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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Dec 28. 2023

필멸의 방정식(16)

텁텁한 공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숨을 쉴 때마다 복면으로도 걸러지지 않는 미세한 먼지가 코를 자극해 자꾸만 재채기가 나오려 한다. 팔은 등 뒤로 돌려져 단단히 묶여 있어, 어깨가 꺾일 것 같았다. 손을 쥐락펴락하며 감각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주변을 파악하려 했지만 얼굴 전체가 가려져 있었기에 확인하기 어려웠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므로 주변 상황을 청각으로 알아채기란 요원했다. 유진은 어디로 갔는지, 자신을 납치한 이놈들에게 끌려간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디에 떨어져도 잘 살아남을 것 같은 그녀지만, 이토록 무자비한 테러리스트(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대낮에 사람을 납치할 정도로 막 나가는 녀석들은 테러리스트나 저항군, 반란군 정도밖에 없을 것이니까.)에게 그녀의 밝음이 전해지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깼나."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비영어권 주민 특유의 툭툭 끊기는 억양이 거슬렸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소말리아 사람인게 분명했다.


"저를 왜 납치한 거죠?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니,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저 심부름을 하러 온 사람입니다. 납치해도 아무 의미 없는 그런 사람이에요! 올웨니나 Cade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정보가 그쪽에게 이득이 될 것 같지도 않고요! 제발 풀어주세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기철은 발버둥 치며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기철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가디슈 앞에 버려주기만 한다면 평생 다물고 살게요! 저는 당신이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합니다. 풀어주세요!"


"당신, Cade 사람이지?"


남자는 기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젠장, 역시 Cade에 불만을 가진 녀석들인가. 돌아가자마자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예..."


"Cade가 다시 왔다는 건 자재가 필요한 모양인데, 무슨 자재인지 알고 있나?"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기철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무해하고 무고한 희생자를 연기하면서.


"들은 바가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저 심부름꾼입니다."


그러나 기철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도 남자는 기철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Cade 놈들을 내쫓으려고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희생을 치렀는데... 뻔뻔하게 다시 기어들어오려 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겁니다."


"어이, 너. Cade가 우리나라에 한 짓을 알고 있나?"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철은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우리나라는 Cade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 그놈들이라면 세계 전체를 실험 대상으로 보고 있겠지."


(비공식적으로) Cade가 소말리아에 저질렀다 여겨지는 여러 만행이 있지만, 추측들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실험설'이었다. Cade사와 정부가 손잡고 생체실험을 진행했으며 이를 폐공장 지대에서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그 여러 '만행'의 피해자였다. 그는 중증 PTSD 환자였다. 세계 연합 의회의 관리망 밖에서 태어난 그의 첫 기억은 총상으로 죽어가는 부모가 자신을 끌어안으며 짐승처럼 울부짖던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아기의 강렬한 기억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였고 그는 환영에 평생을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형광으로 물든 달이 붉게 녹아내리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서야 그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에 전투에 나서는 것 이외에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어린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그는 소년병으로 자신의 첫 전투를 시작했다. 그는 세계 연합 의회에 속하길 거부하는 정부에 맞서 반란군의 일원이 되었다. 정치적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소년병으로 받아주는 곳이 반란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는 젊고 강인한 신병, 노련한 베테랑, 엘리트 장교, 총알받이에 불과한 소년병 모두에게 공평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적진 한복판에 낙오되어도 끝끝내 생환했지만 운이 나쁜 사람은 아군이 쏜 총에 맞아 영문도 모른 채 객사하기도 했다. 다행히 남자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그는 병사로서 타고난 부분이 있었다. 전투만 벌어지면 그는 침착하게 자신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정리해 나갔으며 쉽게 지칠 줄 몰랐다. 어린아이 답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실제로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였음에도 주변에서 볼 때 그는 훌륭한 전사로 보였다. 시작은 일개 총알받이였고 게릴라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지만 이내 빠른 속도로 진급한 그는 성인이 되기 전 반정부군에서 한 개 중대를 맡게 되었다.


세계에서 정부와 반란군의 대립은 흔한 일이었지만, 소말리아는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공멸하는 것 이외에 선택지가 없다는 듯 그들은 서로를 학살했고, 결국 그 싸움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자들이 지도부 중에서도 소수만 남게 되었을 때 전쟁은 끝이 났다.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공통의 어젠다를 위해 나아가기로 극적 타결한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국가 기반을 유지할 생산 수단이 남아있지 않았고 최소 노동력을 유지할 인구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포기한 것이다. 이 틈을 타 Cade와 세계 연합 의회가 개입하였다.


