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만난 다정함

감사합니다 라는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인사가 주는 의미

by 이유미

어제의 일이다. 남편과 아들과 함께 최근 새로 개장한 근처 호수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 여름의 잔열이 남은 날씨에 셋은 땀을 뻘뻘 내며 30분을 걸어간터라 시원한 음료가 절실하던 터였다. 바로 앞에 커피전문점이 눈에 띄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카페는 산책을 나왔다가 우리처럼 잠시 휴식을 가지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음료 대기 전광판에도 나오지 않은 주문 목록이 가득할 정도였다.


매의 눈으로 빈자리를 훑다 겨우 빈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한 뒤 우리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목이 마르다고 아우성인 아들의 등쌀에 못이겨 나는 잰걸음으로 직원이 있는 카운터로 향했다. 내 앞에는 이미 한 아빠와 딸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보니 이 아이도 목이 말라 물을 요청하러 온 모양새였다. 얼음이 가득 담긴 물잔이 바삐 일하는 직원의 손에서 딸의 손으로 옮겨지고 아이는 그 물을 덥썩 받아 마시려던 찰나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가 카페 안을 울린다.


"00아, 물을 마시기 전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드려야지"


아이는 자신이 잊은 것을 아빠가 짚어준 사실에 잠시 멈칫하더니 우물쭈물하게 감사합니다 라고 작게 소리를 내었다. 점원은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고, 아빠는 재차 딸에게 강조를 한다.

"누군가의 수고로 무언가를 받았을 때는 항상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아빠의 다정한 충고에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꿀꺽 마시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아이의 아빠가 남기고 간 그 한마디는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빠와 딸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느라 잠시 멍하니 있던 차, 직원의 말에 정신이 번뜩 깨었다.

"저도 물 한잔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왠지 모르게 정중한 말투가 내 입에서 새어나간다.

직원은 내 요청을 듣자 마자 컵에 얼음을 가득 넣어 표면에 수증기가 하얗게 서린 물컵을 건넨다. 나는 여전히 전광판에 주문 목록이 잔뜩 늘어선 것을 보며 더욱 힘주어 직원에게 말한다.

"바쁘실텐데 시원한 물 한 잔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아빠의 말을 의식한 탓인지 나는 그 감사합니다에 강세를 넣어 말을 건넸다. 한 아빠에 이어 나까지 연타로 두 번이나 진심어린 감사합니다를 들은 탓일까? 돌아선 직원이 음료를 제조하는 움직임에서 뭔가 모를 활력이 느껴졌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다보면 감사합니다 라는 표현을 해야 할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자주 방문하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직원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일이 생기는 데 그때마다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그것을 내가 내는 돈에 대한 응당한 댓가로 여겨 감사합니다 라는 표현을 입밖에 잘 내지 않는다. 보통 카페에서 물을 요청하거나, 식당에서 반찬을 좀 더 요구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외국과는 달리 물이나 추가 반찬이 무료인 우리나라에서 흔히 있는 실수다. 그것들도 당연히 내가 내는 돈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돈과는 별개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은 꼭 입밖으로 내어주어야 할, 사람과 사람사이의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음료제조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더 들여 얼음물을 내어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고에 대해 진심어린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해주는 순간 그 수고로움은 일종의 기분좋은 서비스로 변모할 수 있다.

얼마 전 본 다큐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목도한 적이 있다. 한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매일 냄새나는 오물과 쓰레기를 치우면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한 일을 하는 구나 싶다가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덕분에 깨끗한 거리를 걷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모습말이다.

물론 사람들은 나를 향해 누군가가 호의를 보이거나 도움을 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단지 그 표현을 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거나 순간적으로 부끄러워 속으로 꿀꺽 삼키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더러운 오물을 치우는 것에도 큰 보람을 느낀다는 환경미화원 아저씨. 주문이 밀렸음에도 얼음을 가득 담은 물을 건네는 성의를 보이는 카페 직원. 이 두 사람을 번쩍 들어올리는 힘은 바로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의 힘일 것이다.


셋이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형광색 조끼를 입고 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치우는 분들을 마침 발견한다. 조금 전 카페에서 들은 한 아이의 아빠의 말이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과 함께 내 귓전을 파고 들어왔다.

"누군가의 수고로 무언가를 받았을 때는 항상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아들과 우리는 그분들께 조심스럽게 말을 전한다.

"쓰레기를 치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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