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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만렙 언니에게

레벨 업 시켜준 새코미가

by 금강이 집사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의지 만렙, 사랑 만렙인 울 언니, 안녕?

살 빼면 강아지 입양해 준다는 엄마 말에

다이어트 성공해 나 데려왔던 언니,

추운 겨울날 나를 품에 안고 온 그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 위한 건 뭐든 팔 걷어붙이고 앞장섰던 언니,

사랑이 너무 넘쳐서 여전히 내 걱정뿐인 울 언니,

언니가 이제 그만 내 걱정 내려놨음 해서 편지를 써.




여기 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냐고?

무지개다리가 진짜 부드럽게 스르륵 움직였는데

도착은 금방이었어.

엄청 신기하고 재밌었어.

게다가 여기 오자마자 난 예전 깨발랄로 돌아갔어.

털도 전처럼 짙어지고 아픈 것도 싹 없어졌어.

덕분에 댕친들이랑 신나게 뛰어놀고 있어.

언닌 내가 댕친들하고 못 어울릴까 봐 걱정했지?

내 윙크 한 방, 미소 한 방이면 바로 절친 되던데?

그러니까 언닌 이제 내 걱정 보따리 내려놔도 돼.

아직 마음이 안 놓인다고?

아휴, 내가 하나씩 꺼내서 풀어줘야겠네.



나 떠나기 며칠 전 가족들이 나 돌볼 스케줄이랑

병원비 얘기하다가 목소리가 좀 커졌던 날?

듣긴 들었어.

여느 때처럼 나 위해서 가족회의 하는구나 싶었는데

언닌 그것 때문에 내가 떠난 건지 걱정하더라?

정말 떠나는 날을 내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언니, 우리가 행복하게 지냈던 시간이 얼마나 긴데

왜 훨씬 짧은 내가 아팠던 시간을 더 많이 생각해?


내가 싫어하는 거 도맡다시피 했던 언니를 원망했을까 무섭다고?

아프면서 욕실 들어가기만 해도 언니 팔 두 발로 잡고 안 놔주고,

병원 앞에서부터 시작해 진료받는 내내 덜덜덜 떨었던 거,

약 봉투랑 나비침이랑 수액만 봐도 도망가서 숨었던 거.

그건 어쩔 수 없이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던 거였어.



언니가 마음 아픈 거 꾹 참고 해줬던 그 일들 정말 고마워.

내가 언니 사랑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준 것처럼

언니도 내게 버티는 힘을 키워줬어.

내가 나름 꽤 노력했다는 거 언니도 잘 알지?

많이 아프면서 언니가 집에 와도 달려나가지 못했지만

없는 기력 꼬리로 최대한 끌어 모아 흔들었고

떠나기 며칠 전부터는 피하수액 봐도 도망 안 가고

알아서 언니 무릎에 올라가고 했잖아.

언니 사랑 덕분에 조건 반사를 이겨냈던 거야.

그리고 제일 좋아하던 언니표 닭죽,

입으로는 못 삼켰을 때도 코로는 열심히 먹었어.


난 언니가 처음 나를 품에 안았을 때부터 알았어.

‘아, 엄마 같은 언니구나!’

그래서 첫날 집에 도착해 바닥에 내려지자마자

언니를 엄마처럼 졸졸 따라다녔던 거야.

꼬물이었던 나를 키운 건 8할이 언니 사랑이었어.

언닌 밥 먹는 내 입이랑

더 만져달라고 툭툭 치는 내 발을 유독 좋아했지?

난 언니가 사랑스럽게 날 보는 그 눈길이 유독 좋았어.

언니랑 눈 맞추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



언닌 "아이~ 예쁘다!"를 입에 달고 살았지.

내 주둥이가 길어서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온다고 아쉬워했지만

언니가 나 예쁘게 봐주는 걸로 충분했어.

아무것도 안 하고 나랑 있는 시간을 제일 좋아했던 언니.

아, 아무것도 안 했던 게 아니지,

온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준 시간이었지.

그저 마주치는 눈길 한 번에, 쓰다듬는 손길 한 번에

우리 둘 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행복했던 시간들.

난 언니랑 함께한 모든 순간이 다 행복이었어.



언니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더니 갑자기 나 보고 싶어져서

한 시간 넘게 운전하고 왔던 것도 기억난다.

언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니까

나한테 뽀뽀하거나 살짝 깨물면 작은언니한테는 으르르 했지만

언니한테는 안 그랬던 거야.


나 아프기 시작하고는 회사 점심시간마다 집에 와서

밥 안 먹는 나한테 강제 급여하면서

답답해하는 언니 보면서 나도 많이 속상했어.

나 뭐 먹는 모습을 얼마나 좋아하는 언니인데 싶어서

다시 힘내서 혼자 밥도 먹게 됐던 거야.

언니가 그즈음 밤마다 내가 눈 감으면

자장가처럼 했던 말도 기억해.

“오늘도 먹느라 고생 많았어. 오늘처럼 조금만 더 버텨줘.

아직은 아니야. 너무 사랑해!”


왜 사랑이 클수록 나중에 남는 후회와 자책이 더 클까?

쏟았던 사랑이, 떠난 후에 행복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하느님한테 부탁해 볼게.

근데 언니도 노력해줬으면 좋겠어.

후회, 자책 안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



내가 떠나던 날 상황을 분 단위까지 자꾸 되새김질하는 언니.

그날 쓰담쓰담이랑 뽀뽀 안 하고 외출했다고,

늦은 밤 돌아와서 내 곁에 길게 있지 않았다고,

자다가 깨서 힘겹게 숨 쉬던 내 모습이 여느 때와 다른

마지막 체인스톡 호흡이란 걸 알아챘지만 늦게 발견했다고,

산소 주고 심폐소생술 하다가 결국엔 멈췄다고....

자꾸 돌아보고 후회하는 언니,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런 장면들 이제 안 떠올리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나면 애써 흐린 눈으로 보기!

얼른 함께했던 좋았던 장면 떠올리기!

잘 안 되더라도 자꾸 연습하기! 약속할 수 있지?


그래도 가족들 없거나 다 잠들었을 때

나 혼자 갑자기 떠나게 될까 무서웠는데

마지막 인사하고 떠나서 참 다행이고,

너무 오래 힘든 숨 쉬지 않고 떠나서 다행이고,

이틀 전부터 엄청 잘 먹어둬서 든든하게 떠나서 참 다행이었어.

언니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언니 맘 내 맘, 내 맘 언니 맘, 이심전심! 인심견심!

집개 삼 년 넘으면 사정성어를 만든다! 헤헤



언니, 밤에도 왔다 갔다 하는 나 때문에

14년 동안 문 열고 자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문 닫고 포근하게 잘 자~

내 빈자리 허전해하지 말고

방문 열어 달라고 긁는 나 상상하지도 말고

내가 댕친들이랑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 상상하면서

코~ 잘 자~


내가 이제부터 언니한테 신통방통한 주문을 걸 거야.

뭉게구름 예쁠 때 하늘을 보면 내 주문이 먹힐 거야.

"보인다리~ 보인다리~ 새코미가 보인다리~"

근데 주의사항이 있어.

봉안당에서 올 때마다 이 주문이 힘을 잃어.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언니 사랑 능력치 최고로 올려줬으니까

나한테 줬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도 사랑 많이 주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언니를 사랑하는 누군가도 많이 만나고

아주 아주 행복하게 살다가 아주 아주 나중에 만나자~

내 말 잘 안 들으면 나중에 마중 안 갈 거야!

그때까지는 뭉게구름 예쁜 날 자주 만나자~

그럼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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