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하루 앞 둔 선생님께 편지를 쓴다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기

by 이유미

요즘 출근하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무겁다. 아직까지 방학의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무기력해진 아이들을 다시 다독여 이끌고 가는 것이 힘에 부치는 탓일까?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오늘도 겨우 한걸음씩을 떼어 교실문을 연다. 아이들에게 늘 열정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가 참 많다.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명언을 써주고 10분 조회를 하며 아이들 마음을 진동케 할 말들을 해주는 일들. 독서록과 세줄쓰기 지도. 그리고 매 시간 배움노트 지도.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그림책 활동들. 가끔은 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는 유혹이 고개를 들곤 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 메신저를 켜는 데 이틀 후면 퇴임하실 선생님의 퇴임식이 오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갑자기 아연해졌다. 이틀 후 교직을 떠나는 선생님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아직 퇴직까지는 20여년이 넘게 남은 지라 내겐 아득하게만 느껴지지만 그 분은 바로 코앞에 다가온 퇴직일테다. 속이 시원하실까? 아니면 더 이상 교단위에 서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무언가로 도려낸 듯 공허한 마음이실까?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면 늘 나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낼 세줄쓰기 주제를 줄 때도 바로 이런 마음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글을 쓰며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오늘의 주제는 그래서 특별히 퇴임을 앞둔 선생님을 생각하며 정해보았다.


"당일이 당장 퇴직인 선생님께 편지를 쓴다면?"


나의 주제에 머리를 갸우뚱하는 아이들 몇몇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마음에 당장 와닿지 않는 것 같아 주제를 다시 수정해보았다.


"만약 담임선생님이 내일 퇴직하신다면 어떤 내용의 편지를 쓸까?"


주제를 조금 바꾸니 아이들의 연필은 추진체를 단 듯 필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내용을 써올지 궁금한 마음에 글을 쓰는 아이들을 어느때보다도 유심히 관찰한다. 글을 쓰다 몇 번이고 멈추며 골똘히 생각하는 우리반 회장 시아를 보니 왠지 모르게 뭉클한 마음이 생긴다. 글 하나에도 마음을 다하는 아이들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 그만둘까 하는 이 활동을 다시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구친다.


십여분이 흐르자 아이들은 하나둘씩 내게 공책을 내민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멋쩍어하거나 수줍어 하는 아이들이 몇 보인다. 선생님에 대한 편지라서 아무래도 쑥스러운가 보다.


바쁜 업무를 처리하느라 공책을 한 곳에 쌓아둔 채 방치해두었다가 쉬는 시간에 재빨리 공책을 하나씩 들추며 읽어보던 중 가슴에 갑자기 뜨근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며칠 전 지각을 밥먹듯이 하고 방학 숙제를 하나도 해오지 않아 내게 몇 번 혼이 나고 갔던 주혁이의 글. 이 글이 나의 마음을 크게 진동케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셨어요 아침에 바쁘실텐데 세줄쓰기, 명언 등 매일 아침활동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명언이랑 좋은 말 해주시는 것 참 좋았어요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시지만 제 마음 속에는 남아있을거예요


단 세줄이지만 갑작스럽게 내 마음 속에 날아든 이 글은 아침에 내가 했던 생각들을 단숨에 부끄럽게 만들었다. 퇴임을 앞둔 선생님의 마음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주제에서 뜻하지 않게 내가 위안을 받았다. 퇴임을 하루 앞 둔 나에게 누군가가 이런 메세지를 써준다면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그러면서 최근 무기력했던 내 마음에 작은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 속으로 읊조린다.


"그래 지금 내가 애쓰며 하고 있는 활동들을 도중에 그만 두지 말고 퇴임하는 그 날까지 이어가야지. 내게는 매년 반복되는 고루하고도 품이 많이드는 무언가일지도 모르지만 매해 내가 만나는 스무명 남짓의 새로운 아이들에겐 그 활동들이 잊지 못할 무언가로 평생 가슴에 남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주혁이에 이어 다른 아이들의 세줄쓰기도 같은 내용의 글이 이어졌다. 선생님의 열정으로 자신들이 성장했다고. 매일 해주시는 노력에 감동이라고. 감사하고 잊지 않겠다고. 아이들의 세줄쓰기를 읽는 동안 나는 잠시 퇴임을 하루 앞둔 선생님의 기분이 되어 자주 울컥거렸다. 퇴임을 하루 앞둔 교사의 마음이 되니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는 이 순간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열고 들어오는 교실문, 늘 지루하게 반복되는 학교수업과 업무들이 더 이상 귀찮은 무언가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달까. 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순간순산들이 예사롭지 않은 무언가로 느껴진다. 세줄쓰기를 통해 느낀다.


학교 생활이 고루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에 지칠때면 내일이 마지막 근무일이라고 생각해봐야겠다고. 그리고 퇴임의 그날 오늘 아이들이 쓴 세줄쓰기의 편지와 같은 내용을 받는 상상을 하며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성실하게 밀고 나아가야겠다고.


세줄쓰기검사를 다하고 난 뒤 무심코 책상 옆을 보니 하트가 그려진 카드가 보인다. 퇴임을 앞둔 선생님께 나도 조용히 진심을 전하며 마지막을 축하해드려야지. 마지막 날 내 한 마디가 선생님의 텅빈 가슴을 조금이라도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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