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실타래
**형원과 진의 숙소**
“사장님이 계셨다고? 제대로 본 거 맞아?”
“진짜라니까! 오늘 내가 몇 번을 봤는데 그걸 못 알아보겠어?”
“뭐지··· 네가 미행한 걸 눈치채고 따라붙으셨나?”
“자기가 켕기는 게 없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어? 뭔가 있으니 걱정돼서 누군지 확인한 거겠지.”
진은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자꾸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들어올 때 수상한 사람 못 봤어?”
“뒷문으로 들어와서 그건 확인 못 했어.”
“달수 그자는 나 들어올 때까지 있더라. 아마 지금도 있을 수도 있어.”
아까 진이 했던 것처럼 형원도 손거울을 통해 조용히 밖을 지켜봤다. 역시나 누군가 몸을 숨기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달수 동지구나.”
“언제 봤다고 벌써부터 동지 타령은··· 어쨌든 지금은 우리 신분을 노출할 단계는 아닌 듯해. 아직 모든 게 명확하지 않아.”
“하···.. 그래··· 아직도 더 확인해야 한다는 거지?”
“조급하지 말자. 미안.”
자꾸 기다리라고만 하는 그에게 형원은 짜증이 조금씩 밀려왔다. 생각해 보면 둘이 아주 오래된 사이도 아닌데 생사를 같이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맞춰주고 있는 상황이 조금 억울했다.
“뭐.. 우리 의심병 환자님께서 더 지켜봐야 한다는데 그래 드립죠.”
“잘 생각해 봐. 우린 백야 장군님을 뵙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도 늦지 않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7월 25일···.”
“넌 장군님을 뵙고도,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닮은 사람이 연기하는 걸 수도 있잖아’라고 할 놈이야.”
형원의 비아냥에 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달수가 여길 감시하는 거 말곤 모든 게 그의 말에 끌리는 게 사실이다. 혹시 저 자도 우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감시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넌 어찌하고 싶은데?”
“난 그 관동군 경감 새끼를 한번 볼게. 이번엔 네가 그렇게나 신뢰하는 사장을 감시해 봐. 어때?”
“그래. 그럼 달수 사람도 자기 뜻대로 내가 사장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다 정리된 거지? 그럼 난 이만 잔다.”
**경찰서**
이른 아침,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누가 봐도 옷도 다 찢어져 거지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터벅터벅 경찰서로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온몸에는 흙인지 똥인지 분간이 안 가는 노폐물로 뒤섞여 있어 악취도 심각했다. 행인들도 그의 꼴과 악취에 요단강이 갈라지듯 그의 주변을 피해 걸었다. 경비를 보던 한 순사가 코를 막으며 그를 막아섰다.
“악! 냄새! 여기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귀찮게 하지 말고 냉큼 썩 꺼져라. 이 거지새끼야.”
“나 켄타 경감이다.”
“뭐?”
“켄타라고.”
그는 창피하고 민망해서 그리고 피곤함까지 더해져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을 밝혔다.
“뭐라는 거야 이놈이? 동네 바보인가? 냄새나니 얼른 꺼지라고!”
“나 경무과의 켄타 경감이라고!”
그는 답답함과 수치심에 소리를 질렀다. 그의 고함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경찰서 건물 안 사람들까지 그의 이름을 듣고 창문을 열고 그를 쳐다봤고, 일부는 뛰쳐나와 그를 호위하였다.
**경찰서 취조실**
“그래서 널 납치해 간 놈들이 조센징 놈들이었다는 말이지?”
“네, 맞습니다.”
“멍청한 놈. 넌 일본 경찰의 수치다.”
“죄송합니다.”
취조실에는 서장과 켄타 그리고 츠즈키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는 민감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장님, 너무 노여워 마시고 이 건에 대해서는 제가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츠즈키, 너도 똑같아. 정보원을 어찌 다루길래 이런 정보도 놓치고 말야. 아무튼 이번 일로 지금 준비하는 작전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둘 다 고향에 돌아가서 예전처럼 남들 밑에서 빌어먹게 될 테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똑바로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서장은 잔뜩 화가 난 상태로 방을 나갔다. 츠즈키는 서장이 나가자마자 켄타의 배를 발로 힘껏 찼다.
“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개자식이. 아··· 씨. 아파··· 야! 너 내가 만만하냐? 이런 미친, 아··· 씨··· 내가 네가 다루는 조센징 놈들과 같은 줄 알아?”
“도박이랑 술에 미쳐 살더니 꼴좋다. 근데 네 인생만 망치면 되지. 내 인생까지 망치려 들어?”
“아··· 씨··· 야. 말이야 바른말로. 아까 서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네가 그 정보원 새끼 관리 잘했으면 내가 왜 잡혀가냐? 그들이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거 아냐? 병신처럼.”
켄타가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나며 짜증을 냈다. 그의 말에 더 화가 난 츠즈키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야. 그놈들이 한패라는 증거 있어? 다른 조직일 수도 있고, 개인 원한일 수도 있고. 너 여기저기 돈을 엄청 해 드셨더니만!”
