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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넉넉한 아빠에게

공탄이가 쓰고 공실이는 냥소리로 참견

by 금강이 집사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아빠, 나 공탄이야.

얼마 전, 난 십 년만에 공실이 다시 만나

같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공실이까지 떠나보낸 아빠가

너무 힘들어해서 편지를 써.


공실이와 공탄이

아빠가 나한테 못해줬던 거

공실이한테는 다 해주려고

공실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아.

아빠 진짜 고생 많았어.

근데 아빠,

우리한테 준 사랑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마.

우린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


내가 원래 살던 집에서

더는 살 수 없게 됐을 때 나를 데려온 거,

일 년 뒤, 반려용품 가게 앞에 버려진

눈도 못 뜨고 탯줄도 안 떨어진

아기 공실이 데려온 거,

그것만으로도 우린 아빠 사랑 넘치게 받은 거니까.


아빠랑 사는 동안도 충분히 행복했고

여기서도 행복하게 살고 있어.

여긴 우리가 싫어하던

드라이기, 청소기 같은 온갖 기계 소리도 없고

물소리, 바람소리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만 있는 곳이야.

아빠가 없는 게 살짝, 아주 살짝 아쉽긴 하지만

우린 정말 잘 지내.


우리 다 같이 살 때

제일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알아?

아빠가 가족 빚 갚느라

추운 겨울 날 가스랑 전기 다 끊겨서

이불 속에서 우리 셋이 꼭 끌어안고 자던 날.

우리 셋 체온만으로 하나도 춥지 않았던 그 밤.


인간들 기준 가난 따위 모르는 우린

아빠 사랑만으로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였어.

도대체 인간들 삶은 왜 그렇게 복잡한지,

짊어진 세상살이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던 아빠,

그런 아빠가 가끔 안쓰럽긴 했어.


우린 비싼 장난감, 비싼 밥 다 필요 없고

아빠만 있음 됐어.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지쳐 돌아온 아빠였지만

우릴 보는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켜졌지.

“내 새끼들! 아빠 많이 기다렸어?”

사랑이 잔뜩 묻은 아빠 목소리 참 듣기 좋았어.


이제 더는 우리한테 못 해준 것만

생각하면서 자책하지 마.

우린 여기선 아프지도 않고

정말 잘 지내는데 딱 하나 아픈 게 있어.

슬퍼하는 아빠를 볼 때 마음이 아파.

이제 슬픔이랑 이별하고

우리 떠올리면 미소만 지었으면 좋겠어.

퇴근 후에 우릴 보던 그 미소처럼 말이야.


아빠가 나 떠나고 나서 몇 날 며칠을 울면서

폐인처럼 지내다가

공실이한테 집중하겠다고 내 물건 다 버렸잖아?

근데 뒤늦게 그게 바보짓이었다고 후회하더라?

그런 후회랑도 이제 이별했음 좋겠어.

덕분에 공실이는 내 몫까지

아빠 사랑 듬뿍 받으면서 오래 살았잖아.


사실 나도 살짝 후회하는 게 있긴 해.

아빠 손가락 가끔 물었던 거도 미안하고

아빠랑 겨우 오년 살고 헤어질 줄 알았으면

애교 좀 더 부릴 걸 싶기도 해.

뭐 그래도 공실이가 아빠랑 오래 살면서

애교의 끝장을 보여줬으니

나도 더는 후회 안 할게.


아빠 내 마지막 모습 기억하지?

병원에서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

걷지도 못하던 내가 마지막 힘을 짜내서

아빠 부르면서 품에 안겼잖아.

항상 따뜻했던 아빠 체온 느끼면서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어.

그런데 화장 비용이 없어서

아빠가 울 때는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어.


불법인 거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담은 상자를 들고

산에 올라가던 아빠를 불러 세웠던

할아버지 기억하지?

사정을 들은 할아버지가 본인 땅이니

해 잘 드는 곳에 나를 묻어주라고 했잖아.


나중에 산사태가 나서

내가 묻힌 자리 표시한 나무가 사라져서

아빠가 슬퍼했지만

지금 아빠 방에 있는 공실이 유골함에

나도 같이 있다고 생각해 줘.



옆에서 공실이가 아빠 마지막 선택이

고마웠다고 전해 달라네.

수술하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의사 선생님 권유로

공실이 보내줬던 거 말이야.


그즈음에 아빠는 공실이한테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울었지만

공실이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떠나고 싶었대.

공실이가 아빠 선택이 정말 고마웠으니까

그 일 자꾸 떠올리지 말래.



공실이는 편지 쓸 시간이 없어.

옛날에 범백으로 다 잃었던 우리 새끼들

젖 먹이랴 뒤처리해주랴 바빠.

아빠가 공실이 아기 때

세 시간마다 분유 타서 먹여주고

수시로 뒤처리도 해준 거

공실이가 잘 배워뒀나 봐.

우린 여기서 충분히 행복하니까

아빠도 행복하길 기도할게.


아빠가 다시는 옛날처럼

세상살이의 버거운 짐을 지는 일이 없기를,

아빠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그때 그 할아버지처럼 따뜻하기를,

아빠가 우리를 사랑해준 것처럼

아빠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기를......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호호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여기 오는 날,

우리 대식구 마중 나가 있을게~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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