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투명인간이 되어 부모님의 직장에 방문한다면?

커피를 타주고 마카롱을 올려놓을 거라는 아이의 작은 마음에 뭉클하다

by 이유미

국어 수업 시간에 할머니의 다정죽집이라는 글을 읽고 문득 떠오른 주제였다. 죽집을 함께 운영하던 할아버지의 부재로 죽집이 폐업을 할 위기에 처하자 그곳의 주방도구들과 고양이가 힘을 합쳐 빵을 만들고 팥죽쑤는 일을 도우며 가게를 일으킨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수호천사가 나의 직장에 찾아와 이런저런 잡무와 일을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무거웠던 몸이 홀가분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나의 재미있는 상상에서 뿌리를 내린 주제는 바로 이것


"내가 투명인간이되어 부모님의 직장에 방문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어?"

부모님의 직장이라, 아이들은 잠시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 주제를 들고 아이들은 한참을 골몰하는 듯 했다. 이럴 때 나는 또 내 머릿속에서 급히 예시문을 하나 떠올린다.

"엄마 아빠 직장에 가서 도움이 될 일들을 한 번 생각해봐. 다정죽집에 나오는 주방도구들과 고양이처럼 말이야"

그 말에 멈춰있던 아이들의 연필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이내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보통 10분쯤 지나면 공책을 제출하기 시작하는데 이번 주제는 조금 더 생각할 거리가 많았는 지 20분이 지나서야 공책이 하나 둘 책상 위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의 세줄쓰기 공책을 마치 선물을 열어보는 마음으로 설렘과 기대를 품고 열어본다.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주제를 대할까? 그러면서 아들의 마음을 살포시 유추해보기도 하고 말이다.


이번 주제는 글을 읽으며 유독 가슴이 찡해지는문장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아이의 글이 마음을 뭉근하게 데웠다.


"부모님의 직장을 방문한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마카롱을 챙겨갈 것이다. 왜냐하면 일하고너무 더울 때 커피한잔을 하면 더위가 날아가고 또 당이 떨어질 수 있기 떄문이다. 나는 현실적으로 일은 못도와드리니까 옆에서 치어리더처럼 응원을 해줄테다"


뭔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처럼 들리지만 아이의 마음이 참 보드랍다. 현실적으로 일을 대신 해 줄 순 없으니 시원한 음료와 달달한 간식을 주며 일을 하며 떨어지는 당을 보충해주고 옆에서 따뜻한 말과 응원을 하며 치어리더가 되어준다니. 아이의 머리와 마음을 눅진하게 통과해나온 진심어린 행동이었다. 따스한 가슴을 가진 아이의 글을 보며 이 아이의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실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글을 보다보니 어제 육아휴직을 이년하고 복직한 동료의 일이 떠오른다. 전날 밤까지 복직 첫 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잠들었을 동료. 잠시 나눈 메시지에서 그녀의 불안, 두려움,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났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도움이 뭘까? 곰곰이 떠올린 묘책은 바로 이거였다.


세줄쓰기 속 아이가 엄마의 직장에 찾아가면 해주고 싶다던 바로 그 행위. 아침 출근길 편의점에 들러 달달한 컵커피를 사고 출근하자마자 교실에 있는 작은 하트 쪽지에 "복직 첫 날, 늘 그래왔듯 잘 해낼거야. 아들 둘도 거뜬히 키워냈으니 뭔들 못하리. 하루 잘 보내자" 라고 응원의 메세지를 써서 커피 한 귀퉁이에 붙여 전달했다.


예상치못한 나의 선물에 긴장으로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근육이 미세하게 사르르 풀어지는 것을 보았다. 월요일 출근에 피로가 가득했던 내 마음도 그녀의 표정처럼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4시간의 수업 후 그녀에게서 온 문자.


"선생님 살얼음판 될 번했던 복직 첫 날이 덕분에 수월하게 지나간 것 같아요.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새삼 든든해요"


메세지를 받는 순간 체감상 내가 그녀의 살얼음판 같은 복직 첫 날 수업을 대신 해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뿌듯했었던 어제였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부모님의 직장 또는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의 직장에 방문해 일을 대신해주거나 모든 어려움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국어책 속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일은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 한가지. 현실 속에서 힘들어보이는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소소한 행위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근해서 당이 떨어질 부모님을 위해 작은 초콜렛 하나를 챙겨준다던지, 힘든 일을 겪는 누군가에게 컵커피와 작은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이런 소소한 행위들이 그 사람을 기꺼이 일으켜세우는 큰 힘으로 작동할테다. 늘 아이들의 마음에서 배운다. 누군가를 위하는 행위는 거대하거나 위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저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치어리더의 역할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힘들죠? 그럴 땐 잠시 커피나 달달구리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요. 힘겨운 오늘을 또 어떻게든 버티려고 직장에 출근하고 학교에 등교한 당신. 오늘 하루도 잘 버티어냅시다. 인생은 힘겨운 하루를 어떻게하면 조금 덜 힘들게 만들까 고민하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잘하고 있어요 당신"


이런 응원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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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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