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고민
**챠샤오빠오로 가는 길**
형원은 기대치 않게 츠즈키와 서장을 인력거에 태우고 식당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다리가 어찌 움직이고 있는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모든 신경이 그들의 대화에 쏠려 있었다. 서장이 퉁명스럽게 경감에게 물었다.
“근데 날 거기 데리고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도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워낙 중대한 사항이라.”
서장이 질문을 하자 형원은 귀를 쫑긋 세워 집중했으나, 경감이 답을 주지 않자 ‘쳇. 사장이 자기 정보원이라서 가는 거면서, 뭔 말을 아끼고 있냐. 웃기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근데 서장님, 켄타랑 이야기는 잘하셨습니까?”
“한심한 자식, 무서워서 고향으로 간다길래 한두 번 고사했는데··· 계속 징징대는 걸 나라고 어쩌겠나. 뭐, 그 녀석 원래 이런 일에는 자질이 없는데 총독의 먼 친척이라 여차여차 여기까지 와서 구색이나 맞추고 있었던 놈인데, 잘됐지 뭐. 안 그런가?”
“···..”
“근데 뭐라던가? 왜 잡아갔던 거래?”
대화가 다시 흥미진진해지면서 형원은 다시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으나, 뒤쪽에서 작게 이야기하는 데다 바퀴 소리와 시내의 소음들로 인해 말들이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다.
“정보원이 이 지역에 있는지를 물어봤답니다.”
“그래서 그걸 말했대?”
“네. 그때 자신은 죽지 않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에 형원은 다시금 확신했다. 정보원이 있다는 것을 독립군이 알았다. 그럼 다음 단계는 뭐다? 그 정보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병신 새끼. 그걸 말하다니. 그게 다인가?”
“얼마 전에 잡힌 조선 놈들요. 처형당했다는 걸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럼 김········· 다··· 만··· 은?”
서장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작게 속삭이듯 말을 건넸고, 그래서 이 내용이 형원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서장님, 조용히···. 흠흠··· 그건 켄타도 모르는 거라 따로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야? 없었던 거야? 확실히 확인해 봐야지!”
“죄송합니다. 없습니다. 제가 다시 확실히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들어가서 바로 확인해 봐. 어, 다 왔구만.”
“네, 알겠습니다. 이봐, 10분 정도 걸릴 듯하니 여기서 좀 기다리게.”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식당에 도착했고, 둘은 인력거에서 내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뭐지? 뭐길래 저렇게 조심히··· 제길··· 들었어야 했는데··· 아까 뭐라 했더라··· 김···.. 다···.. 만···.’
이 내용을 계속 되뇌었으나 쉽사리 말이 맞춰지지 않았다.
**챠샤오빠오**
식당에 악명 높은 츠즈키와 서장이 같이 들어서자 내부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더욱이 어제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지라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걱정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밥만 먹고 있었다.
“사장님, 어제 그 경감이 왔어요. 서장도 같이요.”
“밥 먹으러 왔나 보지, 뭘 그리 호들갑이냐?”
예진이 주방에 들어와 하는 말에 진은 물론 달수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음··· 주문은 내가 받는 게 낫겠다. 너는 그냥 다른 손님들 챙기거라.”
“네, 사장님.”
사장은 모자와 장갑을 벗고 바로 그들이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진과 달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오랜만에 찾아주셨네요.”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어제 일은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이게 저희 일이라.”
“무슨 말씀이세요. 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경감께서 잘 처리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셋의 어색한 대화가 이어지자 식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츠즈키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오늘 이렇게 온 건, 켄타 경감이 오늘 아침 안전하게 잘 복귀했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혹시나 걱정하고 계실 듯해서요.”
“소문이 워낙 빨라 그 이야기는 저도 방금 손님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직접 오셔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그 소식도 들으셨을까요? 그를 납치한 놈들이 글쎄, 사장님과 같은 조선 사람들이라 합니다.”
그의 말에 조용했던 식당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다들 어느 정도 독립군이 벌인 일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 그렇다면 우선 저와 관련은 없지만, 제가 깊은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사장님께서 관련이 있으시다면 모를까, 아무 관련도 없으신데 굳이 이렇게 사죄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신가요?”
“그나저나 켄타 경감은 좀 괜찮은가요?”
“네, 그럼요. 마음의 상처가 좀 있지만, 어제의 사장님처럼 어디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습니다.”
“참 다행이네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뭔가 모를 신경전이 느껴졌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냥 좋은 말이 오고 가는 대화였으나, 진이나 달수에게는 이 대화가 너무나 불편했다.
“실은 서장님께서 어제 일이 너무 죄송하시다며 같이 식사라도 할까 하고 오자 셔서 따라 나온 건데, 여기는 너무 보는 눈도 많고 다들 귀도 열려있어서요. 혹시 많이 바쁘시겠지만, 내일 한가하실 때 조용한 곳에서 같이 차라도 한잔 어떠신가요?”
“아···. 차를요?”
“뭐, 바쁘시면 어쩔 수 없고요.”
“아닙니다. 그럼 내일 오후 4시쯤 어떠실까요? 제가 계신 쪽으로 가겠습니다.”
“아, 그럼 제가 인력거를 보내 놓을 테니 타고 오시면 되겠네요.”
