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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등급 인간(9)

by 전창훈

누나는 아까부터 지지직거리며 점멸하는 불을 껐다. 단지의 어두움 사이로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은은하게 비쳤다. 사락거리는 소리에 이어 바닥으로 무언가 가벼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누나가 옷을 벗는 소리다. 나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다 침대에 걸려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어두운 와중에도 내가 보이는지 누나는 가볍게 웃었다.


"옷, 벗어야지."


나는 그녀의 말에 홀린 듯 옷을 벗었다. 처음에는 웃옷, 다음은 양말, 그리고 바지. 아주 어릴 때부터 고수한 습관이다. 점점 그녀가 다가온다. 한 발자국 가까워질 때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다가와 방을 메운 쿰쿰한 냄새를 밀어냈다. 작은 방에서 도망칠 곳도 여의치 않았지만 나는 고양이를 피해 구멍으로 달아나는 쥐새끼처럼 침대 구석으로 밀려났다.


"안 잡아먹어. 도망치지 마."


그녀는 침대에 손과 무릎을 대고 천천히 기어 왔다. 향기가 짙어지며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되어 갔다. 이윽고 몸이 맞닿았을 때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속옷도 벗어야지. 터지려 하잖아. 아프겠다."


그녀의 말마따나 아까부터 아래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저릿한 아픔에 쾌감이 섞여 들어와 다리가 움찔거렸다. 속옷 안은 더운 습기로 가득 차 축축했다. 문득 빨래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와 몸을 밀착하고 혀로 목을 간지럽히듯 핥았다. 그 느슨하고 끈적한 움직임은 경험해보지 못한 쾌락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내 속옷을 내리고 능숙하게 보드라운 손길로 그것을 그러쥐었다.


"아."


단말마의 비명이 바튼 숨소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육체를 뒤덮는 감각의 해일에서 죄책감, 불안감, 우울감 따위가 끼어들 공간은 없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녀의 몸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는 내 목을 살짝 깨물고 말했다.


"그렇게 세게 안으면 못 움직여 목부터 엉덩이까지 천천히 쓸어내리는 거야. 아... 그래, 그렇게 젠틀하게. 급하게 하지 말고."


나는 그녀가 유도하는 대로 천천히 그녀의 몸 전체를 어루만졌다. 그녀도 손을 올려 왼손으로는 얼굴을, 오른손으로는 어깨를 쓰다듬었다. 다시 한번 차가 지나가며 밝은 불빛이 비쳤다. 빛은 그녀의 몸을 훑듯이 타고 흘러갔다. 최초의 빛이 닿는 곳을 시선으로 쫓으며 유려한 곡선을 감상할 때, 빛은 이윽고 두 개의 풍만한 봉우리에 닿았다. 가슴, 그것은 최초의 가슴이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살면서 본 가슴은 어머니의 것이 전부다. 그것도 젖먹이 시절을 지나서는 본 적이 없으니 살면서 기억에 있는 가슴의 형태는 어쩌다 본 성인 영화와, 그것으로부터 촉발된 상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가르쳐준 적도 없었지만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현됐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며 머리를 뒤로 살짝 꺾었다.


"나 가슴 예민하니까 살살해."


나는 그녀의 말에 허락이라도 받은 듯 손을 바삐 놀렸다. 비교군이 없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가슴은 풍만했다. 부드러운 살점은 손가락을 끝도 없이 빨아들였다. 골짜기로부터 세찬 박동이 느껴졌다. 그녀의 숨이 가빠질수록 박동도 함께 거세졌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그것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달콤한 포근함과 맥동이 내 몸으로 밀려들었다. 차츰 나의 맥이 그녀의 맥에 맞춰 같은 박자로 움직였다. 빛이 없음에도 그녀의 육신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다른 부분에서는 어떤 맛이 날지, 어떤 박자를 들려줄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서 입을 떼고 천천히 아래로 입을 가져갔다. 누나는 내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막았다. 몸이 멀어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물어보고 해야지."


"해도 될까요?"


"안돼. 순서가 있는 법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잡고 입술을 포갰다. 그녀는 열쇠로 문을 열듯 굳게 닫힌 이 사이의 빈틈으로 혀를 밀어 넣으려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굴 근육이 굳었는지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장난스레 내 볼을 감싸고 그 사이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닥쳐온 바람에 나는 입을 벌렸고 그 사이로 그녀의 혀가 들어왔다. 혓바닥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입안을 누볐다. 하지만 주로 내 혓바닥에 머물렀다. 나는 실수로 혀를 씹지 않도록 턱에 계속 힘을 주어야 했다. 턱이 살짝 뻐근해졌을 때, 그녀는 입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해도 돼. 피부가 약하니까 손톱으로 긁으면 안 돼. 세게 누르거나 손가락 넣지 말고. 천천히 하는 거야. 내 반응을 보면서."