Cade사는 정부가 반항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전후 세계의 극복을 위해 세계 연합에서는 재건을 위한 기업 및 연합의 개입을 특정한 사례에 한해 허용하고 있었다. <비 파괴적인 기술 개발에 대한 장려와 기업들의 전후 복구 의무에 대한 조항>이 그 근거가 되었는데, 이는 Cade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정부에 개입하고 토지를 매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결국 3년이 지나기도 전에 전체의 70% 이상이 사실상 Caed의 소유가 되었다. 또한 조사를 통해 남자가 살던 소말리아는 철광석과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 매장량이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져 여기저기에 광산과 공장들이 들어섰다. 넘쳐나는 인구는 덤이었다.


남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동 적령기의 인구는 광산과 공장의 인부가 되어 살게 되었다. 최근까지 서로 죽고 죽이며 싸움을 계속한 집단을 한 곳에 모아 두었으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리 없었다. 술집에서의 사소한 시비는 일상적이었고, 성향이 다른 집단을 향해 폭력과 테러를 가하는 일도 왕왕 벌어졌다. 이에 Cade는 지역 기반의 기업 경비팀을 신설하고 기업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입주민과 노동자에 대한 진압권, 수사권, 처벌권까지 부여했다. 정부의 의견을 무시한 이 행태에 강력한 항의가 빗발쳤지만, 이제 막 내전에서 벗어난 개발도상국이 초국가적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꽤 많은 군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니, 그들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끝까지 반발하던 소수의 정부 요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했다고 보도되었다.


남자는 그들이 벌이는 싸움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전장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흥분, 그리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보급되는 점막 흡입형 각성제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중개인으로부터 부대에 보급되는 이 진정제는 복용자를 강제로 진정 상태로 몰고 가 시야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고 전장에서 심박수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산발적인 전투가 한창 잦았을 당시 병사들은 이를 물에 타 음료수처럼 마셨다. 결국 중독되어 심장마비나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지만 전장에서 죽나, 약으로 죽나 매한가지였기에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에게도 언젠가부터 부작용이 찾아왔다. 처음은 부정맥으로 갑자기 숨이 막히기 일수더니 언젠가부터 블랙아웃이 찾아와 전장 한복판에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죽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기절한 뒤 팔다리를 잃고서야 그는 약물을 끊을 수 있었다.


