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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Feb 27.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15화

현지인 결혼 예식은 이렇게 하네요~~!

설마설마했다. 다른 날도 아닌 결혼식 날이라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9시까지 픽업하러 오겠다기에 한국 근성이 있는 우리는 친절하게도 그들이 픽업하기 좋은 도로로 나가서 기다렸다. 고국에서 준비해 간 한복을 입고 가자는 남편의 말에 손사래를 치고, 나름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9시가 후딱 넘어도 전화 한 통 없이 깜깜무소식이다. 1시간 안에는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1시간이 넘자 슬슬 부아도 나고 오랜만에 신은 구두 때문에 발도 아파졌다. 남편이 몇 차례 통화를 걸자, 곧 도착한단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곧, 이라는 말과 10분 이내라는 말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기다릴 걸 하고 무지 후회했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거의 2시간이 흐르고 난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곳 사람들은 약속 장소에 오다가도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먼저 하고 와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단다.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더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르완다에서는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화를 내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만의 정서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기다리다 못한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주위 사람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본다. 창피해서 팔을 아무리 꼬집어도 남편은 통제불능!


남편이 전날부터 집 주소를 상세히 보내주었건만 그것도 확인하지 않았는지 찾느라 더 시간이 걸렸단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이 어디 있는가. 예식 장소까지 30여 분 거리를 가는데 자동차 시동이 몇 번이나 꺼졌다. 그래도 이 젊은이는 Big sorry Big sorry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니 다행이다. 남편과 같은 팀을 이뤄 일하는 젊은 흑인 남자는 결혼한 지 두 달이 되었다고 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동생과 예쁜 아내와 함께 왔는데 어찌나 말이 많은지 차를 타서부터 계속 떠든다. 말소리도 크고 포즈도 크고 리액션도 크다. 도로에서 자꾸 멈추는 차량이 은근히 걱정이 되는데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폐차해도 벌써 했어야 할 차량을 몰고 다니는 빼빼한 흑인 청년이 신기할 따름이다. 



어렵게 어렵게 들어선 결혼식장에는 하객들로 꽉 차 있다. 앞자리가 비어있어서 앉았는데 다행히 사진 찍기가 좋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화려하고 준비가 잘 되었다. 현지인들의 결혼식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사실 별 기대를 하고 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르완다 사람들의 생활을 보더라도 이런 화려한 예식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다. 또한 금방이라도 폐차해야 마땅한 차를 끌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찌 이러한 화려한 예식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사회자와 밴드와 여럿의 게스트들이 어우러져 더욱 멋지다. 멋들어진 화음으로 만들어내는 노래가 들려온다. 결혼 예식은 거의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결혼식이 길어도 한 시간 안에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길어도 너무 길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예식이 진행되는데 1부는 거의 파티 형식이다. 신랑 신부의 주변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 측 들러리와 하얀 양복을 빼입은 신랑 측 들러리들이 함께 한다. 


그들의 춤 놀림이 매우 부드럽고 화려하고 재미있다. 다들 어찌 그리 옷매무새가 좋은지 몸의 선들이 예쁘다. 남자고 여자고 다들 모델 같은 사람들이 많다. 진짜 미인 미남은 아프리카 사람, 특히 르완다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검은 피부는 건강하게 보이고 매끄럽다. 웃으면 하얀 치아가 매우 반짝인다. 저들이 타고난 DNA는 탁월하고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앞쪽 센터에 자리 잡은 많은 어르신들 모습이 눈에 띈다. 그 뒤로 하객들이 빙 둘러서 앉아있다. 양가 집안의 원로들인 듯싶은데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깊다는 인상이 들었다. 중간중간 어른들의 덕담을 들어가며 예식이 진행된다. 오전 내내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웃고 즐긴다. 긴 시간이어도 움직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드디어 1부가 끝나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일 때도 어르신들부터 먼저 나간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위해 접시를 들어다 주며 서빙을 해 주는 모습을 본다. 밖에 식사를 위한 텐트가 쳐 있다. 현지 음식이 뷔페로 차려져 있는데 줄을 선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비까지 온다. 텐트 밖에서 비를 맞으며 서 있으니까 먼저 들어선 현지인이 나를 안으로 자꾸 들어오란다. 외국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뒤에 있는 나를 앞으로 서라고 자꾸만 오란다. 


음식은 현지인들이 자주 먹는 것으로 밥과 야채와 콩, 감자튀김, 고기(한점), 과일 등의 음식인데 흔히 멜랑제라고 불렀다. 접시 위에 음식을 담긴 했는데 비가 오니 들고나가지 못해 서성이자 나를 픽업해 준 흑인 남자의 아내가 얼른 뛰어나가더니 큰 접시 두 개를 가져다가 남편과 내 접시 위에만 덮어 주고 가자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지 결혼식에 와서 비까지 맞으니 내게 sorry sorry 한다. 자신의 접시는 비를 맞아가며 내게 베풀어준 진심 어린 배려에 감동했다. 비 때문에 홀로 다시 들어가지 않고 자동차 안에서 간신히 점심을 먹었다. 고기 한 점이 질기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다며 다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콩요리와 감자튀김, 바나나로 만든 요리는 부드럽고 담백하다. 향신료 냄새가 나지 않고 자극성이 적어서 대부분의 르완다 음식이 입맛에 맞다. 



점심 후에는 장소를 옮겨 교회에서 다시 2부 예식이 예배로 드려진다. 이때 신부는 화려한 드레스를 벗고 흰 드레스로 갈아입고 예식에 참여한다. 그런데 교회 예식이 또 엄청 시간이 길다. 현지 언어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고 집으로 먼저 갈 수도 없는 처지라 하는 수없이 끝까지 인내하며 끝나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빈자리가 많아서 다들 점심 식사하고 집으로 갔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참인데 우르르 우르르 자리를 메꾼다. 1부 예식 장소로부터 교회까지 1킬로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도착을 한 것이다. 르완다에서 이 정도 걷는 것은 늘 있는 일이겠지만 나중에 온 대부분의 분들이 나이 드신 분들이다. 어느새 교회는 가득 메워졌고 무슨 예식이 끝나는가 하면 또 이어지고 끝나는가 하면 또 이어진다. 


기념사진도 한 컷,  신랑신부의 행복한 모습, 예식장의 모습


교회 예식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지나가는 하객들이 우리에게 일부러 다가와서 인사를 건넨다. 모르긴 해도 고맙다는 표현 같은데... 그래도 하루 종일 결혼식을 하다니!!! 대단하다. 



내 손을 잡아 주면서 화장실까지 안내를 해 준 고마운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그분은 비탈길을 겁내는 나를 끝까지 안내해 주고 기다려주었다. 얘기한 적도 없고 만남도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다. 현지 언어로 계속되는 시간 내내 몸은 피곤했지만 하나님의 주관하에 결혼예식을 거행하는 성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차 시동이 몇 번이나 꺼졌다. 그래도 염려 없이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도 아무 일 없이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그들의 평안을 배워야겠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을 나는 너무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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