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는 번역
이따금 내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왜들 이렇게 쉽게만 볼까, 섭섭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마 전문직이 아니고선 어떤 업계에 종사하든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실 남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니까.
번역도 마찬가지다. 번역가라고 하면 대뜸 번역 알바쯤 몇 번 해 보았다는 사람을 제법 많이 보았다. 나도 번역이나 할까, 하는 사람은 더 많이 보았다.
진지하게 덧붙이자면 번역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구태여 따지자면 하기야 할 수 있겠지만, 글쎄. 벽에 그림을 그린다고 치자. 뱅크시가 그린 것도 그림이고 동네 꼬마가 돌멩이로 그린 것도 그림이다. 물론 내가 뱅크시라는 건 아니다. 그러면 좋겠다만.
한 번은 번역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전거(Bicycle)의 스펠링을 아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그게 의외로 어렵다면서 천진한 얼굴로 덧붙이는데 빈정거리는 어투가 아니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당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단어 철자야 충분히 헷갈릴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사실 스펠링은 영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헷갈린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나한테 묻다니, 이래봬도 영어로 밥 벌어먹고 사는데. 모르긴 몰라도 의사에게 신장이 어디 붙어 있는 건지 아냐고 묻는 사람은 잘 없지 않겠는가? 이런 일은 이때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왜 자꾸 이런 순간에 맞닥뜨리는 걸까?
한국인으로 태어나 의무교육만 이수해도 영어 공부를 십 년 가까이 하게 된다. 취업을 준비하며 토익이나 스피킹 공부까지 한다면 십오 년은 족히 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영어가 만만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만약 누군가 영어 독해 시간에 지문을 한국어로 해석하는 게 번역과 뭐가 다르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건 좀 다른데, 싶으면서도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의구심이 들어 고민에 빠질 것 같다.
과연 번역이란 게 영어 지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에서 그렇게 동떨어진 일일까?
물론 직업인의 눈으로 본다면 고등학생 수준의 독해 실력으로 밥벌이를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기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의 연장선이라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문장으로 되어 있을지언정 애플을 사과로, 해피를 행복으로 옮기는 것 아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아쉽게도 번역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문제는 영어 실력이 아니다. 그렇다면 웬만한 영어 선생님은 모두 부업으로 번역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사실 다들 하고 계시는지도? 갑자기 확신이 사라진다. 주변에 물어볼 영어 선생님이 없다)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나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뭐든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근본적인 부분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내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이 번역을 다소 쉽게 보는 이유는 꼭 영어나 다른 언어를 배운 적이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언어라는 것이 모두가 매일같이 쓰고 있는 익숙한 수단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을 언어로 옮겨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쓰는 행위 자체가, 넓게 보면 번역의 맥락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모든 인류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번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힘든 청각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수어가 있으니 매한가지다. 개중에는 그것을 좀 더 능숙하고 그럴듯하게 해내는 이도 있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언어를 사용하는 누구나가 일종의 번역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로서 하는 번역도 그렇다.
번역을 하는 사람은 애플을 사과로, 해피를 행복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원문을 쓴 사람의 생각과 의사를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원문에 애플이라 적혀 있어도 문서의 전체적 맥락이나 문화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감이나 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이때 해당 문장 하나만 본다면 애플을 감으로 번역한 것은 터무니없는 오역으로 보이겠지만 문서 전체를 보았을 때는 훌륭한 번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결국 번역이란 타 언어를 안다고 무작정 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반대로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앞서와는 말이 달라져 버렸다. 머쓱하다.
뱅크시가 그린 그림이든 동네 꼬마가 그린 그림이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같다. 차이가 있다면 예술성의 차이, 영향력, 그리고 경제적 가치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번역을 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결국 내가 끄적인 그림의 가치가 얼마 정도 될 것인가가 관건인 셈이다.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번역이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날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