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레고보다 성심당 케잌이 좋은 이유를 물었더니
추석 당일인 오늘은 두달만에 친정에 내려가는 날이다. 대전에서 두시간 반이 훌쩍 넘어가는 곳에 친정이 있어 근 두달만에 내려가는 역사적인 날이다. 지난 친정아빠의 생일축하 케이크가 필요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들과 나눠먹을 빵도 사기 위해 겸사겸사 새벽같이 성심당을 갈 결심을 한다.
성심당으로 치면 한국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대전의 대표빵집으로 어느 샌가부터 인기가 높아지며 대전에 사는 사람들도 오픈런을 해야만 겨우 갈 수 있는 문턱 높은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한 데 모이는 가족들을 위해서 이 한 몸 불사하자는 마음으로 전 날 득의만만하게 알람을 맞추어본다.
다음 날, 7시 알람이 귓전을 날카롭게 때린다. 눈을 뜨자마자 대충 옷을 꿰어입고 나가려는 데 내 인기척에 아들도 깼는지 부스럭거리며 나를 따라나온다. 전 날 성심당을 간다고 노래를 불렀던 터라 아들도 먹고 싶은 빵이 있어 따라가려나 했더니 갑작스레 내게 날아온 뜻밖의 아들의 말 한마디.
“엄마 할아버지 케이크 이 돈으로 사와”
이틀 전,고모에게 받은 5만원짜리를 조심스레 내게 건넨다. 이 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틀 전부터 손에서 놓지 않고 신줏단지 모시듯 귀히 여기던 그 돈 아닌가? 그돈의 정체를 알고 있던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어안이벙벙하다 이내 가슴이 뭉근해져옴을 느낀다.
아들에겐 귀한 돈임을 알기에 반사적으로 입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엄마돈으로 사도 돼”라는 말을 속으로 꿀꺽 삼켰다. 아들의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을 지켜주고싶어서랄까? 반쯤 뜬 눈을 하고 입꼬리를 반쯤 올리고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곤 “엄마 잘 다녀올게”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왔다.
성심당으로 향하는 내내 아들이 내손에 쥐어준 동그랗게 말린 5만원권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고모한테 받은 용돈으로 레고를산다고 내내 들떠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한 연유가 뭘까? 내속으로 낳았지만 나도 모르는 아들의 심연같은 속이 가끔 이런 식으로 발현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에 뜨끈한 무언가가 차오르곤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마침내 성심당에 당도했고, 여덟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간이지만 그곳엔 연휴를 맞아 가족들을 위해 빵을 사라려는 인파로 북적댔다. 그들의손에든 트레이에는 가족을 향한 정이 빵으로 발화됐는 지 마치 거대한 산처럼 빵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그 모습을 한참을 따뜻한 시선으로 따라가보았다. 빵 하나사러오면서 괜스레 마음이 촉촉해진 건 필시 아들이 아침에 보여준 다정함때문이리라 확신하며.
잠시 감성적인 눈으로 빵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윽고 나는 케잌코너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들이 방금 전 내 손에 쥐어준 동그랗게 말린 오만원권을 품에 꼭 안은채.
귤시루 무화과시루가 절찬리에 판매 중이었지만 나는 아들이 특별히 부탁한, 작년에 할아버지께서 맛나게 드셨다던 과일생크림 케잌으로 주저없이 고르곤 카드를 낼까 잠시 고민하다 아들의 온기가 그득 담긴 오만원 권을 점원에게 내민다.
집에서 부터 꼭 쥐고 온, 선뜻 내 손에서 떠나보내기 아쉬웠던 아들의 추석용돈. 하지만 선선히 이 오만원을 떠나보내야 아들의 다정함이 케잌으로 온전히 옮겨갈 것만 같았다. 차가운 카드 대신 아들의 돈으로 케잌 비용을 지불하곤 아들의 따끈한 마음이 담긴 케잌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전쟁터에서 이기고 온 용사마냥 초록색 케잌보따리를 들고 돌아온 나를 반기는 아들의 얼굴엔 그 어느때보다도 싱그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레고가 아쉽지 않냐며 묻는 내 말에 아들은 이런 기특한 말로 화답한다.
“레고는 나 혼자만 좋은 거지만 케잌은 가족 모두가 좋을 수 있잖아요.“
예상치 못하게 흘러나온 아들의 답변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아들은 자신의 소중한 추석용돈이 초록색 케잌상자로 변해 돌아온 것을 보고 양어깨가 하늘로 치솟은 듯 의기양양한 태도가 되더니 얼른 할아버지댁에 가자며 옷을 꿰어입으러 방으로 들어간다.
돌아선 아들의 수굿한 뒷모습에서 빛이 났다. 자신보다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다정함 한도초과인 따스한 빛 말이다.
그리고 아들이 아침에 내게 건넨 오만원 한장에서
느껴지던 그 온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추석날 아침이다.
좌) 할아버지가 작년에 맛있게 드셨다던 생크림 케잌
우) 아들이 준 오만원을 내고 남은 거스름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