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15화 - 정보

by 팬터피

**츠즈키의 집**

그는 앞의 주전자를 들어 빈 잔을 더 채웠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정보를 더 캐내야 한다. 아니면 이 주전저로 바로 머리를 가격하고 죽인 다음···.. 그리고 도망을···.’


달수가 착잡한 심정으로 경감을 바라봤고, 그의 손에 들린 잔은 이미 넘치고 있었다.


“에잇, 잔이 넘치지 않는가. 정신머리하고는···.”


츠즈키는 옆에 있는 행주로 주변에 흘러넘친 차를 급히 닦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늦은 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그가 떠나고, 경감은 마시던 차를 홀짝였다. 그리고 탁자 밑에 숨겨뒀던 총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형원과 진의 숙소**


“잘 들어봐. 어쨌든 켄타의 입에서 밀정이 있다는 게 밝혀진 거야.”


진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형원이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앞뒤 잘라먹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자 그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살짝 짜증도 났다.


‘저 녀석, 매번 이런 식이다.’


진이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했는지 아닌지 아랑곳하지 않고 형원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그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리려고 부리나케 식당으로 온 거고. 위험하다고 알리려고. 조심시키려고.”


“야, 차근차근 좀 말해봐.”


“아, 내가 아까 츠즈키랑 서장을 인력거에 태웠어. 아까 식당 갈 때. 너도 봤지? 그들이 온 거.”


“응”


“근데 실종됐던 놈이 우리 독립군에게 두 가지 말을 했는데, 그게 잡혀간 독립군 두 명은 살해당했다는 것과 이 지역에 밀정이 있다는 것이야.”


“근데 츠즈키는 오늘 그 이야기를 하진 않았어.”


자신이 예상했던 그림과 달라 잠깐 말을 멈춘 형원. 그러나 그는 그다지 길게 고민하지 않고 금세 명쾌해졌다.


“음··· 뭔가 그들만의 암호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사장은 이 동네에서 나름 유명 인사인데, 그를 몰래 만나기가 쉽겠어? 그러니까 그냥 대놓고 만나는 거지. ‘등불 밑이 어둡다’잖아.”


“등잔이겠지. 여하튼··· 잡혀간 한국인 둘이 죽었고, 밀정이 시내에 있다는 걸 독립군이 알았다는 거지. 여기까지는 어찌 됐든 김달수의 말이 맞긴 한 거네.”


“내 말이 그거야. 어찌 됐든 그가 처음에 했던 말들이 다 맞아떨어지고 있어. 너, 그 식당에 계속 있는 것도 어쩌면 위험할 수 있을 듯해. 사장이 너한테 다른 이야기는 안 해?”


진은 포장해 온 만두를 집어 먹으며 진에게 사장이 어떤 낌새가 있는지 물었다.


“응, 오늘은 그들이 다녀간 이후 뭔가 계속 복잡해 보이셨어.”


“아참, 들은 게 하나 더 있다. 근데 너무 조용히 말해서 못 들었어. 김·········다···만···? 이 정도만 들음. 뭔가 엄청 조심히 말하더라고.”


그의 말을 듣고 진은 만두가 사레에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하다가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가져와 내용을 적었다. ‘김······다···.만···.’


“음··· 이건 뭘까···?”


“나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떠오르지가 않아.”


“뭘 준비 중인 거지···. 무슨 꿍꿍이인 거지···.”


진은 이 글을 계속 적으며 이게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계속 끄적이며 생각했다.




**유흥가**


휘청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켄타.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많이 취한 탓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술을 많이 드셨나 봐요.”


“이 놈! 놀라지 않았느냐! 봤으면 바로 인사를 해야지! 아주 혼이 나봐야 정신 차리겠느냐!”


그때 갑자기 그 남자가 켄타에게 총을 겨누었다. 켄타는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으나 상대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방아쇠가 당겨졌다.


탕!




**켄타의 집**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이불을 걷으니 요에는 커다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잡혀있을 때 들었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혹시나 기억이 나더라도 평생 묻고 사시는 게 나으실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챠샤오빠오**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아침부터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식당. 진은 쏟아지는 그릇들만 해도 정신이 없는데, 오늘 뭔가 달라진 사장과 달수의 모습에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사장이야 오늘 만남이 걱정돼서 그렇다지만, 달수는 왜 또 생각이 많아 보이는지 궁금했다.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은~ 나라에 대한 걱정 말고 뭐가 더 있겠습니까?”


