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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Mar 05.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7화

성실한 청년 피델리 

어디서나 자신의 일에 열심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하건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신뢰가 간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사람들을 겪어 보면 처음 느낀 감정이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반지르르한 말을 늘여 놓으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책임지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 물론 그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이지만 나와 같으리라는 마음을 내내 접지 못한다.  


거짓 웃음과 거짓된 말을 주저 없이 하는 사람은 오랜 친구가 될 수 없다. 얼마 되지 않은 이곳 생활이지만 진실한 사람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의 성실한 면을 높이 평가받는다. 나는 이런 면에서 남편과 의견 차이가 있는데 내 생각은 여전히 맺고 끊음이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약속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냉정하다. 먼저 온 이들의 충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분명 있었다. 꾸어 주지 말고 차라리 줘 버리자. 그것이 마음 편한 것을. 



아파트 집사 피델리 


여기, 참 성실한 청년이 있다. 그는 집을 관리하는 집사인 피델리(Fideli)다. 피델리는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약간 마른 듯한 외모를 가졌다. 잘 웃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혹여 못 알아 들어도 웃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다. 피델리는 부탁을 하면 정성껏 들어준다. 한 번은 거실에 출몰한 도마뱀을 보고 피델리를 부른 적 있다. 나는 집에 있는 빗자루를 가져왔고 그냥 밖으로만 내 보내줄 것을 부탁했는데 피델리는 도망가는 도마뱀을 끝까지 찾아내어 내리쳤다. 그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었는데 너무 호들갑을 떤 내 탓이다. 의사소통이 안 된 것이다. 나는 잘린 도마뱀 꼬리가 그렇게 계속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본 지라 내내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얼마 후 도마뱀이 거실에 또 나타났다. 도마뱀을 잡으려고 했더니 어찌나 빠르게 벽을 타며 도망을 가는지 아예 포기를 했다. 이번에는 피델리를 부르지 않았다. 그냥 같이 살기로 했다.  


피델리의 거처는 대문 옆이다. 사람 하나 누우면 딱 맞을 공간이다. 남편이 대학 때 자취를 했다던 그 집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작다. 저곳에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잘까? 하는 의문도 든다. 콘크리트 바닥에 얇은 걸 깔고 자는 것 같다고 하는 남편 말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르완다 날씨가 하도 변덕이 심해서 한기가 들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침대 생활을 해도 식탁의자 뒤에 늘 털스웨터를 걸쳐놓고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데 하물며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얼마나 춥겠는가. 르완다 사람들이, 춥지 않은 날씨에도 털모자를 쓰고 파카를 입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한 번은 키갈리 마켓에 갔다가 짜파티를 사 왔다. 검색해 보니 짜파티는 인도 음식으로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를 구워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TV에서 본 것 같은 둥글넓적하게 생긴 저것의 맛이 궁금해서 먹어 본 것인데, 처음 먹어보는 짜파티는 맛이 담백하고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났다. 남편은 두 개를 먹고 나는 한 개를 먹다가 피델리를 위해 두 개를 포장해 왔다. 그간 집에 있는 것을 나누기는 했는데 온전히 그를 위해 먹을 것을 포장해 가는 것은 처음이라 마음이 뿌듯했다. 남편 말처럼 Do you like 짜파티? 하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냥 피델리, 짜파티~! 하고 건넬 생각이었는데 남편 말처럼 의사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은 것도 같다. 내 말을 듣자마자 봉지를 건네받으며 짜파티~~! 하고 환히 웃는다. 


키갈리 마켓 건물 안의 짜파티 


내가 알 수 없는 행복이 분명 저 얼굴에 있다. 언뜻 보기에는 하루가 참 따분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그 안에 평안이 있다. 나는 얼굴에서 묻어나는 그의 성실성을 본다. 드나드는 사람과 차량을 위해 무거운 철대문을 밀고 닫기를 반복하면서도 자기의 일을 즐거워할 줄 안다. 하루 종일 집안에 갇힌 듯한 모습인데 짜증을 내거나 싫은 기색이 없다. 조깅을 하고 들어오면 피델리는 대여섯 대의 차량을 세척한다. 헬로 피델리! 하면 얼굴을 돌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가 세척한 윤기 나는 차들이 와이퍼를 높이 들어 올리며 출발을 위한 자세로 서 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피델리는 마당 곳곳을 비질한다. 희미한 커튼 사이로 그의 움직임이 보인다. 새 울음소리와 바닥을 쓰는 피델리의 빗질 소리는 서로가 경쾌하다.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정원을 손질하는 그의 손길 덕분에 초록 잎은 더 싱그럽고 꽃잎은 더 키를 키우며 자라난다. 커다란 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실루엣이 아파트를 안정감 있게 지켜준다. 



지금 나이가 몇이냐고, 가족은 어떻게 되냐고 남편이 물었다. 

피델리는 30살이라며 핸드폰을 꺼내 숫자를 적는다. 

집은 이곳에서 매우 멀고 엄마는 없으며 아버지만 있는데 형제가 없이 오직 자기 혼자란다.  

나는 우리 막내아들 나이가 29살이라고 손바닥에 적어서 보여 주었다. 

그러자 피델리가 또 하나의 사진을 보여 준다. 

my wife!!!

오 정말!!!

사진 속에는 회색 체크무늬 양복을 잘 빼입은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가 나란히 서 있다. 

피델리 결혼했어!!!! 이 사람이 바로~~^^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언젠가, 어둠 속에서 보긴 했는데 그 여자가 피델리 아내였구나. 무엇보다 챙겨주는 사람이 있음에 안심이 된다. 엄마의 마음이 여기서도 발동한다. 성실한 청년 대신, 성실한 가장 피델리로 불러야겠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그 말이 맞다. 학벌도 아니고 언변도 아니고 많이 가진 것도 아니다. 진실은 마음 안에 있지만 그 마음은 얼굴 모습을 만들어 낸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면면이 보인다. 비록 어려운 길을 걷더라도 진실되게 살아가면 언젠가는 길 위에서 채워주시는 평안을 만날 것이다. 성실한 피델리에게서 그것을 느낀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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