복용을 중단한 후유증은 심각했다. Cade사의 대민 지원 정책의 대상자로 선정되어 신체 확장 시술을 받은 뒤 뇌가 새로운 신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깨어있는 순간이 드물었으며 항상 어지러움과 구토감을 달고 살았다. 그중 최악은 다시 찾아온 환각이었다. 그 환각은 자신을 피하려 했던 남자에게 복수하듯 더욱 무자비하게 찾아왔다. 그의 세상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온통 강렬한 색으로 덧칠해져 있었다. 달은 형형색색의 광기를 내뿜으며 그를 덮쳐왔고 세계가 자꾸만 흘러내려 감각을 구분할 수 없었다. 약물 치료를 원했지만 이미 약물 중독 판정을 받았고, 트라우마의 발현으로 환각증세가 있다는 것을 같은 중대의 하사에게 들은 의사가 자연 치유를 처방했기에 약물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다가오지 말라며 환영에 팔다리를 휘두르다 정기 검진을 나온 Cade사의 직원을 때려눕혀 불구로 만들고 나서야 약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 남자의 기구한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투에 중독된 남자는 통원치료로 전환하자는 의사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병원을 떠나 다른 전장으로 향하려 했지만, 이 국가와 노동 적령기의 인원 전부가 Cade사와 계약되어 있었기에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없었다. 더욱이 반란군 출신이었기에 그는 행정적으로 반사회분자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여권은 당연히 발급되지 않았고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Cade에 저당 잡힌 금액이 상당했기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이곳에 남게 되었다. 다행히 전투 경력이 인정되어 기업 경비팀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처절한 생존의 줄타기를 건너던 남자에게 취객들의 주먹다짐이나 건달패의 영역 다툼 등은 가소로운 애들 싸움 수준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약물을 물에 섞어 들이킨 뒤 출근을 하던 남자는 한 고아 무리를 보게 되었다. 검붉은 머리가 독특한 10대 소년은 Cade의 경비에 맞서다 두들겨 맞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들이 두려워 악도 지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소년을 한참 두들겨 패던 경비들은 이내 아이들을 강제로 영행해 갔다. 사실 이 지역에서 고아들이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고 경비팀이 주민을 폭행하는 일이 아주 흔했기에 남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의 고장 난 윤리관은 측은지심 따위를 얄팍한 허세 정도로 취급하게 만들었고 그의 머리에서 아침의 사건은 이내 잊혔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난 시점, 남자는 외각지역의 숲을 순찰하던 도중 이상한 흔적을 발견한다. 바위에 묻어 있는 검붉은 터럭.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그것을 검지와 엄지로 집어 살짝 비벼보았다. 큰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터럭은 먼지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남자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렇게 눈에 쉽게 띌 정도로 뭉쳐있는 터럭이 작은 충격에 부서질 리 없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굴러먹은 야수의 감각으로 보았을 때 심상치 않은 사건임이 분명했다. 무료한 일상에 잊었던 전장의 감각이 빠르게 되살아난다. 시야가 좁아졌다가 심호흡을 하자 이내 다시 넓어진다. 천천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전방을 겨눈다. 긴장으로 굳은 승모근을 목을 돌리며 살며시 풀어준다. 다시 심호흡.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천천히 숲으로 들어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권총을 잡은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권총을 언제든 발사할 수 있게 조정간 위치를 단발에 맞추고 방아쇠를 살짝 당겨 놓는다. 순간 나무 위에서 무언가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늑대처럼 기민하게 앞으로 굴러 낙하물을 피하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몸에 익은 더블탭으로 가슴팍에 두발, 머리에 한 발을 맞춘다. 귀신같은 사격 솜씨였다. 낙하물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남자는 스스로 그렇게 되뇌며 천천히 다가가 머리를 향해 총을 발사하며 확인 사살을 실시했다. 적의 머리는 붉은색이었다. 며칠 전 아침에 본 그 소년의 머리색과 아주 똑같은 검붉은 색.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형체였다. 의수로 보이는 팔이 십 수개는 달려있었고 입은 네 갈래로 벌어져 그 안이 기계 장치로 가득했다. 눈은 섬뜩할 만큼 공허했다. 묘한 섬뜩함을 느끼며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그 형체의 목 뒤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회로가 그려진 용도를 알 수 없는 칩이었는데 멋스럽게 그려진 Cade의 로고가 눈에 띄었다.


기철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망률 감소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그 부작용인 무기력함,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Cade에서 여러 실험을 벌인다는 소문이었다. 인간 육체와 정신의 한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졌다. 급격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달리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선사시대 이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 인간의 육체는 과거 자연을 달리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던 그때와 다를 바 없었으며 정신 또한 확장되지 않았다. 그때보다 종적으로는 퇴보했다는 견해도 종종 제시되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편의성이 극도로 발달해 인간 육체는 전혀 단련되지 않았고 모든 지식과 기술이 다이제스트 되어 쉽게 흡수되니 그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에 대한 지적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생명체고, 심지어 쉽게 죽지도 않는 초월적인 신체를 얻었으니 이 주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Cade를 비롯한 세계 연합의 수뇌부는 이러한 사상에 동조했고 이에 따라 인간을 진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설계했다.


종적 차원에서의 진화는 인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진화의 대전제 중 하나가 다윈이 주장한 '적자생존'의 논리라는 것은 너무 유명해서 굳이 서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버린 인류는 진화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환경마저 어느 정도 주무를 수 있는 지경에 이른 인간은 현생인류에게 언제나 최적화된 환경을 항상 제공했고 이는 인류의 진화 생명력을 말살해 버렸다. 계획을 설계한 Cade의 연구진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생각보다 대담하고 비윤리적이었다. 시작은 우생학에 근거한 '교배'였다. 이들은 우선 사회적으로 각 분야에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의 유전자를 전부 수집했다. 또한 세계 각지에 '원시 보호 구역'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으로 보호되고 있는 부족사회에서 독특한 유전 형질들은 수집했다. 이들은 윤리라는 사회적 약속의 벽에 막혀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극 활용해 수집한 형질을 재조립해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어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이 조합해 만들어낸 배아는 대부분 인공수정관을 나오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운이 좋아 생존했다 하더라도 그 배아의 형태는 인간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현생 인류가 가진 물리적 형태가 자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종적으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도구로 극복했고 지적인 한계를 문자, 사회적 약속, 교육 등으로 극복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간의 운명을 주무르고 있다는 전능함인지, 생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함에서 오는 패배감이었는지 그들의 감정적 동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확실히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연구진은 인간의 육체에 직접 도구를 장착하는 시도를 했다.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담배로 찌들어 폐가 고장 났다면 인공 폐를 심으면 될 일이고 알코올 중독으로 간이 박살 났다면 간 대신에 정화 장치를 심으면 되는 일이었다. 연구진은 본사의 계열사 중 메디컬 분야에 실험체를 요청했다.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당연히 일어나서는 안되고 불법인 일이었지만 이들은 본사와 세계 연합을 뒷배로 두고 있었기에 초법적인 부분이 있었다. 거절하고 반대했던 의사들은 좌천되거나 조작된 의료 사고의 피의자가 되어 수감되었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연구진과 그 뒷배는 인간을 마음대로 농락하는 신이었고 그들에게 거역하고 감히 바벨탑에 오르려는 자는 없었다. 셀 수 없는 인체 실험, 줄어드는 실험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크고 작은 분쟁들, 수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위대한 소명에 근거했고 위대한 항해를 하는 중이었으니까.


