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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May 07.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27화

돌아보니 기적이었네~!

염소 꼬치와 통감자 요리로 맛난 점심을 대접받을 때만 해도 전혀 생각 못 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가 곁에 있으니 내게는 최고의 선물까지 안긴 셈이다. 어딘가에서 야옹야옹 소리가 난다 했더니 새끼 고양이가 풀숲에서 쏙 나온 것이다. 소금기를 제거한다고 고기를 혀로 핥아 던져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아니면 고기가 너무 맛있었던지 입맛을 다시며 또 바라본다. 튀긴 감자 겉 부분을 도려내고 속살을 주니 슬쩍 혀만 갖다 댄다. 녀석! 벌써 사람들 입맛에 길들여졌다. 종업원이 빗자루를 들고 와  쫓아내면 또 어느새 살그머니 내 곁에 와 있다. 등 한번 쓸어주고 싶어 일어났더니 쏜살같이 몸을 피한다. 도망가는 고양이의 모습은 늘 안쓰럽다. 우리 예삐처럼 저 아이도 길냥이니까 또 길냥이의 어려움을 아니까 더 마음이 간다.  


공과대학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집사님 권사님 부부와는 지난번에 현지 음식인 멜랑제에서 한 번 뵙고 이번이 두 번째다. 오늘은 대학에서 보석공예를 가르치고 있는 팔순의 교수님까지 오셨으니 더 의미가 있다. 자비량으로 오셔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의 얘기가 나도 궁금했던 참이었다. 마침 오늘이 국제 근로자의 날이라 시간이 여유롭기도 했고 시인이신 권사님과의 동행이라 더욱 좋았다. 모처럼 만에 시에 대해 실컷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은델라 호베은슈띠가든


정원을 둘러보다가 자기가 앉고 싶은데 서 있으면 종업원들이 와서 자리를 세팅해 준다. 그래서 정원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정원도 돌아보고 사진도 컷 찍었다. 식사 후에 고양이를 보고 싶어서 찾았는데 몸을 숨겼는지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남편은 역시나 꽃 사진을 찍는데 몰두한다. 그리고 좋은 풍경 앞에서 우리의 앞태 뒤태를 찍는다. 하트 표시를 빵빵 날리는 노 교수님!!!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다. 


오후 4시가 넘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뭔가 도로에 이상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승용차들이 서 있고 모토가 서 있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컨테이너가 마치 길에 몸이 꽉 끼인 듯 가로질러 서 있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을까. 비탈길을 내려오던 컨테이너는 아마 무겁게 짐을 실었을 테고 턴 하는 과정에서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얘기하며 기다렸다. 뒷바퀴는 들리고 앞바퀴는 끼여있고 사람들이 막대기를 이용해서 움직이려고 하는데 꼼짝달싹도 않는다. 기계를 이용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저렇게 해서 언제나 되려나. 아직은 절망이라고 말하기에는 일렀지만 희망의 끈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가 있다. 


이대로 조금 더 기다릴까,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가야 할까 고민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앱을 켜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앱이 가르쳐 주는 길은 차량이 갈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그 길이 험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앱이 가르쳐 주는 길을 보니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안내를 하는데 통 믿을 수가 없었다. 르완다에 와보니 못 믿을게 앱이었다. 기다리던 차량들이 하나 둘 왔던 길로 돌아가자 조바심이 났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녀, 모토를 타려던 흑인 여자였다. 초록색 선명한 옷을 입었었다. 그녀가 우리를 향해 "병원 옆에 길이 있다!"라고 말을 던졌다. 자기가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며 확신하는 그 말을 듣고 얼른 차를 돌렸다. 차 안에서 남편이 "우리도 차를 돌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한 바로 그 직후였다. 병원 옆 사잇길로 접어들어 또 길을 헤맬 때 조금 전에 길을 알려 주었던 그녀를 또 만났다. 자신을 태워 준 모토 기사에게 우리를 큰길까지 안내해 줄 것을 부탁하는 듯했다. 길이 좁아서 차량이 갈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했다. 중간중간 길을 또 물어보는 모토 기사 덕분에 안심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거리를 맞춰가며 기다려준 모토 기사 덕분에 안도감과 평안함을 느꼈다. 만약 이들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낯선 길에서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다 되어 집에 왔다. 차량이 집 가까이 오자 차 한 잔 하고 가실 것을 권했다. 차와 과일 그릇이 비어 가는데 6시가 훌쩍 넘어간다. 분명 배가 고플 것 같았다. 외출했다 돌아보면 다 피곤한데 하면서 괜찮다고 했지만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준비해 놓은 반찬이 없다. 그나마 어제 담가놓은 양배추 김치가 있어 다행이었고 그린 빈 간장 조림이 있었고, 교회 권사님께 얻은 갓김치는 많이 신 듯한데 그것조차 감사했다. 야채 몇 가지 볶아서 치즈만 뿌리면 반찬 하나가 더 생긴다. 음식도 할 줄 모르고 손도 느린 내가 그저 마음만 앞설 때가 있다. 또 준비하느라 허둥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식사하고 가세요~~! 그런데 

반찬은 없어요~~!!!

"나는 반찬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 


우스갯소리마저 즐겁게 들렸다. 콩을 듬뿍 넣어 밥을 안쳤다. 르완다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있다면 콩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그만큼 콩이 싸기도 하고 현지인 음식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가 콩이다. 모처럼 만에 밥솥이 그득하게 제 구실을 한다. 칙칙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밥이 되어갈 때 마음은 따라 급해진다. 평소 잘 끓여 내던 미역국도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다. 통 맛이 나지 않는다. 모든 간을 맞추던 피시소스도 넣고 한 알 육수를 두 개나 넣었는데도 싱겁고 깊은 맛이 없다. 이럴 때 맛있는 국간장이 아쉽긴 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국이 끓는 게 시원치 안 다했더니 스멀스멀 불꽃이 희미해진다. 아뿔싸!!! 가스가 나갔다. 하필 이때에. 


에구 어떡하죠!!! 가스가 나갔어요~~!!!


그래도 맛있게들 저녁을 들었다. 반찬도 없는 마당에 미역국도 제대로 못 끓였으니 무슨 맛이 날까마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등을 구부리고 한 끼 식사를 했다. 노 교수님이 밥도 국도 더 드셔서 행복했다. 진정한 행복은 몇 가지 반찬인가가 아니었다. 다만 누구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가 하는 것이었다. 늦은 시각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가는 차량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밤바람이 부드럽게 나뭇잎을 쓸어주었고 남편은 바람처럼 설거지를 끝냈다. 




조금 전까지 소파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분들과의 오붓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오랜만에 그들 덕분에 콧바람을 쐬었고 가든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키갈리 외곽지역의 멋진 곳을 알게 되었다. 자칫 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길을 안내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흑인 여자가 외국인인 우리를 눈여겨보았던 것도 그렇고, 앞서서 길을 안내하며 기다려주던 모토 기사도 고맙다. 그리고 식사 대접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가스불! 고마웠어.  별 대접도 못했는데도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던 집사님 부부와 노 교수님, 하루를 돌아보면 이 모든 일들이 어찌 고맙지 않은가~~!!!


사랑은 다 채워진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따뜻하게 지은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이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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