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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회사 다닙니다. (1)

번역하는 회사원

by 글쓰는비둘기



4년차 번역사의 두런두런


1. 회사원입니다, 근데 번역하는




무슨 일 하세요?

번역가예요.

여기까지만 말하면 프리랜서겠거니 하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반대로 번역 회사 다녀요, 라고 말하면 번역 회사도 있어요? 번역 회사에서 무슨 일 하시는 거예요? 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래서 직업을 이야기할 때는 꼭 두 마디까지 길어진다. 번역 일 합니다. 번역 회사 다녀요.



그렇다면 번역 회사는 뭘 하는 회사일까?

번역을 한다고 하면 따라오는 두 번째 오해는 책이나 영화를 번역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이다. 아마도 출판 번역과 영상 번역이 일반 대중에 가장 잘 알려진 분야이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보통 출판 번역은 출판사에서 관장하는 영역이고, 영상 번역은 또 다르다. 출판이나 영상 번역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번역 일을 하는 나로서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뭘 하느냐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기술 번역 회사이다.

여기서 세 번째 오해가 생겨난다. '기술'이라는 단어 때문에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등의 전문적인 분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들린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 기술 번역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출판과 영상을 제외한 나머지를 깡그리 통틀어 기술 번역이라 한다. 그래서 이 안에는 온갖 것이 들어 있다. 온갖 것이란 게 당췌 무엇인지,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이전에는 게임 시장이 크지 않아 기술 번역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게임 번역도 포함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게임 번역의 입지가 상당히 커졌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로 게임 번역 분야는 더욱 활황이다. 나도 번역 업계에 발을 들인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차이가 상당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기술 번역이니 하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냥 게임 번역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edurne-tx-5Z8mR4vqJD4-unsplash.jpg Unsplash @edurnetx




번역 회사에 다닌다고 꼭 번역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포함해, 최소 2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사실 많은 번역 회사에서는 번역을 상당 부분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인력에게 맡기고 사내에서는 리뷰(Review)만 한다. 말하자면 번역을 하는 회사라기보다 번역을 중개하는 에이전시의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일본에서 계약직으로 잠깐 다녔던 번역 회사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 몸담은 회사에서는 번역을 하고 있다. 일정 시간 근로하며 삶과 일을 구분하고자 하는 나 같은 번역사에게는 소중한 일터이다.






나의 하루는 대강 이렇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켠 뒤 메일을 확인한다. 클라이언트가 모두 외국에 있기 때문에 밤새 온 메일이 쌓여있다. 당일 납품해야 하는 건도 많다. 맡은 프로젝트 중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것부터 정리한 다음 바로 업무를 시작한다. 종일 한 가지 작업에만 매달리는 날도 있고 메일에 답장하랴 번역하랴 다른 작업 검수하랴, 이것저것 휘몰아치는 날도 있다.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하루가 간다.

반드시 그날 내로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조금 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지만 보통 여섯 시를 많이 넘기지 않고 마무리된다. 클라이언트와 우리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퇴근 후에 온 메일이나 요청에 급하게 답해야 할 때도 가끔 있지만 그리 잦지는 않다.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다.



프리랜서 번역사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물론 이 부분일 거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출퇴근을 한다는 것.

프리랜서로 일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짐작만 할 따름이지만 단순 벌이만으로 따지면 보통 프리랜서의 소득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본 프리랜서는 대부분 주말에도 끊임없이 일을 했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겠지만 말이다.


번역 일이 하고 싶은데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며 어딘가에 소속되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프리랜서보다 사내 번역사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건강보험료나 세금 따위의 문제에 신경 쓸 일도 덜하다. 모르긴 몰라도 신용 대출을 받는 경우에도 프리랜서보다는 직장인이 유리할 것이다. 번역가 지망생이며 꼭 출판이나 영상 번역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번역 회사를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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