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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11. 2024

술술 먹히는 김밥과 술술 읽히는 글의 공통점은?

술술 먹히는 김밥, 그 과정은 결코 술술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의 첫 소풍날. 나는 전날 오이 당근 어묵 등을 채썰고 볶고 밥도 미리 예약취소 버튼을 누른 채 잠이 들었다. 새벽 6시, 사위는 여전히 깜깜하고 나는 모두가 잠든 사이에 조용히 이불밖을 빠져나와 비장하게 부엌으로 향한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손을 깨끗이 씻고 위에 비닐장갑을 착용한다.

 취사가 완료된 밥을 양푼에 퍼담고 단촛물(밥에 감칠맛을 나게 하는 소스)를 붓고 참기름과 깨를 넣고 밥주걱으로 휘휘 저어 밥을 준비해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하나하나 꺼내놓고, 도마위에 김발을 올리고, 그 위에 김을 올린 후 이제 본격 작업에 들어간다.


 김 위에 야구공 크기의 밥을 골고루 펴놓고 깻잎을 세 장 올리고 차례차례 재료를 쌓아올린다. 김발을 이용해 손끝에 힘을 주어 동그랗게 말고 참기름을 김밥 겉면에 휘휘 발라서 완성한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온 부엌에 진동한다. 어느새 다섯줄을 완성하는 내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다섯줄을 완성하면서 하나는 재료의 양조절에 실패해 터지고야 만다. 그래도 나는 계속 다음 여섯줄을 이어간다. 그렇게 완성된 김밥을 아침 상에 내놓는다. 남편은 김밥이 술술 들어간다며 맛이 기가 막히다며 쌍따봉을 내게 날린다. 그런 남편에게 말한다.  


 “술술 먹히는 김밥이지만 과정은 결코 술술 이루어지지 않았어. 나 지금 이마에 땀좀 봐"

남편은 살짝 애처로운 눈빛을 쏘며 수고많았네 라는 대답으로 나의 애씀을 어루만진다.


 그러고보면 글을 쓰는 행위도 김밥을 마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술술 쉽게 읽히는 글은 결코 그 과정이 술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남들 다 잠든 새벽 홀로 일어나 재료를 준비하고 고심고심하며 재료를 김밥위에 올린 뒤 그 재료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터지지 않게 잘 마무리를 하는 그 지난한 과정처럼, 글도 매한가지다. 남들 쉬고 있는 시간에 하얀지면위에 여러 단어들을 배치하고 고심끝에 그 단어로 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들을 잘 배열하여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과정은 조금은 고통스럽다. 김밥을 쌀 때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픈 것 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재료들이 비집고 나가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해 터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터진다 해도 다시 매무새를 잡아 결국은 하나의 김밥 아니 하나의 완성된 글로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지난한 노력 끝 완성된 글이 터진 김밥처럼 가끔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터진김밥이지만 맛있다며 입안으로 계속 가져가는 남편처럼 맘에 들지 않는 글이지만 한 명의 독자라도 하트나 표정을 지어주며 반응해주면 그 힘든 글을 쓰는 일이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또 다음날 글 쓸 힘을 얻는다.


 김밥을 싸며 생각한다. 술술 읽히는 좋은 글이 되려면 혼자서 분투하며 그 어려운 과정을 계속 버티고 이어나가야 하며,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될 수록 더 술술 써질 수 있다는 것. 남편이 내 김밥이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한다는 말을 해준 것 처럼, 서툰 내글도 매일 써나가다 보면 어제보다 조금씩 일취월장해가지 않을까?


 아들이 소풍다녀와서 내게 빈 그릇을 내밀며 말한다.

 “엄마 오늘 김밥 맛있어서 다 먹었어”

새벽에 홀로 깨어 땀방울을 흘려가며  김밥을 싼 보람이 있다. 아들의 배를 가득 채워준 맛있는 김밥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가득 채워줄 글을 쓰는 그날까지 오늘도 나는 하얀 바탕화면에 글감이 될 단어와 문장들을 고심해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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