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끝 아침에 만난 다정함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가 나의 아침을 바꾸다

by 이유미

길고 긴 연휴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어느덧 출근날이 다가왔다. 교실에 들어서는 발걸음조차 어색할 정도였다. 나와 같이 텅빈 표정을 한 25명의 아이들을 거울삼아 바라보며 눈인사를 한 뒤 컴퓨터를 켠다. 아침에 출근하면 늘 확인하는 하이톡 메세지에서 뜻밖에 장문의 긴 메세지를 조우하고 나는 뒷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지난 주 목요일 몇 번의 훈계에도 나아지지 않는 아이를 방과 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진 한 학부모님의 메세지였다.


장문의 메세지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어 아침부터 상담전화를 하며 진땀을 뺐다.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의 잘못은 쏙 빼고 내게 들은 훈계 중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만 과장을 덧붙여 전달한 것이 학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 것. 서로 오해한 부분을 잘 해결하고 앞으로 함께 이야기나누며 잘 지도하자며 대화를 잘 마무리하고 통화를 마쳤다.


월요일 아침부터 한 차례 소동을 마치고 나니 온 몸의 힘이 쭉 빠진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이가 밉기도 했다. 분명 그날의 일은 아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고, 몇 번의 훈계에도 나아지지 않아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며 마지막엔 아이가 속상할까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손에는 사탕까지 들려보냈던 나였다. 나의 진심이 아이에게 가닿지 못하게 지도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속으로 책망하며 힘없이 교실에 터덜터덜 들어갔다.


바람빠진 풍선의 형상처럼 축 늘어져있는데 아침에 보지 못한 것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초코칩 쿠키하나와 그 위에 붙은 정성스런 쪽지하나였다.


" 신이 네게 레몬을 주면 너는 레몬에이드로 바꾸어라" 선생님께서 작년에 저희에게 말씀해주신 명언이예요. 선생님 이 소중한 하루 월요일은 달콤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제입으로 하는 말 "화이팅"


마지막 문구까지 읽고 나니 마음 속에 뭔가 뜨끈한 것이 차오른다. 방금 전까지 내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누르던 무언가가 찰나의 순간 가벼워짐을 느낀다.


이 아이는 작년에 내가 맡았던 제자인데 보통 아이들은 34월이 지나면 작년 선생님을 찾지 않는데 10월이 된 지금까지도 종종 내게 이런 메세지와 간식으로 예상치못하게 힘을 주는 유일한 아이다. 힘든 순간을 보내고 온 내게 기적처럼 날아든 아이의 메세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마저 붉어진다.


교사로서 나는 늘 아이들을 할 수 있는 한 열정으로 지도하려 노력하지만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지 않듯 나의 열정을 차갑게 식게 만드는 아이들도 종종 만난다. 그런 레몬같은 시고 쓰린 순간이 올 때면 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고꾸라지는 순간을 자주 맞이한다. 아까의 일도 그랬다. 그런 일을 한 차례 겪고 나면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사가 풀린 듯 놓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아이들을 위해 한다는 일들이 내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제 아이의 메세지 하나로 다시 힘을 얻는다. 내가 작년 어느 시점에 해준 명언을 아직도 기억하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나는 그래도 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이들 고유의 개성이 다르듯 모든 아이들이 내 가르침을 자신의 내면에 깊이 담고 그 진심을 느끼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 한명이라도 내 진심을 알아주고 내가 언젠가 했던 한 마디를 자신의 방향키 처럼 가슴에 품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래도 계속해서 나아가야하는 게 아닐까?


월요일 아침에 받은 레몬은 내게 너무도 쓰고 시린 고통이었지만, 그 레몬을 그냥 그 자체로 두며 나를 영영 시리게 할 것인지, 아니면 입에 착착 감기는 달달한 레몬에이드로 바꿀 것인지는 내 의지에 달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은 아이를 레몬으로만 두지 말고, 그 아이도 내년쯤엔 내게 들은 좋은 말 한 마디를 가슴에 품고 지낼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신 레몬이 달달한 레몬에이드로 바뀌는 순간까지 나도 힘을 놓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꾸준히 지도를 이어가보겠노라 속으로 계속 되뇌이는 월요일 하루였다.


월요일 하교길, 그날따라 아이는 내게 최대한 정성스럽게 쓴 알림장을 내게 내민다. 나는 조용히 별 두개를 그려주며 칭찬한다. 물론 내일은 또 온탕에서 냉탕으로 바뀔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받은 다정함을 마음 속에 새기며 앞으로 이 아이를 비롯 남은 아이들과 보낼 2학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며 퇴근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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