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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16. 2024

엄마가 미용실값까지 아껴가며 사준 이것

위인전을 통해 본받을 점이 많은 좋은 스승을 많이 만나기를 마음에서

 어제 국어시간, 정약용의 이야기를 통해 본받을 점을 찾는 활동을 하며 교실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었다.

4학년 2학기 국어 6단원에서는 위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기문을 읽고 시대상황 한일 가치관 본받을 점을 알아보는 내용이 전 차시에 걸쳐 녹아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생각만큼 위인을 잘 알지 못한다. 어제 수업에서만 해도 “얘들아 정약용에 대해 알고 있니?”라는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일제히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으니 말이다. 그 정적을 뚫고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다음의 이야기를 꺼낸다.


“얘들아 선생님 엄마는 어린 시절, 자신의 미용실 값은 아끼시며 역사전집만은 기꺼이 사주시곤 했었어. 그 이유가 뭐였을까?”

 다시 한 번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그건 오늘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 알게 될거야”


 본 수업이 시작되자.나는 정약용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사도세자로부터 시작되어 정약용으로 이어진 이야기. 정조의 남자 정약용. 아이들은 특히나 사도세자와 정조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들었고 그렇게 이어진 정약용의 이야기는 더욱 아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교과서 속 두세페이지로 간략하게 나온 정약용의 일대기. 아이들은 그 어느때보다 더 진지하게 정약용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나간다. 학습지에 정약용이 한 일을 적어나가며 그 분의 일생을 현 시점에서 차근차근 더듬어나가본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시묘살이를 한 내용. 정조의 어명으로 시작했지만 백성들의 농사를 방해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발명해낸 거중기. 암행어사 활동 중 지방관리들이 힘없는 백성들에게 행하는 온갖 악행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와준 일들. 그리고 유배생활 중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목민심서와 같은 책을 펴내며 백성을 도우려 애쓴 끈기.


 공허한 눈빛으로 별생각없이 교과서를 읽다 정약용의 전 생애에 걸친 업적을 찬찬히 적어내려가는 아이들의 눈빛이 일순 반짝이는 게 느껴졌다. 그와 더불어 교실의 공기도 그 어느때보다도 쫄깃하고 팽팽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본받을 점 쓰는 활동. 아이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본받을 점을 찾아내는 데 골몰한다. 오늘 수업에서 정수와도 같은 활동이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아스라이 떠올린다. 엄마가 사준 반들거리는 전집 속 위인들이야기를 하루에 하나씩 꺼내 읽으며 빠져들었던 그 순간을. 위인들이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누군가를 도우려 애쓰는 모습을 글로 읽으며 어린 가슴이 웅장해져오던 그 순간을.


 그러다 우연히 빼들어 읽은 슈바이처 위인전. 돌연 내게 의사의 꿈을 품게 해준 책이기도 했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훗날 의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거라고 어린 마음에 굳은 결의같은 것을 했던 일도 떠오른다. 나는 엄마가 미용실 값을 포기하고 사준 그 위인전집을 통해 초등시절엔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아도 훌륭한 선생님들을 집에서 만날 수 있었고,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딱딱거리던 연필소리가 잦아들고, 대망의 발표시간.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아이들에게 투영해보며 26명의 발표 하나하나를 새겨듣는다.


 “돌아가신 아빠를 위해 시묘살이를 한 정약용의 효심을 본받고 싶어요“, ”유배생활 중에도 여러 권의 책을 쓰며 노력한 정약용처럼 저도 어떤 어려움이 와도 열심히 노력하며 헤쳐나갈래요“ ,” 양반인데도 암행어사를 하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려는 공감과 배려의 미덕을 본받을래요“, ”거중기 만들기가 어려웠을 텐데 끝까지 해낸 끈기를 본받아 저도 미술시간에 어려워도 끝까지 만들어낼게요“, ”정조 대왕이 시킨 것을 꾀부리지 않고 책임감있게 해낸 정약용을 보며 자도 선생님이 내주신 일기숙제를 책임감있게 해낼래요“


  26명의 발표를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계속 입밖으로 “너무 훌륭해, 좋아, 멋지다” 추임새가 계속 흘러나왔고 짧은 한 줄 발표지만 그 발표 속 어떤 결연한 의지가 엿보여 내 가슴도 충만해졌다. 친구들의 발표를 듣던 아이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전과는 다르게 묵직해진 교실의 분위기를 느껴가는 듯 했다.


 발표가 끝나고 나는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선생님 엄마가 미용실 안가고 전집을 사준 이유가 바로 이거야. 실제로 존재했던 위인들의 삶을 통해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이런 교훈들을 새겨넣으라고 말이야. 이런 것들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삶이 올바르게 가도록 하는 이정표가 되어주니까“


 처음의 수업에서 동그란 눈이 되어 나를 응시하던 아이들은 그 동그란 눈에 윤기를 잔뜩 머금고 나를 쳐다보며 쉬는 시간을 맞이한다. 그때 내내 흐리던 날씨가 기적처럼 맑게 개며 교실 창문으로 한 줄기 빛이 새어들며 아이들을 비스듬히 비춘다.


 나는 그것이 아이들의 밝은 앞날을 응원하는 어떤 한 줄기 희망의 빛처럼 느껴져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던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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