“내가 돈 좀 뜯어낸 건 맞는데, 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 뻗는다고. 장사가 잘 되는 놈들 위주로만 받았고, 그게 나만 받은 게 아닌데, 개인 원한? 원한이라면 사무실에서 서류만 보는 나보단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네가 더 많지 않을까?”
“하··· 씨··· 어이가 없네. 그래 난 목숨 걸고 일한다. 그래서 너처럼 밤에 그렇게 맨날 취해서 싸돌아다니질 않아!”
“그 덕에 내가 너 대신 똥통에서 구르고 온 거 아냐! 이 빌어먹을 놈아! 내가 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죽는 줄 알고 어! 이런 니미럴. 야. 그 조센징 놈들 똥꼬 핥아가면서 목숨만 살려달라 구걸하고 어! 이런. 씨. 소, 돼지 똥 모아놓은 데 구르는데, 어! 냄새도 안 나. 무서워서. 살아서 돌아가야겠단 생각뿐 안 나더라. 하··· 씨···”
켄타는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고, 그런 그에게 츠즈키는 더 이상 역정을 낼 수 없었다. 켄타가 조금 진정되자 츠즈키가 물었다.
“그래도 조사할 건 해야 해. 넌 안에서 서류나 끄적대니 모르겠지만 지금 엄청 중요한 시기다. 그놈들 얼굴을 봤어?”
“손발 다 묶여 있고 눈도 가려져서 그놈들 못 봤어. 창피한 일이지만 잡혀갈 때는 취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
“뭘 물어보디?”
“얼마 전 잡아온 독립군 놈들, 왜 잡았는지, 어떻게 됐는지, 어찌 알았는지 정도?”
“그래서 말해 줬어?”
“너 말대로 내가 뭘 알겠냐. 안에서 서류만 끄적대는데. 그래서 모른다고 했지.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아는 거 일부는 알려 줬어. 그 애들은 죽었다. 정보원이 있는데, 그 정보원 덕에 정체를 알게 됐고 잡았다. 딱 그 정도···.”
“야! 정보원 이야기를 말하면 어떻게?”
“미안하다. 거기 그러고 있으니 살아야겠단 생각뿐이더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지만, 고문받고 죽은 애들···. 솔직히 내가 그 처지에 있으니 미안하더라. 난 이제 무서워서 여기 못 있겠어. 다 정리하고 고향으로 갈래.”
이렇게 말하고 켄타는 총과 벨트, 모자 등을 다 책상에 두고 방을 나섰다. 츠즈키는 이런 켄타를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멀뚱히 서 있었다.
‘달수 그놈의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시간문제일 듯한데···. 녀석은 과연 걸리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까?’
**경찰서 앞**
이전에 둘이 약속한 대로 형원은 츠즈키를 염탐하기 위해 경찰서 앞에 인력거를 대놓고 서성였다. 그런 그에게 다른 인력거꾼이 심심했는지 말을 걸었다.
“혹시 아저씨는 몇 시쯤 나왔어요?”
“저는 7시쯤 나왔습니다.”
“그럼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겠구만!”
“뭐가요?”
“아니, 나도 들은 건데, 그 실종됐던 경찰 하나가 온몸에 똥 범벅을 하고 경찰서로 들어왔다더라고.”
“네? 진짜요?”
“좀만 일찍 나왔으면 그 통쾌한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 음··· 음···”
갑자기 인력거꾼은 말을 하다 말고 자기 인력거로 잽싸게 갔고, 경찰 둘이 형원의 인력거에 앉았다. 그는 뒤쪽으로 가는 그를 보느라 순사들을 보지 못한 채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방금 장거리를 뛰어 기운이 나지 않아 좀 쉬어야 할 듯한데··· 어.”
“뭐라고? 뭐 이런 건방진 놈이 다 있느냐? 다시 일어나기 귀찮으니 그냥 가라, 이놈아.”
거기 앉아 있는 자들은 츠즈키와 서장이었다. 형원은 그들을 보고 말을 하다 말고 냅다 굽신 절을 하였다.
“아이고, 이렇게 중요하신 분들께서 타셨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이 잠시 더위를 먹어 미쳤었나 봅니다. 어디로 가실까요?”
“거기 시내에서 제일 큰 만두집 있지 않느냐. 거기로 가자.”
“아··· 거기···. 챠샤오빠오 말씀이십니까? 거기는 어인 일로?”
“밥집에 밥 먹으러 가지 뭐하러 가겠느냐. 허튼소리 그만하고 얼른 출발하거라.”
“네! 냉큼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켄타가 실종되었을 때도 츠즈키는 아침 일찍 만두집을 갔다. 그리고 그가 살아 돌아온 날 바로 또다시 만두집을 간다. 형원은 뭔가 점점 꼬여 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있는 것 같아 고민이 됐다.
‘이젠 어찌해야 하지···?’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윤희순 (尹熙順, 1860~1935)
윤희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을미사변과 국권 침탈 이후 춘천 의병에 가담해 항일운동을 시작했으며, 여성 의병대를 조직해 군자금을 모으고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 또한 ‘안사람 의병가’ 등 항일 가사를 지어 민중의 독립의식을 고취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독립단을 지원하며 군사 훈련과 무기 조달을 돕는 활동을 이어갔다. 1935년 생을 마감했으며,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윤희순 연구』(박용옥,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