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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02. 2024

장난치는 아들과 휴일을 지지고 볶으며 든 생각들

함께하는 순간을 소중히 하라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행동에 화가 나지만, 이것도 지나고 보면 소중히 어루만질 추억의 일부이겠지.


 평일에는 네시간 여 남짓 함께 보내는 네 식구가 하루종일 지지고 볶는 휴일. 오늘은 몸이 좀 피곤해서 멀리 나가는 대신 동네 마실을 어슬렁거리기로 해본다. 집에 갇혀있던 아들이 콧바람이 한껏 들어가자 흥분을 했는지 빛의 속도로 뛰어간다. 나는 찻길이 불안해 원격조종하듯 큰 목소리로 오른쪽으로! 멈춰! 차오잖아. 라며 망둥이처럼 날뛰는 아들을 조정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이 난 아들. 질세라 딸도 아들을 뒤쫒기 시작. 나와 남편은 한 명씩 맡아 그들의 경호원 태세를 갖춘다.


 그제서야 겨우 네 명이 나란히 서서 걷는다 . 목적지는 동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잌 진열케이스에 눈 돌아간 둘은 한마음이 되어 가장 비싼 케잌을 손짓하지만 가뿐히 무시하고 파인트를 주문하고 앉는다. 아이스크림을 노나먹고 나가는 길. 아들은 갑자기 먼지와 얼룩투성이인 아이스크림가게 창문에 얼굴과 입술을 포개며 장난을 친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크게 훈계를 하고 창문을 닦고 아들의 입도 닦는다.


 가는 길엔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아무렇게나 밟는다. 멀쩡한 길을 놔두고 험한 숲길로 들어간다. 화가 솟구친다.남편에게 요즘 부쩍 장난이 심한 아들에 대해 한탄을 한다. 머리로 이해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온다. 요즘 부쩍이 장난이 심해진 아들. 돌아오는 내내 나는 아들에게 언성만 높이며 왔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햇빛을 받아 바닥에 길에 늘어진 우리 넷의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순간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순간인건가. 넷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순간도 영원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어쩐지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내게 자주 화를 선물하는 아이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평소 잘 안그러는 아들이 그러는 이유도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주체를 못해서일까.


  이 아이들이 언젠가 우리 품을 떠나가도, 나와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공유하며 그것이 둘 사이를 더 길게 이을 확고한 끈이 되겠지? 그리고 이렇게 함께걸었던 이 익숙한 거리들은 내 육아의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을테고.


  갑자기 그림자를 보며 화는 슬며시 수그러들고 슬퍼졌다. 매 순간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화를 덜내고 최대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야지.


 왜냐면,

언젠가는 이렇게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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