지지부진하던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것은 14차 실험이 이루어진 후였다. 한 차수마다 천 단위 이상의 실험체가 필요하니 엄청난 수의 인명이 이들의 손에 스러진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중추신경계의 교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전 실험에서 실험체들은 자신의 육체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유기물과 무기물의 부조화 때문에 적응이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확장된 자신의 육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만약 당신에게 갑자기 꼬리가 생긴다면 어떨 것 같은가? 평생을 한 몸으로 살아오면서도 자신의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인데,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부착물이 늘어난다면? 그들은 새로운 수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주했다. 심지어 세 번째 금속 팔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의 머리를 부서질 때까지 때린 실험체도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인지 공간과 능력을 확장시키고 그 연산을 도와줄 장치가 필요했다. 14차 실험의 결과로 이를 깨달은 연구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실험을 준비했다. 14차 실험의 실험체가 10대의 소년이었기에 이들은 우선 10대를 실험체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활동 반경을 넓혀 관리망 밖의 세계에 분쟁의 씨앗을 적극적으로 뿌리고 수많은 전쟁고아를 양산토록 했다. 나이와 적합률은 상관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몇 번의 실험이 더 있은 뒤였다.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은 연구진들은 Cade에 결과를 보고했다. Cade의 이사진과 세계 연합은 결과에 만족하는 한편 완벽히 통제된 환경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는지 보고 싶어 했다. 이들은 연구진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연구실에서 계속 실험을, 나머지는 실제 상황에서 테스트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변수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테스트는 순조로웠다. 분쟁 지역부터 각종 극한의 산업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인체 확장 시술을 받은 개조인간들은 어느 곳에 투입되던 문제를 해결해 냈고, 연구진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Cade와 연합에서 문제를 발견한 것은 이미 통제를 벗어났을 때였다. 아마존의 한 밀림에 마약상을 체포하기 위해 국경수비대의 리콘 팀이 투입되었는데 마약상과 함께 공멸했다는 소식이 연구진에게 전해졌다. 연구진은 그곳에 개조인간을 보낸 적이 없었기에 의문을 가지며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처참했다. 시신은 신원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난도질 당해 있었고, 육체의 통제권을 벗어난 붉은 물감이 현장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고 사람의 머리 크기 이상의 파편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현장을 보자마자 그들이 이곳에 보내진 이유를 알았다. 그러한 흔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인체 확장 시술은 받은 자들 뿐이었다.


최근 들어 테스트에 투입된 10대 확장 시술자들이 사망하거나 감시망에서 사라지는 일이 잦아졌다. 연구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실험 단계에서 만들어진 시제품 같은 것이었기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파괴될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불타는 회로를 진정시켜 줄 약물도 없었기에 날뛰다가 자멸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파괴되지 않고 계속 기동 했으며 어딘가로 숨어들어 자신의 영역에 침입하는 모든 것을 배제했다. 강력한 능력에 비해 포식자 답지 않은 그 반응은 지극히 인간종의 특징을 닮아있었지만, 그 능력은 인간을 초월한 것이기에 지역 자체를 전소해버리지 않는 이상 토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목적을 '강력한 인체 확장 기술을 만드는 것'에서 '인체 확장 시술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 불쌍한 10대 소년 소녀들은 자신의 방 안에 갇혀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부모가 방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오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듯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모든 생명체를 배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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