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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쟁이 만돌이가 언니에게

by 금강이 집사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언니, 안녕~ 방구쟁이 만돌이야.

편지 봉투 안에 방구 뿡뿡 쏴서 보냈는데 어때?

향기롭지?


언니라는 말 오랜만에 해보네.

난 남잔데 언니가 원하는 대로 불러줬지만

여기선 그렇게 부를 일이 없거든.

누나라고 부르는 예쁜 댕누나들은 많아.

몰랐는데 내가 쫌 연상녀한테

인기 있는 스타일이더라고.

수영장만 가면 댕누나들이 나만 쳐다봐.

언니는 내 수영 실력 아니까 뭔 말인지 알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난 언니 머리 위에 뜬 말풍선을 봤어.

‘아!!! 어렵겠구나, 너무 개구쟁이 같은데?’

언니 예상이 적중했지.


공놀이는 한 번 시작하면

수십 번을 해도 만족할 줄 몰랐고

언니가 실수로 내 리드 줄을 놓쳤을 때는

마냥 신나서 6차선 도로 쪽으로 질주해서

하늘이 노래지는 신비한 경험도 선물해줬잖아.



넘치던 천방지축 에너지 때문에

언니가 버거워 했던 적도 있지만

세월이 흘러서 공놀이 횟수도 줄고

잠만 자꾸 자서 걱정시켰을 때는

옛날을 그리워했던 거 알아.

난 놀 만큼 놀아서 쉬는 게 좋아졌던 건데 말이야.


우리집 통창 옆 안마 의자도 그래서 점점 더 좋아했던 거야.

언니가 약하게 틀어주면 꼼짝 않고 바깥 구경하느라

한참 동안 안 내려갔던 거 기억하지?

지금은 그때가 그리우면

여기 있는 내 전용 구름 안마 의자에 앉아

간식 먹으면서 아랫동네 구경을 해.


언니가 바빠서 많이 못 놀아줬다고 후회하던데

나한텐 등산이랑 매일 같이 한 산책이 최고의 놀이였어.

산에서 같이 그물 침대에 누워서 쉬는 거도 참 좋았어.

난 언니랑 함께한 매 순간이 행복했는데 언닌 어땠어?



내 항암이며 방사선 치료 계속했던 거

후회하던데 그러지 마.

그거 안 했어 봐.

언닌 지금 그거 안 했다고 후회하고 있을 걸?

내가 아픈 걸 알자마자

그날로 회사까지 그만뒀던 언니였잖아.

언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최고의 반려인 상’ 그런 거 있음 언니 차지일 거야.


혹시 세상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기면

꼭 언니 만나러 갈게.

언니가 나 못 알아보면 어쩌냐고?

걱정 마.

잊을 수 없는 내 방구를 뿡뿡 쏴줄게.


언니 요즘 만득이랑 재밌게 지내더라?

나 떠가고 다시는 입양 안 하겠다더니

우연히 만득이를 본 날,

바로 손바닥 뒤집듯 맘을 바꾸다니!

언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

.

.

.

참 잘했어요 ★★★★★


만득이랑 살면서 다시 웃게 된 언니 보면서

나도 한 시름 놨으니까

앞으로도 만득이랑 잼나게 살아.

내 생각도 가끔, 슬프게 말고 행복하게 떠올려 주고.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아래는 만득이한테 읽어줘.




만득이


만득아, 나 만돌이 형아야.

이 형아가 말이야,

언니가 다른 댕친들한테 한눈 팔면

난리 난리치던 질투의 화신이었지만

통 크게 너는 예외로 해준다.

언니 손길과 사랑 듬뿍 받고

언니 많이 웃게 해줘라.

언니가 나 떠가고 한동안 집밖으로도 안 나가다가

작은언니 손에 끌려 억지로 처음 밖에 나간 날,

마침 언니 눈에 띄어줘서 고맙다.


펫샵에서 입양 갔지만 파양돼 돌아와서

골칫덩어리 취급받고 방치됐던 너.

그때 넌 온몸에 곰팡이가 펴 있었고

언닌 온 마음에 곰팡이가 펴 있었어.

무기력하게 축 늘어진 모습하며

생기라고는 없이 퀭한 눈빛,

둘이 어찌나 닮았던지......


이제는 그때 모습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게

둘이 신나게 노는 거 보면

형아도 같이 뛰노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


형아가 너한테 부탁이 있어.

건강하게 오래오래 언니 옆에 있어주라.

아프지 마라. 우리 언니도 아프다.

아프면 참지 말고 티내라.

그래야 우리 언니가 덜 아프다.


내 부탁 잘 들어주면

아주 먼 훗날 니가 여기 오면.

내 구름 안마 의자도 양보하고

내 까까 창고 무한 이용권도 줄게.

그럼 우리 언니 잘 부탁한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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