그녀는 좋은 선생이었다. 서투른 손길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지점에 손가락이 닿으면 "거기야." 하고 피드백도 주었다. 나는 그녀의 지도에 따라 점점 문을 열었다. 내가 이 정도로 무언가에 집중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열심히, 또 탐구적인 자세로 그녀를 어루만졌다. 손이 축축하게 젖고 그녀의 몸에서 땀이 가볍게 새어 나올 즈음, 나에게서도 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은 뻗어 확인하더니 기이한 열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가방에 콘돔 있어. 가져와줄래?"


나는 이미 그녀의 수업에 매료되었기에 불만 없이 일어나 가방을 가져왔다. 콘돔은 비타민C 사탕처럼 보였다. 어릴 때 약국에 가면 약사 아주머니가 하나씩 주시던 그것처럼.


"써본 적 없지?"


부끄럽지만 그렇다. 누나는 만져보라며 포장을 뜯지 않고 콘돔을 건넸다. 딱딱한 비타민C 사탕과는 다르게 말랑하고 미끌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포장지를 찢자 안에는 동그란, 탄력 있어 보이는 무언가가 액체 질감의 미지의 것에 담겨 있었다.


"너무 세게 잡으면 찢어져."


그녀는 내 손에서 콘돔을 가져가 포장지를 벗겼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앞면을 찾아 내 그것에 대로 손으로 밀었다. 꽉 끼는 밀착감과 이제 곧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흥분이 몰아쳤다. 나는 흥분하여 발정 난 개처럼 달려들어 허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들어가는 느낌 없이 자꾸만 헛돌았다.


"진정해. 거기 아니야."


그녀는 나를 진정시키고 그것을 잡은 후 음부에 대었다.


"다시 말하지만 흥분하지 마. 너무 깊게 넣으면 아프니까 억지로 밀어 넣지 말고. 천천히, 느긋하게 왕복하는 거야."


나는 그녀의 리드에 따라 그녀와 호흡을 맞췄다. 부드러운 압박감이 하반신을 넘어 전신에 퍼졌다.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함을 메우려는 듯 격렬하게 몸을 부딪혔다. 나는 이 격정적인 순간에 비로소 생을 자각했다. 도덕, 언어, 학력, 돈, 종교를 뛰어넘는 내밀하고 근원적인 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 그제야 나는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했다. 그녀의 본질을 흡수하며 나를 채웠다. 다시 차가 지나가며 헤드라이트를 비췄다. 빛이 그녀의 얼굴을 훑을 때, 나는 그녀가 아까보다 늙어 보인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고통과 환희가 뒤섞이며 육체를 이탈하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나는 온몸으로 그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벽이 밀려나며 비명을 지른다. 이 작은 침대 위, 정사로 축축하게 젖어버린 이불속에 나는 존재한다. 머리를 조여 오는 환상이 물러난다.


이제 사정을 할 때였다. 사타구니 주변으로 저릿한 감각이 퍼지며 강렬한 요의가 찾아왔다. 나는 급히 그녀와 거리를 벌리며 사정을 했다. 기분 좋은 탈력감과 짙은 여운이 감돌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형체를 이루지 못한 말들이 떠돌았고, 거친 숨소리가 이를 대신했다. 그녀는 나를 살포시 끌어안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이제 좀 쉬어."


고생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잠이 찾아왔다. 애써 눈꺼풀을 들어 올렸지만 그녀의 손길과 함께 아까까지 충만하던 육체의 존재감이 빠져나갔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녀가 싫어할 것 같았다.


꿈에서, 나는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누나를 본다. 야릇함도 성적인 신호도 전하지 못하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누나를 본다. 누나는 나와 정사를 나누던 그 순간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화려한 화장도, 수수한 옷차림도, 누나의 동생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그녀의 순간이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의 맞은편, 그러니까 나와 누나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진 반대편에 '그녀'가 서있다. 그녀는 체조실에서 본 그 모습 그래로 우릴 바라본다. 비난도 걱정도 없이 그저 그곳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 멈춰버린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바라보는 것뿐이다. 생각조차 허락되지 않는 순간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누나는 이미 떠나 있었다. 침대는 아직 습기에 젖어있다. 나는 그녀가 누워있었을, 약간 움푹 들어간 이불을 쳐다보며 지난밤의 열기를 떠올렸다. 성년까지 간직한 순결과 맞바꾼 그녀의 숨결과 영혼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불현듯 발가벗은 상태라는 것을 자각했다. 어둠의 장막에 가려 촉각에서 촉발된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나신이 드러났다. 앙상한 갈비뼈 밑에 하얀 피부가 적나라하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 몸을 가렸다. 3평짜리 원룸이 이토록 넓고 공허해 보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방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우리의 것도 아니다.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아침이다. 이 시간에 일어나 있는 게 얼마만인지.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무언가 변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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