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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04. 2024

4천원짜리 피규어와 아빠를 맞바꿀뻔 한 사연

사랑 앞에서 무모해지는 행동, 가장 중요한 걸 생각하자

사람은 사랑앞에서 무모해진다.


 한달 전,머리를 자르러 간 단골미용실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미용사의 건너 건너 아는 지인이 유럽여행을 갔다가 안타깝게 고인으로 돌아왔다는 것. 고인의 생전나이는 20대 후반이란다. 사인은 익사. 즐겁게 간 유럽여행에서 익사사고라니,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마음도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어진 미용사의 말에 나는 일순 입이 떡 벌어져 좀체 다물지 못한 채 미용실 거울만 말없이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지에서 맘에 드는 한 여자를 만났나봐요. 그 여자의 일행과 바닷가에서 놀다 그 여자가 산지 얼마 안된 슬리퍼를 바다에 빠뜨렸는데 그거 주으러 가다 파도에 휩쓸려 그만”

 무슨 영화나 소설책에서 나올법한 비현실적 이야기에 나는 잠시 어안이벙벙해졌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 두 남녀의 그 상황을 그려보며 한동안 내 마음에 아릿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 속으로 애도했다.


 그러던 어제 스타필드에서 비슷한 일이 재현될 뻔 했다. 어제 간 수원 스타필드에서는 마침 포켓몬 팝업스토어가 진행 중이었는데, 평소 아들이 열광하는 캐릭터라 주저 앉고 그곳으로 향했다. 1층이어서 집에 가는 길에 가자 해서 갔더니 왠걸 사람이 어마무시했다. 알고보니 앞에 번호대기표가 있었던 것. 남편이 그제서야 뽑아보니 266번에 대기시간 한시간. 이미 시간은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앞두기도 해서 접기로 한다. 실망으로 역력한 아들을 보니 마음이 저려서 그 옆코너에 즐비한 포켓몬 뽑기 기계를 쿨하게 허용한다. 신난 아들은 4000원짜리 뽑기 후 나온 고래 피규어를 손가락에 걸고 달랑달랑 흔들며 무빙워크에 탄다.

잠시 후 마트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분의 외침


 ”얘야, 그렇게 장난치면 안되지”


 무슨일인가 싶어 보니 방금 뽑은 피규어가 무빙워크 손잡이 옆 아래 난간에 떨어진 것. 아이 손끝에서 달랑거리다 무빙워크 손잡이를 잡으며 미끄러져 내려간 것이다. 피규어는 아슬하게 난간에 놓여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들을 향해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며 다그쳤다. 그 사실을 안 남편. 얼굴이 붉어져 거꾸로 성큼성큼 올라오더니 움직이는 무빙워크에 몸을 숙여 매달린 채 손을 뻗어 피규어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안돼 내려와 위험해”라고 외쳤다. 그 말이 귀에 안닿는 지 남편은 더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고 간신히 남편 손끝에 닿은 피규어는 끝끝내 잡히지 못하고 통로사이로 낙하하고 만다. 모두의 아 하는 탄식 속 남편은 허무한 눈빛으로 터덜터덜 유모차가 있는 쪽으로 내려온다.

 그제서야 나도 정신차리고 유모차를 살핀다. 남편은 잠든 둘째가 실린 유모차까지 잠금장치를 해놓고 올라간 것. 앞에 있는 분 아니었다면 유모차도 위험할 뻔 했다. 나도 정신이 없었던지 살피지 못한 불찰이고.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연출 될 뻔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지켜본 나로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한 순간이었으므로. 피규어를 지키려 움직이는 무빙워크 손잡이에 기대 필사적으로 버둥대는 모습이 눈 앞에 여전히 아른댔다. 아들도 손을 떨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뽑은 지 5분도 채 안되어 안타깝게 잃어버린 피규어에 대한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시 뽑으러 가자는 남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평소 유한 편인 나에 비해 유독 아들에게 엄한 편인 남편. 늘 아들은 내게 아빠가 화내면 무섭다며 영어숙제를 늘 나와 하자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날은 아들도 느꼈을테다. 자신의 4천원짜리 피규어를 구하기 위해 얼굴을 붉히며 필사적으로 버둥대는 아빠의 행동에서 자신에 대한 진한 사랑을 말이다. 물론 다시는 해선 안되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건 남편에게 몇 번이고 인지하게 했지만.


 어제 일을 떠올리니 얼마 전 전해들은 한 남성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일순 떠오르며 마음이 뭉근해져온다.


 남편이 4천원 짜리 피규어 앞에서 이성을 잃고 무모하게 뛰어든 것도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거대한 파도때문이겠지.


사람은 사랑앞에서 얼마나 무모해지는가.


하지만 꼭 알아야 한다. 그 사랑이 지속되려면 그 물건이 아닌 사람인 “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랑도 중요하지만, 옆에서 그 사랑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나의 안위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곤히 잠든 남편과 아들을 번갈아보며 나는 다시금 가슴을 쓸어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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