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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회인이 된 큰누나에게

절대 동안 까망이와 17년 장수댕 곰돌이가

by 금강이 집사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큰누나, 안녕~ 나 까망이야.

내가 떠난 지 벌써 6년이 넘었네?

난 아플 일 없는 여기서 행복하게 잘 지내.

2년 전에는 곰돌이 형도 이리로 와서

같이 더 신나게 놀고 있어.


곰돌이와 까망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큰누난 너무 작은 나를 보고 온갖 걱정을 했지만

난 그 걱정이 무색하게 밝고 씩씩하게 컸지.

나중엔 나보다 훨씬 크면서 다른 댕친들 앞에서

덩치 값 못하던 곰돌이 형도 지켜주고 말이야.


큰누난 나랑 뭐 했을 때가 제일 기억나?

난 처음으로 우리 둘만 데이트했던 날!

스튜디오에서 증멍사진도 찍고 카페도 갔잖아.

큰누날 독차지해서 완전 신났지.


까망이 증멍사진


특별한 날 아니더라도

큰누나가 자주 해줬던 팔베개도 참 좋았어.

나 낳아준 엄마 품에 있는 것처럼

따뜻하고 맘이 편해지곤 했지.


큰누나가 나 아픈 걸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게

무심했던 탓이라고 자책하던데 그러지 마.

마냥 어리고 건강한 줄 착각하게 만든 건 나니까.

내가 타고난 절대 동안이었잖아.

아픈 걸 숨기는 것도 타고난 본능이었고.


마지막 산책. 강아지풀 냄새 맡는 까망이.



지상에서 마지막 날,

늦게 퇴근하는 엄마까지 기다려

가족들 다 인사하고 떠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가족들 사진 찰칵찰칵 눈으로 다 찍어서 온 덕분에

여기서도 가끔 꺼내보고 있어.


큰누난 그날 나한테

진통 패치 못 붙여준 거 후회했지?

난 큰누나 마음에 진통 패치 못 붙여준 거 후회해.

우리 서로 쌤쌤이니까

못 붙여준 진통 패치는 그만 잊어버리자.


큰누난 가족들 생각도 안 날 만큼

여기서 신나게 놀라고 했지?

큰누나도 그랬음 좋겠어.

우리 생각 안 날 만큼 많이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가끔 생각이 나더라도

좋았던 기억만, 행복했던 추억만 떠올렸으면 좋겠어.


참, 매년 생일 파티 해줘서 고마워.

큰누나 눈에는 안 보였겠지만 그날마다 항상 갔어.

가족들도 보고 맛난 간식 잔뜩 먹는 건 좋은데

슬퍼하는 가족들 보면 맘이 좀 안 좋아.

다음 생일 파티 컨셉 주문해도 돼?

"웃음 많이! 눈물 쬐끔!"

알았지?


까망이 생일상



그럼 잘 지내~ 행복해야 돼!!!

곰돌이 형이 그만 좀 쓰고 연필 넘겨 달래.

큰누나, 안녕~




큰누나, 안녕? 나 곰돌이야.

편지는 처음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

까망이가 쓴 거 커닝 좀 해야겠다.

곰돌이 증멍사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가족 모두 입양이 처음이라 엄청 신기해하며 날 요모조모 살폈지?

나도 엄청 신기했어.

조용히 엎드려서 요기조기 둘러봤지.


함께 잘 놀았던 까망이가 먼저 떠나고

내가 좀 우울했을 때도 생각나네.

장난감 놀이도 잘 안 하고

더 이상 배도 안 까고 잤더니

큰누나가 나 위로해 주려고

댕친들 모임도 나가고

같이 산책도 더 많이 하고

캠핑, 펜션 여행 진짜 여러 곳 다녔잖아.

덕분에 내 우울은 다 날아갔고 사회성도 좋아지고

큰누나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지.

큰누나가 하네스만 들면 좋아서 뱅글뱅글 돌았고

캠핑 의자에 엎드려 솔솔 부는 바람에

잠이 솔솔 오던 그 시간도 참 좋았어.


우리 집에는 나보다 늦게 왔으면서

먼저 떠나버린 까망이한테 미안할 정도로

참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지.


캠핑장에서 잠자는 사진으로

유한킴벌리 꿀잠 대회 반려동물 부문

1등 먹어서 내돈내산도 경험해 봤잖아.

상금으로 매트랑 방석이랑 장난감 잔뜩,

한 살림 마련해서 큰누나 엄청 뿌듯하게 해 줬지.


꿀잠 대회 1등 먹은 곰돌이 사진



내 장례식도 특별했지.

댕친들이 조문도 오고

꽃다발과 선물도 많이 받았잖아.

아마 나처럼 멋진 경험 많이 한 댕친은 없을 거야.


큰누난 나한테 참 좋은 경험을 많이 시켜줬는데

난 큰누나한테 참 다양한 병 수발을 시켰네?

심부전, 신부전, 췌장염, 방광염, 전정계 질환......

그 와중에도 하루 네 번 산책도 거의 안 빼먹고

내 케어 꿋꿋하게 해내던 큰누나가

나한테 구강종양까지 생기니까

하늘에 대고 눈으로 심한 욕 하던 거 기억난다.

그래도 그 뒤로도 약 먹고 수액 맞으면서

사계절이 바뀌는 걸 한 번 더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


마지막엔 걷지도 못하고

매일 피를 쏟고 밥도 물도 못 먹던 나를

편안하게 잠자듯 떠나게 해 줘서 고마워.

딱, 나도 그만 떠나고 싶을 때였어.

큰누나가 날 포기한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고통을 덜어주려고 했던 거 잘 알아.


우리가 무려 만 17년 넘게 함께하는 동안

난 정말 행복했어.

큰누나도 그랬을 거라 믿어.



큰누난 까망이랑 나랑

시간을 더 많이 못 보내줬다고 후회하지만

우리가 자라는 동안

누나도 힘들게 성장하고 있었잖아.

스펙 쌓느라 바쁜 대학생, 치열한 취준생,

정신없는 사회 초년생을 거치면서 말이야.

이젠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은

큰누나가 진짜 자랑스러워.

게다가 유기된 우리 댕친들 돕는 일도 하잖아.

우리 보내고 다시는 입양 안 하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용기 내서 임시보호까지 하고 말이야.

임보하는 댕친이랑 산책하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 때 있었지?

그거 나였어!!!


우리한테 미안한 마음이

돌덩이가 돼서 가슴에 얹혀 있는 큰누나~

이제부턴 그 돌덩이가 바람 불 때마다

솜털 날리듯 조금씩 조금씩 날아갈 거야.


행복해야 돼. 큰누나!

나중에 아주 나중에 큰누나가 여기 올 때

까망이랑 같이 딱 요렇게 대기하고 있을게~

그때까지 안녕~ 큰누나~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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