“네. 애국자시네요.”


“사장님은 좀 어때요? 별다른 움직임이 없나요? 좀 따라다니시는 것 같던데.”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전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가는걸요~ 몇 번 보셔서 아시잖아요.”


벼랑 끝에 다다랐다고 느낀 달수에게 남은 카드는 이 테러범들뿐이었다. 그래서 한 번 그들을 떠보기로 했던 것인데, 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주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어느새 시간이 3시가 넘었다. 사장은 옷과 신발을 갈아입고 서둘러 가게를 나갔다. 식당 안의 종업원들이 모두 그의 나가는 모습을 그다지 편치 않은 마음으로 바라봤고, 그중 달수의 표정은 씁쓸하다 못해 어둡기까지 했다.


사장이 식당 밖을 나서면서 건너편의 인력거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 인력거 앞에 있는 형원을 보고 멈칫했다.


“경찰서 가시죠? 경감님께 돈은 이미 받았습니다.”


사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올라앉았다.





**경찰서 가는 길**


형원은 전날 츠즈키에게 돈을 받으면서부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무슨 말을 걸어야 하나? 어떻게 찔러야 이 늙은이가 자신이 배신자라는 걸 실토할까?’


그냥 무작정 찔러볼까? 아니면 구구절절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울며불며하게 만들까? 아니지. 그렇게 울 놈이었으면 이런 짓을 벌이지도 않았겠지. 그냥 힘으로 눌러 협박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젊은이, 이 길보단 오른쪽 길로 가주시오.”


“네? 여기가 더 빠른데요?”


“여긴 길이 질고 사람들 통행도 많아서 멈춰야 할 일이 많아 다른 인력거꾼들도 잘 다니지 않습니다. 가시면 더 고생일게요.”


“아··· 네네. 저도 알고 있는데 오늘 왠지 이쪽으로 가고 싶더라도요.”


‘언제 봤다고 훈계질이야?’ 어이가 없어서 그는 고집을 부리며 원래 가던 길로 갔다.


“흠··· 고집이 센 청년이시구려. 이 지역에 온 지 얼마 안 되셨죠?”


“네, 그래도 인력거는 다른 곳에서도 오래 했습니다.”


“그래요?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긴 한데, 인력거는 안 해 본 듯한데요?”


역시 연륜은 못 속인다고, 참 예리하구나. 허를 찌르려 했는데 오히려 찔렸네···. *라고 생각하며* 그는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조선 분이시죠?”


“네, 조선에서 왔죠. 청년도··· 맞죠?”


“네, 맞습니다. 혹시 독립이 된다면 다시 고향에 내려가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음······”


사장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눈시울이 잠깐 붉어졌지만, 형원은 이를 볼 수 없었다.


“저는 여기서 터전을 이미 일궈 놨잖아요. 여기서 절 믿고 따르는 식구들이 상당수인데, 제가 어찌 감히 여길 벗어날 생각을 하겠습니까? 전 이곳 생활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 뭐··· 식당이 워낙 잘 되시니까요.”


“하하,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하. 아무튼,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네, 그럼요. 편하게 물으셔도 됩니다.”


“혹시 며칠 전에 저를 왜 쫓아오셨던 겁니까?”


예상치 못했던 직접적인 질문에 당황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장과 눈이 마주쳤고, 서로 아무 말 없이 흐르는 정적을 조용히 버티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석호필 (Homer B. Hulbert, 1863~1949)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 언론인으로 조선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다. 1886년 조선에 와 육영공원 교사로 활동하며 근대 교육 발전에 기여했고, 《대한제국신문》을 창간해 한글 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을사늑약 반대 운동에 앞장섰으며, 1907년 고종의 밀서를 들고 헤이그 특사 파견을 지원했다. 이후 일본의 감시를 받으며 강제 추방당했지만,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한국 독립을 지원했다. 1949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 중 세상을 떠났으며, 대한민국은 그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석호필, 조선을 사랑한 외국인』(김용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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