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없는 장미, 이젠 꽃피울 수 있기를.
동생에게-.
오늘 썩 마음에 드는 獨文詩의 구절 하나를 발견했다. Nicht mehr sein 그 이상 存續, 存在하지 않음이란 뜻.
아직 학교에서는 독어 초보 문법 과정이기에 어느 하나 윤곽도 파악 못한 상황이지만 그 나름대로 허우적거리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요즘이다.
캠퍼스에 滿發했던 벚꽃도 어느덧 지고, 初夏를 맞이하는 신록이 점점 초록빛으로 선명히 물들어 가고 있다.
동생아 보들레르도 일렀듯이 ‘취미에서가 아니라면 절망에서 나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전’의 ‘격정적으로 사는 것-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진찰한다는 그런 人生에 대한 자세를 지닌다는 것이 혼자 있으면 더욱 힘들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는 나다.
언제나 똑같은 초지일관의 모습으로 성실하게 매일의 것들을 구축한다는 것, 이러한 삶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견지한다는 것은 정녕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려고도 해도 평소땐 이를 악물고 쓰고 있던 쾌활의 가면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빌어 폭발하고 말 때도 있다. 늘 잘 통제되고 있던 온갖 「인간적인」약함, 슬픔, 외로움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빌어 의식의 두꺼운 벽을 뚫고 표면에 떠올라오는 것이다.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다.
다시 반복되어지는 生活이 극단을 향해 치달려가는 의식을, 그곳에의 길을 차단하고는 하지만 사소한 법칙과 경탄할 만한 습관과 거만한 안정감들로 이룩된 日常性의 질서는 견고한 테두리를 치고, 극단으로 날아가려는 나의 날개를 무자비하게 찢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 날아오르기로의 시도는 계속 견지될 것이다. 몇 번이고 찢기고, 선혈이 흐르는 파닥 거림이 계속될지라도 언제나 눈방울은 위를 향하련다.
처음 지금의 대학을 들어가기 전, 일기장에 써두었던 글월이 떠오른다. 「왜 大學에 들어가려 하는가?」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 궁극적인 것이 빠져 있는 것만 같았기에, 그 유일의 것이 학문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학문을 위한 학문, 文學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서적을 정신없이 탐독하며, 스스로 그곳에서 길을 찾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과연 이러한 것들이 지금의 文學에서 충족되어 질지는 미문이다.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초석이, 반석이 될만한 기틀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지금을 사는 나이고 싶은 게다.
하루종일 회색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우울한 날씨다. 건강에 조심하고, 매사에 신중함을 갖되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네가 되기를... 그럼 또.
P.S: 入學式 때의 사진 동봉한다.
1993.5.9.
너를 사랑하는 언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