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뻔했던 신혜가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아빠아아아아~~~~~
도대체 뭐하고 있어어어어어어~~~~~?
일 쩜 줄이고 술도 쩜 줄이고 담배도 쩜 줄여!
딱 끊으라곤 안 할게. 지발 쩜 줄이자! 지발! 응?
내가 얼마나 답답했음 오 년만에 연락해서 잔소리부터 퍼붓겠어?
아빠 과로로 병원에서 링거 꽂고 누워 있는 거 보고 내 맘이 어땠겠어?
내가 이 좋은 데서 댕친들이랑 노느라 얼마나 바쁜데
아빠 걱정하느라 시간 뺏겨서야 되겠어? 안 되겠어? 응?
어휴, 이 딸내미 말 안 듣는 아빠야!!!
내가 목욕이랑 미용할 때마다 난리치고
아무 데나 쉬야 응아 하는 버릇 끝까지 안 고쳤다고
아빠도 나처럼 고집 피우는 거야?
어휴, 내가 증말 못 살아. 증말. 지발 쩜! 말 쩜 들어!
내가 아빠 말투 따라하면서 다짜고짜 큰소리 탕탕 쳐서
아빠 지금 속으로 "너 많이 컸다?!" 이러고 있지?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큰 아빠가 무서워서
바르르 떨고만 있던 나였지.
아빠 지인의 지인의 지인 집에서 더는 못 살게 돼서
아빠 집 갔을 때 이미 일곱 살이나 먹었는데도 말이야.
첫날엔 아빠가 덩치만큼이나
사랑도 큰 사람인 줄 몰라 봤으니까.
아빤 날 보자마자 눈물 그렁그렁한 내 눈에 홀딱 빠져버렸지.
다음 날부터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올 때마다
신발 후다닥 벗어던지면서 그랬지.
“신혜야아아아아~~~~ 뭐하구 있었어어어어~~~~?”
항상 바쁘고 퇴근이 늦던 아빠가
집에서 일할 때 참 좋았는데.
아빠 무릎에 앉아서
아빠 바쁜 손가락 구경도 하고
아빠 투턱, 쓰리턱 변하는 것도 올려다보고
아빠가 만드는 영상 구경도 하다가
졸리면 그대로 잠들고
일 끝나면 우리 최애 교촌 오리지널 치킨 시켜서
반씩 뚝딱 해치우고 말야.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아빠가 며칠씩 출장 가도
내가 쿨하게 다 이해해줬던 거야.
내가 아빠 진짜 놀라게 했던 적 몇 번 있었잖아.
그중 최고는 목 안마기 사건이었나?
아빠가 침대에서 덜덜거리는 이상한 기계를 목을 대고 있어서
내가 궁금해 하니까 아빠가 나한테도 제일 약하게 틀어줬잖아.
그때부터 아빠 팔베게 만큼이나 목 안마기를 좋아하게 됐지.
사건의 그날도 내가 침대에서 목 안마기에 몸을 맡기고
덜덜덜 즐기고 있는데 아빠가 방에 들어와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커다란 눈으로 날 쳐다봤지.
아빤 안마기 틀어준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안마기 켠 게 그렇게 놀랄 일인지 난 몰랐지.
아빠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려다가
바빠서 못 했던 건 지금도 좀 아쉽네.
내 미모에 방송만 탔어 봐.
팬 레터 어머어마하게 받았을 덴테 말이야.
나 17살 어느 날 아침도 생각난다.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었던 내가
피를 한 바가지 흘린 채 낑낑대고 있어서
잠에서 깬 아빠를 심하게 놀래켰지.
아빤 피범벅인 날 끌어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잖아.
의사 쌤이 지금 보내는 게 나를 위한 거라고 했지만
아빤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의사 쌤한테 매달렸지.
결국 큰 수술을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지.
근데 나중엔 내 최애 교촌치킨도 다 안 먹고
입에 문 채로 잠들곤 해서 아빠를 슬프게 했지.
18살이 되고 어느 날부터는 제자리를 뱅뱅 돌기 시작해서
아빠를 또 놀래켰지.
병원에서는 더 해줄 게 없다고 했고
그 뒤로는 돌다가 자꾸 넘어져서
아빠가 이불이랑 베개로 울타리를 만들어줬잖아.
난 알고 있었어.
내가 떠날 날이 언제인지.
그래서 3일 전부터는 아무것도 안 먹었던 거야.
그 3일 동안 아빠는 일도 끊고 나만 끌어안고 있었지.
결국 아빠 품에서 잠자듯 떠나던 날,
아빠가 자꾸 울어서
나도 처음 아빠 만났던 날처럼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떠났지만
정말 고마웠어. 아빠.
화장한 내 뼛가루 집으로 가져와서
종교도 없는 아빠가 3년 동안
매일 아침 향 피워줬던 거,
3년 되던 날 새벽에 우리 늘 산책하던
한강에 뿌려준 거도 정말 고마워.
근데 아빠, 내 삼년상 끝낸 게 언젠데
왜 아직도 프로필 사진이 나랑 찍은 사진이야?
멋진 짝 만나서 프로필 사진 좀 바꾸자. 응?
그러려면 뭐부터 해야 되는지 알지?
제발 일, 술, 담배 줄이고 운동 쩜 해!!! 지발!!!
너무 바쁜 아빠여서 나한테 미안했다며?
계속 그렇게 살면
나중에 아빠 자신한테도 미안할걸?
내 말 잘 들으면 나중에 아빠가 여기 오면
내가 교촌치킨 시켜줄게.
예전처럼 사이좋게 반 마리씩 뚝딱 허자~
내가 시키는 거 제대로 안 하면
튀김옷 부스러기도 없어!!! 알아 들어? 응?
아빠아아아아~~~~~
내가 지켜본다아아아~~~~~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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