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빠르고 발 빠른 봄이가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이모, 안녕~ 나 봄이야!
갑작스럽게 내가 멀리 떠났다는 소식 듣고 많이 놀랐지?
이모가 작년에 우리 집 오려다 못 왔던 거 후회하고
슬퍼하는 모습 보면서 나도 맘이 안 좋았어.
그때 왔더라면 이모랑 한동안 또 즐겁게 지냈겠지만
못 올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잖아.
우리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함께 행복했던 시간만 기억하자!
이모가 열 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우리 집에 왔던 날 기억하지?
내가 이모를 처음 봤는데도 털 속에 묻힌 동그란 눈 반짝이며
꼬리콥터 신나게 흔들어 환영해 줬잖아.
마치 같이 사는 이모가 외출했다가 돌아온 것처럼 말이야.
난 문이 열리기 전부터 알고 있었거든.
이모한테 내 사랑이 필요하다는 거.
내가 눈치 하난 기가 막히게 빨랐던 거, 잘 알지?
우리 둘이 산책하다가 이모가 길이 헷갈려 머뭇거릴 때마다
내가 앞장서 집 방향으로 안내했잖아.
아침에 방 안에서 이모가 잠에서 깬 것도 바로 알아차리고
문 앞에서 이모가 나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주방에서 이모가 요리할 때면 펜스 앞에서 발 동동거리다가
도저히 못 참겠으면 펜스 열어젖혔지만
혼날까 봐 얼굴만 들이밀고 있다가
이모가 웃어주면 그제야 들어갔잖아.
이모랑 둘이 산책할 때
내 귀여움 최대치로 뿜뿜 하려고 애썼던 거 알아?
타깃은 이모가 아니라 지나가는 외국인들이었어.
결과는 백발백중이었지.
다들 내 귀여움에 반해서 이모한테 말을 걸었잖아.
이모 영어 울렁증을 눈치챈 내 큰 그림이었어. 헤헤.
근데 이모도 나만큼 눈치가 빨랐어.
내가 좀 피곤하거나 내키지 않을 때면 바로 알아차리고
다른 가족들하고 다르게 나 안 만지고
사랑 넘치는 눈으로 보기만 했잖아.
눈치 빠른 공통점 때문에 금세 이모를
다른 가족들만큼 사랑하게 됐는지도 몰라.
난 그때 이모가 좀 불안한 상태인 것도 알았어.
한국생활 접고 미국으로 올까 고민하고 있었잖아.
우리랑 생활하면서 이모가 어떤 결정을 하건
마음이 평온해지길 바라면서 이모 곁에 있었어.
내가 우리 가족들 이민 초반부터 함께해서
새로운 시작에 따라붙는 불안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 이름이 봄이가 된 것도 새로운 시작에
밝은 희망이 가득하길 바라는 뜻이었잖아.
내가 우리 가족들 새로운 시작에 잘 적응시킨 것처럼
이모한테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내 덕분에 맘이 좀 편해졌지?
나를 쓰다듬는 이모 손길에서
이모 마음이 점점 평온해지는 걸 느꼈거든.
근데 눈치만큼이나 빨랐던 내 발 때문에
이모를 좀 힘들게 했던 것도 알아.
같이 산책할 때는 내가 너무 빨라서
이모는 항상 “봄아, 멈춰!” “거기 있어!” “기다려!” 그랬지.
내가 혹시나 이모 발에 차일까 봐 걱정하기도 했고 말이야.
근데 그것도 내 큰 그림이었어.
이모가 쓸데없는 걱정 안 하고
나한테서 눈 못 떼게 하려는. 헤헤.
난 이모가 다정하게 “봄이야, 이리 와.” 할 때 참 좋았어.
이모 품에 안겨서 이모 손길에 몸을 맡기고 눈 감고 있다가
스르르 잠으로 빠져들 때도 참 좋았고.
내가 가족들 다 같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번갈아 가면서 공평하게 무릎에 앉아줬던 거 기억하지?
이모와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난 이모를 우리 가족들이랑 똑같이 생각해.
이모는 내가 가족들 없는 여기서 외롭지 않은지 걱정하던데
외로움? 그게 뭐야?
이모랑 가족들한테 받았던 사랑이 차곡차곡 적립돼 있어서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
게다가 여기서 댕친들이랑 신나게 노느라
외롭다는 생각할 틈도 없어.
그러니까 우리 서로 아쉬웠던 거 생각 말고
사랑으로 꽉꽉 채웠던 시간만 생각하자. 알았지?
지금 이모가 또 다른 시작을 앞둔 거 알아.
이모가 머뭇거리지 말고 나아갔으면 좋겠어.
한 발 내디디면 나처럼 친절하게 반겨줄 누군가가 있을 거야.
조금만 걸어가면 내 이름처럼 따뜻한 세계가 펼쳐질 거야.
이모의 새로운 시작을 늘 응원할게!
이모, 살면서 늘 행복한 시작만 하다가 와~
호호할머니가 된 이모가 여기 오는 날,
우리 처음 만났던 날처럼
꼬리콥터 신나게 흔들면서 마중해 줄게.
그럼 그때까지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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