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엄마, 이모, 큰누나, 형아, 작은누나, 굿모닝~
난 모닝커피 한 잔 하면서 편지 쓰고 있어.
아~ 커피 향 좋다~
내가 모닝커피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지?
아침에 엄마가 전기주전자에 물 따르는 소리 나면 쪼르르 달려가고
물 끓고 엄마가 커피 타는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엄마가 혼자만 마시면 “앙!” 앙탈도 부렸지.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한 할짝 얻어먹었잖아?
근데 여기선 나도 한 잔 가득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어.
나 떠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살도 찌고 얼굴 좋아졌지?
설마 내가 가족들 그리워서 낑낑거리고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여기 오자마자 이리저리 구경 다니고
댕친들이랑 신나게 노느라 너무 바빠!
벌써 여기서 사귄 댕친들이
아랫동네에서 털끝만 스친 댕친들 다 합친 것보다 많아.
여긴 진짜 신기한 곳이야.
내가 좋아하던 간식 박힌 공이랑 간식 뱉어내는 탕탕이 있잖아.
여기도 똑같은 게 있어. 근데 달라!
안에 든 간식을 먹어도 먹어도 줄지가 않아! 멋지지?
여기 오자마자 다리랑 심장도 다 멀쩡해져서
댕친들이랑 신나게 뛰어다녀도
하나도 안 아프고 숨도 하나도 안 차.
분리불안 심했던 내가 가족들 생각도 안 하고
너무 신나게 놀고만 있는 것 같아서 섭섭한 건 아니지?
그래도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실 때는
가족들이랑 내가 좋아했던 것들 생각해.
엄마랑 먹었던 모닝커피, 매일 함께 했던 집 근처 산책.
쓰다듬어 줄 때 제일 부드러웠던 이모 손길,
귀 뒤 만져주면 유독 시원했던 큰누나 손길.
착 붙어서 쉬기 좋았던 작은누나 무릎.
딱 내 취향 냄새가 나서 파고들기 좋았던 형아 겨드랑이,
꿀잠 자기 좋았던 큰누나랑 형아네 커다란 인형 쿠션.
드라이브하면서 차창 열고 맞았던 바람.
큰누나가 엄마 집 올 때마다 전화로 들려줬던,
내 귀를 쫑긋쫑긋하게 했던 말.
“찌찌야, 큰누나가 간다!”
그런 것들 말이야.
근데 큰누나는 나랑 좋았던 것보다
미안했던 거 더 많이 생각하더라?
나이 들어서 싫어하게 된 목욕 억지로 시킨 거,
약 먹인 거. 병원 자주 데려간 거?
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었잖아!
분리불안 심한 나를 어쩔 수 없이
큰누나 일터인 학원에 데려가서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받게 했다고?
내가 도도한 척했지만
애들 관심 은근히 즐겼던 거 몰랐어?
작은누나랑 내 앞에서 다음 주에는
내 옆에 있을 사람이 없다고 걱정했던 거?
내가 그 말 들어서 떠났다고 생각하다니...
아이고 큰누나, 그걸 내가 맘대로 할 수 있었으면
떠나는 걸 선택했겠어? 가족들 옆에 있는 걸 선택했겠어?
나 떠나던 날 심폐소생술 안 했다고,
나 떠난 직후 화장하기 전에 무더운 날씨라
얼음 팩 위에 올려둬 너무 추웠을 거라고,
화장할 때 너무 뜨거웠을 거라서 미안하다고?
아이고 큰누나, 그만! 제발 그런 생각 그만!!!
나도 미안했던 거 적어볼까?
밥 안 먹고 간식만 먹으려고 했던 거, 미안해!
목욕하기 싫어서 숨었던 거, 미안해!
혼자 있으면 난리 쳤던 거, 미안해!
아팠던 거 너무너무너무 미안해!
약 억지로 먹으면서 부르르 떨었던 거, 미안해!
아파서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말랐던 거, 미안해!
온 가족이 나 지킬 스케줄 맞추느라
머리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해!
가족들이 자꾸 나한테 미안했던 거만 생각하게 해서
정말 정말 정말 미안해!
내가 자꾸 어쩔 수 없었던 걸로
미안하단 소리 하니까 어때?
마음 아프지? 답답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가족들이 자꾸 나한테 미안했던 거만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 아파.
어쩔 수 없었던 거,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는 거 말고
우리 좋았던 거, 웃겼던 거 더 많이 떠올리자. 응?
내가 꼬물이 철부지 시절에 신발 좀 물어 나른 거 말고는
짖지도 않고 쓰레기통 한 번 뒤진 적 없이 착했던 거,
밖에 나가면 한눈 안 팔고 사고 안 치고
가족들 뒤만 졸졸 따라다닌 거,
빡빡이 미용으로 “빡이”가 돼서
몰티즈인데 치와와처럼 보여 완전 귀여웠던 거,
귀 마사지받으면서 졸다가도
큰누나가 손 멈추면 계속하라고 발로 툭툭 쳤던 거.
혼나다가도 내 이름 부르면
꼬리 살랑살랑 흔들던 거,
어떤 옷이건 찰떡같이 소화하던 모습,
잘 때 쌔근쌔근 소리 내면서
크르릉 코 고는 소리로 화음 넣던 거,
내가 먼저 깨면 자고 있는 가족들한테 가서
킁킁거리면서 깨웠던 거,
물 갈아달라고 물그릇 탕탕 치던 거,
초인종 소리나 버튼 키 소리에
우다다 달려가던 거,
배변 실수해서 벽에 머리 박고
나 안 보이는 줄 알고 숨어있던 거,
16살에 처음 배운 손가락 사이 “코!” 바로 하던 거.
엄마가 집 앞에서 쓰러졌을 때
아래층 아줌마한테 달려가 발 핥아서
아줌마가 엄마 발견하게 한 거.
그런 것들 말이야.
어때, 미안했던 거 떠올리는 것보다 훨씬 낫지?
내 생각나면 이런 거 더 많이 생각하기! 약속!
그래야 내가 여기서 가족들 걱정 안 하고 행복하게 살지. 알았지?
그리고 부탁이 더 있어.
엄마~ 혼자 있어도 밥 잘 챙겨 먹어야 해~ 또 아프면 절대 안 돼!
이모~ 이모 손은 세상에서 제일 부드럽잖아. 가족들 쓰담쓰담 많이 해줘~
작은누나~ 큰누나랑 듀엣으로 우는 거 이제 그만! 듀엣으로 웃고 떠들자!
큰누나~ 꿈에 놀러 오라는데 스케줄 확인 좀 해봐야겠네?
혹시 내가 안 오면 너무 열심히 노느라 바쁜가 보다 생각해~
형아~ 겉으론 제일 멀쩡해 보이지만 슬픈 티 안 내려고 애쓰는 거 다 알아.
그래도 우리 가족이 된 형아가 있어서 내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형아 짝지 큰누나 마음에 호~ 많이 해줘야 돼!
우리 가족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난 우리 가족이 많아서 정말 행복했어.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해!
난 이제 분리불안 없어져서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
그냥 신나게 잘 놀고 있을게~
먼 훗날, 어느 날 문득 만나게 되면
예전처럼 우다다 달려갈게~
이제 진짜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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