“아니, 그러실 필요까진 없는데, 그럼 감사합니다. 그런데 뭘 드시겠습니까?”
“지금 너무 저희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어서···. 서장님께서 불편한 걸 싫어하시는지라, 다음에 조용할 때 다시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장님, 다른 식당으로 다시 모시겠습니다.”
둘은 그렇게 식당을 나섰고 다시 타고 왔던 인력거에 앉았다.
“이봐, 내일 오후 3시 반쯤 여기서 이 집 사장을 태우고 경찰서 앞 찻집으로 좀 오게. 여기 돈은 미리 줌세.”
이들의 대화를 듣고 진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과연 사장과 츠즈키는 어떤 관계일까? 진짜 밀정이라면 저렇게 대놓고 와서 만나고, 부르고를 한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걸까? 그런데 밀정이 아니라면? 왜 사장은 츠즈키랑 자꾸 얽히는 거지? 그리고 뭐가 구려서 그는 형원을 쫓아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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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밖은 다시 어두워졌다.
장사가 다 끝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사장과 예진은 제일 마지막으로 나와 퇴근길을 함께했다. 어제 형원의 미행을 눈치챘기 때문에 진은 이번엔 더 신중하고 조심해서 따라붙었다.
‘저 둘은 진짜 무슨 관계일까? 어쩜 저리도 친할까?’
형원이 이야기해 준 것처럼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고, 사장은 예진의 집에 같이 들어갔다가 30분 정도 후에 나왔다. 그 후, 사장은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같은 시각, 형원도 츠즈키를 따라붙었지만, 그 역시 경찰서에서 나와 바로 집으로 갔다. 둘 다 아무런 수확이 없는 어제와 같은 하루였다. 다만, 어제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달수가 미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츠즈키의 집**
자전거를 타고 대문 안으로 들어온 츠즈키는 이를 마당에 잘 세우고,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의 불을 켰다. 그리고 태엽을 감아 축음기의 음악을 틀었고, 재즈풍의 음악이 크게 흘러나왔다.
“무슨 용건으로 왔느냐?”
“아,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역시 경감님이십니다.”
다른 방 문이 열리고 달수가 나타났다.
“네 입으로 직접 보는 건 위험하다고 좀 조심하자고 하지 않았느냐?”
“네, 그래서 이렇게 무례함을 무릅쓰고 몰래 댁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 뭐가 그리 급해서 왔느냐.”
츠즈키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렌지에 물을 올렸다.
“혹시 켄타 경감이 그날에 대해 말한 건 없습니까?”
“그는 독립군 관련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너도 알지 않느냐.”
“그럼 혹시 저에 대해선···.”
“우선 거기 좀 앉거라. 걱정 마라. 이 역시도 그 녀석이 아는 바가 없다. 그냥 네가 잡아온 두 녀석의 행방에 대해서만 말해 줬다더구나.”
“······”
“할 말이 더 남았느냐? 없으면 이거 마시고 냉큼 가보거라.”
“혹시 만두집 사장은 왜 따로 보시는 건가요?”
경감이 차를 따르며 이야기를 듣다가 그 말을 듣고 김달수를 사납게 쳐다봤다. 그 눈빛을 보자 달수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따로 수사하거나 누굴 만나는 것도 네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의도로 만나시는 건지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서장님이 큰일을 앞두고 그 자가 의심스럽다고 하셔서 한 번 보는 것이다. 자네도 그자가 수상하다고 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중요한 시기에 그를 자극하시면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목표는 김좌진이지, 그깟 사장 놈이 아니지 않습니까?”
“걱정 말게. 자극하지 않을 거니깐.”
“아니면 제가 옆방에서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차를 마시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찌푸려진 츠즈키는 차를 다시 내려놓았다.
*‘어디서 감히 내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굽신거리던 게··· 이야기 몇 번 들어줬다고 자꾸 말을 거들어? 천한 조센징 주제에.’*
그렇지만 그는 최대한 화를 누르며 차를 다시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 혹시나 고성이 오가면 주변에 소리가 새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까지 틀어놓은 건데, 큰일을 앞두고 조심, 또 조심하자는 생각이었다.
“자네가 왜 굳이?”
“아무래도 그 자가 독립군인지 아닌지 제가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번 작전은 서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건이라 그렇게 하긴 좀 힘드네. 자세한 대화 내용은 나중에 따로 전달하도록 하겠네.”
나름 눈치 하나로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는 그였다. 상대방의 태도는 원래도 재수 없었지만, 오늘은 뭔가가 많이 달랐다.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느꼈고, 이대로 여기서 나가면 안 된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그는 앞의 주전자를 들어 빈 잔을 더 채웠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정보를 더 캐내야 한다. 아니면 이 주전자로 바로 머리를 가격하고 죽인 다음··· 그리고 도망을···.’
달수가 착잡한 심정으로 경감을 바라봤고, 그의 손이 들고 있던 주전자는 이미 넘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심훈 (沈熏, 1901~1936)
독립운동가이자 소설 『상록수』의 작가로, 문학과 영화로 항일 정신을 전파한 인물이다. 3·1 운동 당시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언론과 문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그의 대표작 『상록수』(1935)는 농촌 계몽운동을 다루며 일제강점기 민중의 저항 의식을 담았다. 또한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36년 병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을 추서 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심훈 평전』(김용직,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