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입장이 되어 방학일기를 쓴다면?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글을 쓰면 보이는 것들

by 이유미

개학맞이 세줄쓰기 주제는


교실의 입장이 되어 방학일기를 쓴다면?


한달여의 여름방학이 어제부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학 날 아침 아이들의 표정은 마치 나라를 잃은 표정이다. 방학식날 얼굴 만면을 활짝 채우던 활기는 온데간데 없이 피로가 그득 묻어있다. 아이들의 표정을 거울삼아 보며 내 표정도 저럴까 생각에 내려갔던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위로 한껏 당기며 개학날 세줄쓰기 주제를 야심차게 내어준다.


세줄쓰기가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경종이 되었을까? 힘없는 표정으로 내내 허공을 바라보던 몇개의 눈빛에서 작은 불길이 이는 듯 하더니 열심히 무언가를 써내려간다. 오랜만에 교실에 모여 앉아 글을 쓰는 풍경을 보자니 일상이 시작되었구나 묘한 안도감이 마음 전체를 물들인다.


오늘의 주제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난감하다. 교실의 입장이라니. 머리를 갸우뚱하는 아이들 몇몇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교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나는 힘을 주어 강조한다. 내가 교실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방학동안 들었던 감정을 써보는거야. 아하 하며 머리를 탁치며 몇몇이 들어가더니 이내 글쓰기를 완료한 뒤 하나둘 내게 공책을 내민다.


이번 주제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주제니만큼 아이들의 다채로운 생각이 방학의 꿈에서 덜 깨어나 잠들어있던 나의 의식을 활기롭게 일깨운다.


"처음 방학을 할 땐 좋았다. 더 이상 시끄러운 소음으로 귀가 따갑지 않았고 쿵쿵 아이들이 내는 발도장에 때문에 더 이상 아플 일도 없었고. 고요해서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너무 심심했고 에어컨도 틀지 않아 땀이 주륵 났다. 그리고 청소를 하는 아이들이 없어 몸에는 먼지가 쌓였고 한 달동안 너무 찝찝했다. 방학이 짧아지면 좋겠다"


그 중 가장 기억에 각인된 아이의 글을 그대로 베껴와적었는데 너무도 실감나는 교실의 입장이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한낱 미물인 교실. 교실의 관점에서 방학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우리완 달리 늘 고정되어 있는 교실. 그나마 재미라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수업하는 소리들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쓸고 닦을 수 없으니 아이들의 손을 빌려 자신의 몸을 정돈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 누군가는 무슨 그런 상상을 하냐고 실소를 터뜨릴지도 모르지만 참신한 글이었다.


아이들의 글의 마지막은 대부분 개학을 맞아 아이들이 반갑다는 내용. 그리고 아래와 같은 부탁의 말들도 쓰여져 있었다.


"너희들이 와서 반갑고 좋다. 그렇지만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는 말아줘. 교실을 울리게 뛰지도 말아줘. 그리고 청소를 조금 더 깨끗이 해주면 좋겠어"


아이들은 대부분 방학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교실의 입장이 되니 방학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교실의 입장이 되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며 무릎을 탁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제 개학을 맞아 다시 아이들의 재잘거림, 크고 작은 소란들을 오랜만에 맞이하게 된 교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늘 그 자리에서서 멋없는 칠판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먼지만 가득 쌓이는 처지에서 벗어나 가뿐한 마음이 되었을까? 아니면 다시금 시작된 아이들의 왁자한 소란에 귀가 아프고 쉬는 시간마다 울려대는 발도장에 온몸이 욱신거려 방학을 다시 그리워할까?


조금은 특별한 주제로 세줄쓰기를 쓰고 나니 뜻밖의 수확이 생겼다. 교실의 입장이 되어 아이들이 쓴 글을 보니 교실이 불편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한 목록을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레 체화했음이 느껴졌다. 고성지르지 않기. 교실 바닥 쿵쿵 울리지 않기,교실 바닥에 놓인 쓰레기 잘 치우기 등. 개학식만 되면 목터져라 읊어대던 이 잔소리들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글을 쓰다보면 평소 생각지도 못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 더 조심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교실의 입장이 되어보며 앞으로 교실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스스로 알게 된 아이들을 보면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풀기 모호한 문제, 바로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때는 그 누군가의 입장에 그 마음을 일기로 짧게 써보는 것이 가장 근접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일테다.


잠시 외출했다 되돌아온 일상, 개학. 다시 정신없는 나날들이 시작되겠지만 세줄쓰기를 꾸준히 이어나가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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