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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Dec 25. 2023

필멸의 방정식(15)

연한 황토색에 걸쳐진 색의 향연이 눈을 어지럽힌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고운 흙먼지가 올라와 창문을 덮친다. 무함마드는 연신 와이퍼를 작동시켜 먼지를 털어냈다. 녹슨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소리가 차 안에 가득했다. 기철은 유진과 손을 마주 잡고 정면을 응시했다. 평소 긴장이나 두려움과 거리가 먼 그녀였지만 소말리아에 대한 무함마드의 말, 그리고 도심과 교외를 양분하는 흉측한 아가리를 본 이후부터 그녀의 손에 땀이 흥건했다. 기철도 피차일반이었다.

"오늘따라 가람이 많네요."


차량이 시장 인근에 들어서자 무함마드는 계면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백미러로 기철과 유진을 힐끔거렸다. 그의 말대로 아까부터 일행은 앞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사람들이 길을 막아서자 두려움이 차오른다. 이곳이 나름 평온하다는 무함마드의 말도, 사전에 찾아본 모가디슈의 분위기도 그의 걱정을 불식시켜주지 않았다.


"그런 건 아닙니다. 출근 시간이라 다들 이동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함마드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태도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무함마드는 계속 정면과 손목시계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뒤를 돌아보며 불쌍한 이방인들에게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할 거예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갑시다."


무함마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유진과 기철은 그의 기세에 덩달아 문을 열었다. 더운 열기와 흙먼지가 그들을 감쌌다. 건조한 바람이 연신 얼굴을 때려 피부의 물기가 말라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열기가 폐부로 짓쳐들어와 폐가 오그라든다. 그들을 뒤따르던 경호원들이 경호 차랑에서 뛰쳐나와 사람들을 밀쳐냈다.


"밀지 마세요!"


"여기 사람 있다고요!"


일대에 소란이 일었다. 앞으로 끼어드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은 한 남자는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옆구리에 차를 처박았다. 경호원에 거센 방망이질에 밀려 길가로 넘어진 여인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웅크렸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그때, 유진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기철은 순간 몸이 당겨지는 감각에 힘을 주었지만 유진은 몇 차례 실랑이 끝에 그의 품을 벗어났다. 허무하게 그녀를 놓친 기철은 그녀를 쫓았다.


"유진!"


기철은 솜털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꼈다. 그들을 부루는 무함마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주변을 가득 메운 비명과 고함에 묻혀버렸다. 유진이 멀리 가지는 못했겠지만 흙먼지 때문에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기철은 유진을 쫓아 계속 나아갔다. 이토록 먼 이국의 땅, 그것도 내란을 황폐화된 곳에 그녀를 홀로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혼자 남겨질 자신을 생각하니 그녀의 부재가 더욱 두렵게 다가왔다. 이기적인 동기였지만 기철을 필사적으로 그녀를 찾았다.


그러다 그는 어딘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꼴사나운 모습으로 땅에 처박힌 기철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머리는 산발에 방금 넘어진 충격 때문에 얼굴은 피범벅이다. 신발은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한쪽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철은 발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자루를 뒤지어 씌웠다. 그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지르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를 붙잡은 이 억센 힘의 소유자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혹은 그녀는) 귀찮다는 듯 기철의 배를 때려 잠잠하게 만들고 그를 들쳐 맨 채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그는 자루에서 곰팡이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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