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길 내가 건넨 다정함

다정한 몇 마디로 그 아이의 눈빛에 따스함이 일었다.

by 이유미

오늘 하교 길의 일이었다. 이번 주 내내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월요일 민원전화 이후 이상하게도 그 아이와의 관계가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악화되는 것이 피부로 체감되었다. 아무리 잘 해결되었다 한들 그것은 아이의 부모와 나 사이의 대화자체만 잘 해결된 것이지, 그 전화 하나로 아이의 행동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히려 전보다 더 나를 자극하는 행동과 말을 서슴지 않는 듯했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그 아이와의 관계에 골몰하느라 뒤척이기도 했다.


자석의 같은 극이 밀어내듯 나는 수업 중 그 아이의 시선을 애써 밀어냈고, 몇 번이고 훈계를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점차 무기력해져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문제행동을 멀거니 바라보는 것 밖에 없을 떄가 많았으니까. 물론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나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은 강하게 일침을 놓았지만 전과는 다르게 그 일침이 아이의 가슴에 콕콕 박히는 것이 아니라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돌아오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복잡한 기계의 부속품을 하나하나 해체하듯 아이의 모든 문제행동을 말로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주 나를 힘들게 했던 아이의 행동의 일례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다. 아이는 정리정돈이 잘 되지 않는 편이라 늘 수업 시간엔 가위 풀 연필깎이 등이 너저분하게 늘어져있다. 보이지 않게 치우라고 말을 해도 그 말이 다 튕겨나가는 지 매번 지적을 받기 일쑤다. 어제는 가위를 가지고 놀다 내게 눈에 띄어 가지고 오라 이르니, 얼굴에 나 화났어요 표시를 도장찍듯 각인하고 내게 나온 뒤 입으로 좋지 않은 말을 지껄여 훈계를 했다. 거기다 급식시간에는 어떤가, 거의 매일같이 젓가락을 떨어뜨려 줍는 답 시고 드넓은 급식실을 뛰어다니듯 활보하다 주변 아이들 여럿을 치고 가며 원성을 자아낸다.


누가 들으면 그 정도는 아이들이 성장하다보면 그럴 수 있지 않냐. 당연한 아이들의 성향이 아니냐며 나를 책망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항상 내 입맛대로 구워 삶을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님은 잘 알고 있다. 25명의 아이들 생김새가 다 똑같지 않듯 그들의 마음도 25개다 보니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교육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 고유의 성향이라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교사로서 느끼는 무력감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 지도를 하고, 아이가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계속적으로 지도를 해도 굳건한 바위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나 내가 지난 주 월요일 사건 이후, 이 아이와 마음의 거리가 멀이진 이유는 바로 나의 진심을 다한 지도가 아이의 마음에 가닿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점에 골몰하다보니 나도 나름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아이의 문제행동을 대하는 내 태도도 차갑게 얼어붙기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은 학기가 100일도 안남은 시점에서 아이와 옥신각신하며 마무리할 수는 없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고, 남은 호흡을 조금 끌어올려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 보기로 결심했다.


오늘도 여전히 문제행동이 계속 되었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향하는 마음의 렌즈에 묻은 얼룩을 조금 닦고 대해본다. 노트를 꺼내지 않고 멍때리는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너는 책임을 잘 지는 아이니까 이번 시간 끝에 검사를 맡고 갈거야 그렇지?"라고 태도는 다정히, 말투에는 힘을 주어 말해본다. 책임이라는 말에 밑줄 긋듯 힘주어 말하니 입은 삐죽이면서도 그 말이 싫지는 않은 지 책상 깊숙이 쳐박인, 낙서로 도배되고 귀퉁이가 다 찢어지고 헤진 노트를 살포시 꺼낸다.


청소시간, 늘 아이의 자리 밑에만 쓰레기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너는 책임을 잘 지는 아이니까 집에 가기 전까지는 바닥이 깨끗할거야 그렇지?" 라는 말을 향수 뿌리듯 내어놓는다. 그랬더니 아이는 집에 가기 전 조용히 자리 밑바닥을 치우기 시작한다.


하교시간, 빨리 보내고 쉬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를 부른다. 여느때와 같이 딴짓을 하느라 알림장을 느즈막이 쓰고 있는 아이. 우는 아이 우유를 주며 달래는 심정으로 입술을 꽉 깨문다. 따발총 쏘듯 지적하고 싶은 말이 가슴 가득 흘러나오려는 것을 꾹 삼키고,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다음의 다정한 네마디를 전했다.


"오늘 너의 행동에서 책임을 보았어. 물론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일은 힘든 법이야. 하지만 이렇게 책임을 다해 조금씩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단다. 선생님은 너의 이런 책임지는 모습이 참 좋더라. 선생님은 너를 믿는다."


그 말이 끝나자 이번 주 내내 차가운 기운이 서려있던 아이의 눈빛이 묘하게 따스하게 변하는 것을 감지했다. 나는 속으로 이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 말 몇마디가 내겐 너무 어려워서 그간 뒤켠으로 밀어놓기만 했던 것이다. 아이를 향해 진심을 다해 지도했다고 했지만 그 진심의 온도가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적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아이의 행동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하나는 확신한다. 오늘 잠시 내게 보여준 아이의 따스한 눈빛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아무리 약한 바람이라도 계속 되는 바람에는 제 아무리 강한 바위라도 조금의 움직임이 생겨나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하교 길에, 늘 알림장을 늦게 써서 남아있는 아이에게 다정한 몇 마디의 바람을 불어넣어주어야 겠다고 속으로 작게 다짐한다. 그 다정한 몇 마디의 바람은 그 바람을 생성한 내게로 다시 불어올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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