리스가 신고 있던 슬리퍼의 모양과 닮아있다. 그때 나는 그 슬리퍼가 너무 예뻐서 한 번 신어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색깔이 우선 너무나 곱다. 그녀의 발톱에도 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있다. 분홍색은 그녀의 트렌드다. 


선물을 건네면서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오르는 듯했다. 그녀의 급한 성화에 나는 양말을 벗고 발가락사이로 슬리퍼를 밀어 넣었다. 사실 발가락을 끼는 슬리퍼는 내가 잘 안 신었던 터라 어정쩡하게 신어서 약간 작은가 했다. 그랬더니 발가락을 앞으로 바짝 당겨 신으란다. 엄지와 검지 사이가 간질간질하니 아직 어색한데도 잘 어울린다. 어떻게 알고 이렇게 내 사이즈를 잘 맞춰서 사 왔을까. 안 그래도 슬리퍼가 필요했던 참이다. 중국 마트에서 산 헝겊 슬리퍼가 있긴 하지만 물에도 금방 젖고 해서 불편하긴 했다. 어쨌든 청소하면서도 나를 눈여겨봐주었다는 것이 더 감동이었다. 슬쩍 물어봤다. 이거 어디서 샀어~ 얼마 줬어!!! 시내에서 샀다며 오천 프랑을 줬단다. 그녀가 받는 급여가 한 달에 삼만 프랑인데 이건 너무 큰 선물이야~~! 슬리퍼 덕분에 양배추 김치 담그느라 한참 있었는데도 폭신폭신하니 발바닥이 편했다. 




선물받은 슬리퍼, 아리스의 예쁜 발톱, 청소를 끝낸 후 한 컷, 아리스 헤어스타일이 바뀌어서 또 한 컷


아리스가 기도하는 모습


청소를 끝내고 막 나가려는 그녀를 불렀다. 

아리스 커피

나는 처음으로 아리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빵과 커피를 앞에 놓고 두 손을 모으는 아리스. 기도를 하면서도 못내 어색했던지 눈을 뜨고 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데 아마 기도는 익숙치 않았나보다. 그래도 저 모습이 얼마나 예쁜가! 


잘 먹었다고 인사하며 나가는 그녀에게 오천프랑을 손에 쥐어 주었다. 내가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나도 기프트 했다. 


그리고는 아리스에게 기쁘게 전했다. 

아리스, 좋은 소식이 있어~~!!!!



내가 할머니가 되었어
오늘 딸이 아기를 낳았어~~!!!
나는 손을 배 아래로 쑥 내리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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