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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Aug 07.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34화

선입견을 가졌다

 쟤는 왜 매일 저기에 앉아있어~~


내 말에는 불평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이도 어려 보이긴 했지만, 그리 예의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것도 그랬다.  나이 육십이 넘어도 타인을 바라보는 포용력이 그리 넓지 않음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사랑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도 정작 기준은 내 마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바로 우리 현관 쪽을 향하여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간혹 핸드폰을 하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했다. 차량을 세척하는 새벽부터 거의 저녁까지 음악을 틀어놓았다. 얼마나 심심하면 저럴까 싶다가도 소음처럼 귀에 거슬렸다. 그때마다 한 마디 할까 하다가 얼마 있으면 돌아갈 텐데 하며 그냥 넘겼다.


나는 내심 그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원의 화초가 나날이 누렇게 변해 가는 것도 그 하나였다. 마당에 긴 호스도 연결되어 있는데 물 한 번 시원하게 뿌려주는 걸 못 봤다. 주차된 차량이 네, 다섯 대가 되니까 아침에는 차량 닦느라고 바쁘다고 쳐도, 저녁에는 시간이 가능할 텐데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현관 앞에서 싱그럽게 잎을 흔들어대던 칼레데아 루테아도 누렇게 변해갔다. 결국 나는 냄비에 물을 떠서 화초에 주기 시작했다. 내가 물을 주는 모습을 봤는지 그제야 호스를 끌어와 정원에 물을 주었다. 그게 고마워서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그 아이는 대충 흉내만 내고 또 사라졌다. 이왕이면 더 시원스레 물을 뿜어주지 않고...


르완다는 지금 대 건기의 계절이라 날씨가 무척 건조하고 황토 바람이 심하다. 매일 닦아도 테이블 위에 붉은 모래가 묻어 나온다. 그러니까 땅속 깊이 뿌리내린 나무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잎들이 바스락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이것은 한국의 가을 정취와는 다른 목마름이다. 화초 기르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베란다 가득 화분을 놓았었다. 화초와 교감을 하다 보면 그들이 언제 목이 마르고 언제 몸이 아픈지 대충 느껴진다. 너무 많은 물을 줘도 안되고 너무 말라도 안되며 적절한 시기에 화초들과 눈이 딱 마주치는 때가 온다. 그 시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관심이다. 



피델리가 거주하는 공간, 지금 의자에는 집 청소를 끝낸 청소부가 앉아 있다.


평소 우리 집 가드 피델리가 기거하는 공간을 생각했다. 한 사람이 누우면 딱 맞을 저곳, 저 아이는 얼마나 그것이 갑갑했을까. 가드 일을 해 본 것 같지도 않은데 여덟 가구가 사는 우리 아파트에서 저 아이도 하루하루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일 테지. 그렇게 생각하자 하루는 그냥 가엾어 보여서 찐 감자를 따뜻하게 건넸다. 그 아이가 계단 위쪽에서 의자를 바짝 끌어와 앉아있으면 마치 정원을 사이에 두고 감시를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난간에 다리를 걸쳐놓고 음악에 몸을 흔들고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도 어느새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음악이 거슬리면 소리를 줄여달라고 얘기하라고 남편이 말했지만, 나는 결국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에 대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괜한 원망 살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데... 나는 아직도 매사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피델리, 왔던데~~


퇴근하고 들어오던 남편이 반가운 말을 전했다. 

언제? 좀 전에도 안 보였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현관문을 열어 보니 어둠 속에 서 있는 피델리가 보였다.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 미리 챙겨 놓았던 축의금 봉투를 꺼냈다. 한국에 있는 지인 권사님이 챙겨주신 예쁜 꽃봉투인데 르완다에 와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매달 청소비를 건넬 때도 이 봉투에 담아서 건넨다. 그러면 청소하는 아리스의 얼굴에도 꽃이 피는 것 같다. 오늘은 피델리를 위해 봉투 위에 르완다어로 짧게 글을 썼다. 물론 번역기를 돌렸다.  


한국의 지인이 건네준 꽃봉투, 몇 장만 찰칵 찍었다


Fideli!
twishimiye  ubukwe bwanyu gukunda no kuguha umugisha
피델리, 결혼을 축하해 사랑하고 축복한다.



나는 손을 흔들며 피델리를 불렀다. 그도 손을 들어 올리며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온다. 파란 와이셔츠가 잘 어울리는 새신랑이 성큼성큼 자신 있는 모습으로 걸어온다. 축의금 봉투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는 그를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이며 수고했노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남편과 나는 가서 축하해 주고 싶었지만 지방에 있는 도시 무항가에서 결혼식을 했기 때문에 가 보지를 못했다.


그는 마치 큰일을 하고 돌아온 장성 같았다. 자랑스럽게 핸드폰을 열어 결혼식 사진을 보여 준다. 하얀색 옷을 입은 피델리와 신부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고 아름다워서 엄지 척을 보냈다. 정말로 피델리의 어깨가 든든하게 보였다. 르완다에는 제노사이드라는 민족 대학살을 겪은 후 부모나 형제자매를 잃은 사람들이 많다. 집을 청소하는 아리스도 그때 어머니와 동생 셋을 잃었다고 했다. 피델리는 어머니를 잃었다. 살아가면서 이들의 아픔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음식도 나누고 싶고, 조그만 일에도 어깨를 세워주고 싶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마음으로.




익은 양배추 김치가 있어 부침을 했다. 아보카도 오일을 새로 샀는데 부침을 하니 고소하고 맛이 있다. 크고 흰 접시에 여러 장을 포개 올려 피델리에게 건넸다. Enjoy ~!!!


접시는 금방 내게로 돌아왔다. 그동안 집을 돌보던 그 아이가 똑 똑 문을 두드리며 빈 접시를 건네며 웃는다. 내심 못마땅한 것도 있었지만 2주 동안 얼굴을 보며 정이 들었는지 맛있게 먹었냐며 나도 웃음을 건넸다. 이것이 저들에게 한 끼의 식사일지도 모를 텐데 조금 더 담아 줄 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이 저녁에 부침이라도 먹여 보내서 다행이었다. 우리 집에 왔던 낯선 그 아이가 언제 돌아갔는지도 모르게 짙은 어둠이 내렸다.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오고 오늘은 무언가 꽉 찬 느낌으로 빈자리가 채워졌다. 


시간은 사람을 너그럽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그 아이의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하는 후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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