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요."
기철은 핸드폰의 지도를 들여다보며 무함마드에게 물었다. 타지에 온 게 오랜만이라 어지간히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했다. 전파가 잡히지 않을 것을 대비해 위성에서 신호를 받는 전화기를 구해왔고,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하여 예상가는 루트를 전부 짰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포켓 와이파이와 캐리어에 군용 비상식량과 호신용품도 챙겨 왔다.
"예, 잠시 돌아가는 겁니다. 원래 가려던 길은 지금 반란군이 점령했거든요. 장군이 직접 지시한 길입니다. 극진히 모시라면서요."
기철은 미심쩍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준비한다 한들, 초행길에 외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달리는 차에서 몸을 던지는 묘기를 부릴 만한 재간도 없고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외국인을 이 험난한 도시가 그냥 두고 볼 리도 없었다. 그는 그제야 핸드폰을 끄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차는 이제 공항 주변을 지나 도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심에 들어가기 전에 위치한 교외는 소말리아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도심과 교외지 사이에는 폐공장들이 모여있었다. 망가진 시대의 잔여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다 무너져가는 건물 사이로 잔해들이 공터에 널브러져 있었고, 철근이나 전선 따위가 흉물스럽게 늘어져있었다. 멀쩡히 불빛을 발하는 가로등도 하나 없어 무거운 어둠만이 가득하다. 이 공간은 물이 개수대 구멍으로 빨려내려 가는 것처럼 도시의 불빛까지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도심 사람들이야 애초에 도시 밖으로 잘 나오지 않으니 이 지역에 올 일이 없다만, 교외지 사람들도 이곳에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반란군이거나 테러범, 아니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삶의 표면을 떠도는 회전초 같은 자들 뿐이었다.
사전에 알아보기로, 교외지에 대한 소문은 흉흉했다. 네 번째 폐공장의 네 번째 층에는 민중 진압용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오작동 중이라 올라오는 사람을 모두 죽인다거나, Cade의 불법 인체 확장 시술의 여파로 몸과 정신이 망가져 약물 중독에 시달리다가 자아를 잃어버린 '배가본드'들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맹목적인 인간사냥을 벌인다던가 하는 뻔하지만 오싹한 이야기들. 소문에 살을 붙이는 실감 나는 목격담과 폐공장 지대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맞물려 동네의 겁 없는 개구쟁이 꼬마들 조차 폐공장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최근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사람들로 하여금 왕래를 끊게 하는 직격탄이 되었다. 아침 6시경, 올웨니 사단의 점령지를 순찰하는 무장 순찰차가 이곳을 순찰하다 끔찍한 변사체를 발견하였다. 폐공장 지대 4번 공장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발견했던 경찰들 말에 따르면 도저히 두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발견의 후유증으로 현재 격리되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소말리아 정부와 비공식이지만 Cade사까지 나서 동네를 들쑤시는 것을 보면 절대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술자리에 모여 각자의 추측을 꺼낼 뿐이었다.
"으스스한 곳이네요."
공항과는 다르게. 기철은 뒷말을 삼키며 무함마드에게 말을 걸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침묵이 불편했는지 무함마드는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죠? 그래도 여기가 한때는 아주 잘 나가는 곳이었습니다. Cade가 들어와서 공장도 많이 지었고 사람도 이주시켰죠. 덕분에 한동안은 해적 국가라는 오명을 벗었습니다. 모두 풍요로워서 내전도 멈췄고 약탈할 필요도 없었거든요. 행복한 시간이었죠."
"Cade가 좋은 일도 하는군요."
기철은 냉소를 머금었다. 앞에서는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지원을 퍼붓고 뒤에서는 정부와 거래를 맺어 실험에 필요한 자원을 독점하는 것, Cade가 사업 파트너를 포섭하기 위해 으레 하는 짓이다. 그렇게 파트너십을 체결하면 그 국가는 완전히 자생력을 잃고 Cade에 의존하게 된다. 소말리아도 그랬다.
"아하하, Cade에서 나오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다니요.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Cade를 좋아합니다. 제가 경험한 행복한 순간은 모두 Cade 덕분이니까요. 사실, 저희 아버지도 원래는 해적이었습니다. 그때는 다들 그랬지요. 먹고살기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쁜 짓은 맞으니까요. 문제는 해적이라고는 해도 말단이라 아버지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가난했지요. 굶주렸고. Cade와 파트너십을 전까지는."
무함마드는 잠시 말을 끊고 핸들을 꺾었다. 스쳐가는 풍경에 파리가 들끓는 시체더미가 담겼다. 유진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어서 말하자면, Cade는 우리에게 구세주였어요. 마실 물, 음식, 걸칠 옷을 나눠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공항도, 도시도, 심지어 도로까지 정비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철수한 이후 다시 시작된 내전 때문에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여기에 공장과 마을도 지어주었지요. 당연히 일자리도 많이 생겼고요."
"그 내전 말인데,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윗사람들의 일이라 저 같은 말단은 자세히 모르지만 Cade가 떠나간 후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아요. 어느 날 갑자기 정부에서 Cade의 시설을 국유화하겠다는 발표를 했어요. 그때는 이미 사람들의 생활이 많이 안정되어 있어서 그러려니 했죠. 군벌도, 반란군도 모두 할 일이 없었거든요. 사람들의 불만을 등에 업어야 정당성이 생기는데 사람들이 너무 평화롭고 행복했으니까요. 이변을 느낀 건 Cade가 떠난 후 올웨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부터였어요. 저는 아버지가 뒷바라지해주신 덕분에 대학에도 들어갔고 유럽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소말리아 외교부 소속으로 모가디슈에서 일했어요. 언제부턴가 도시가 조금 소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갑자기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나며 한낮에 탱크가 도로를 질주하는 게 보이더군요. 물론 대충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외교부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설마 했습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도시에, 그것도 한낮에 쿠데타가 벌어질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입니다. 올웨니 장군님이 수도를 점령했고 그에 반발하는 군벌들이 다시 내전을 일으켰죠. 그래도 모가디슈에서 큰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Cade의 지원으로 무장한 올웨니 장군의 군대가 워낙 강력했으니까요. 저는 유학 경력을 인정받아 귀빈을 대접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나름 엘리트 대우를 해준 것이지요. 아까 공항에서 보셨겠지만 장군의 보호를 받는 지역들은 그래도 안전한 편입니다. 다른 지역은... 솔직히 가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아까 시체더미 보셨지요? 그중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함마드의 경고에 간담이 서늘했다. 올웨니 장군의 보호를 받는다는 모가디슈에 가까운 지역이 저 꼴인데,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겠지. 유진도 아직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지만 기철과 무함마드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기철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뉘었다. 두려운 것은, 아마 이 상황이 모두 Cade가 계획한 대로 흘러갔을 거란 사실이었다. 그가 알기로,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일은 전부 실험체와 자재를 공급받고, 불법적인 일을 처리하기 쉬운 하수인을 만들기 위해 Cade가 벌인 공작이었다.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확실히 휘어잡기 위한 계획.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 실행 이후 기철도 그러한 사례를 많이 보았지만, 그에 관여하지 않았다. 정치 같은 것은 자신이 끼어들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 온 이후 스스로에 대한 경멸이 심해지는 것과 더불어, Cade의 더러운 민낯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뒷자리의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무함마드가 사과했다. 기철은 어느새 그를 향하던 경계심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연민이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아닙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 그랬습니다. 그나저나, 거의 도착하지 않았나요?"
"아, 예. 저 앞에 큰 문 보이시지요? 저 문만 넘으면 모가디슈입니다. 그 안은 안전하니 긴장 푸셔도 됩니다."
그의 말대로 도로 끝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황무지에 뜬금없이 세워진 문은 거대한 아가리를 서서히 벌리며 기철 일행을 집어삼키려 했다. 기철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바로 일을 보시렵니까? 아니면 도시를 좀 둘러보실래요?"
무함마드가 예의 그 질문을 건넸다. 기철이 문에 압도당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유진이 그의 주먹 위로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으며 대신 대답했다.
"일부터 볼게요. 짐만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