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순환은 차라리 죽음의 순환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것이고, 죽는 모든 것은 먹힐 것이다. _마거릿 렌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아프다.
책『우리가 작별인사를 할 때마다』에서 죽음을 이야기한다. 저자 마거릿은 자연과 삶에 대한 죽음과 사랑, 상실.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 시골에서 만났던 동물과 식물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엔 내가 사라지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내 주위에 동물, 식물들이 하나씩 떠날 때 미리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같이 살던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열 살에 우리집 담벼락 밑에 할머니와 내가 각자 호박을 심었다. 희한하게 시간이 갈수록 내 호박은 시들시들해졌고 할머니 호박은 무럭무럭 자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내 호박을 수시로 보고 물을 주며 사랑을 줬다. 나중에 할머니가 내가 호박을 자주 만지고 물을 많이 줘서 죽어가는 거라 말했다. 충격이었다. 나는 점점 호박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잊었다. 몇 달 뒤 우연히 보니 엄청나게 커진 호박이 열려있었다. 다시 애지중지했다.
어느 날, 내가 먹던 반찬 중 호박무침이 내 호박이란 걸 알고 큰 소리로 울었다.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내가 아끼던 호박이 그렇게 삶을 마감하게 될 줄 몰랐다. 적어도 내 손으로 생명의 줄이 끊어질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원했던 건 일종의 마침표였던 것 같다. 자연이 자기 곁에 있는 것들만을 써서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낼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추정하고 결론짓는 것 말이다. 하지만 자연과 생명에 관한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나는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시작을 눈치채지 못했고 끝을 목격할 권리를 빚지지 않았다. _마거릿 렌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책 제목인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그 뒤 문장이 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가요.’이다. 이 문장은 노래가사 중 하나라 한다. 슬픈 문장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 가고 있다. 죽음 직전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건 참 다행이다. 인사 하지 못하고 영영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내가 아끼는 모든 것과 종종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도 괜찮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 당연해서 때로 소중함을 잊고 지낸다. 우리집 앞엔 작은 산이 있다. 거실에서 산을 보면 계절이 변하는 걸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밖을 잘 보지 않게 되었다. 밖에서 세게 바람이 불거나 눈이나 비가 올 때만 봤다. 그러다 집에 누군가가 놀러 왔다.
"너는 매일 이건 풍경을 봐서 좋겠다."
그때 내가 아름다운 풍경을 잊었다는 걸 알아챘다. 밖으로 나가 산에 있는 나무를 자세히 봤다. 집안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짙은 초록빛 나뭇잎이 빛에 반사되어 더 반짝였고 싱그러운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책을 읽을 때도 자연을 보듯 했다. 읽을 때 오감으로 느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덮으니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게 주는 좋은 에너지들을 흡수하지 못했다.
우리집 앞 풍경
어느 날 저녁 바깥을 내다보았을 때, 짙어가는 황혼 속에서 수컷 풍금새 한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전에 이 정원에서 그 새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예쁜 새를, 그 새가 황혼의 어스름 속에서 물 마시는 모습을 내 방 창가에 서서 지켜보던 몇 초의 순간을 자주 생각한다. 나에게 그 새는 뼈가 앙상하고 선홍색을 띤 은총의 화신처럼 보였다. _마거릿 렌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자연과 동물을 자세히 관찰해 볼 것.’
밖에 나가면 뭘 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미리 메모했다.
집 앞 산책로에 나와 강 쪽을 보니 오리가 작은 돌 위에 앉아 있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니 하얀 몸에 노란 부리, 몸 중간중간에 까만 깃털이 보였다. 처음 보는 새였다. 몸을 흔들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동물을 관찰하니 시간이 금방 갔다.
생물체를 볼 때 ‘아, 저것도 언젠가는 죽지.’라며 죽음을 먼저 떠올리진 않는다. ‘아, 너도 나도 살아있구나.’라는 걸 느낀다. 무언가를 자세히 관찰하는 건 삶의 의미를 되살리게 만든다.
모든 세상과 살아있는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다. 아주 오래전 태어났던 역사 속 인물들도 내가 본 자연들을 봤을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태왕과 조선시대의 세종대왕도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도 비슷한 풍경을 보고 살아왔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음의 순환을 맞이한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지만 아름답다.
너는 새로운 형태로 깨어날 것이다. 예전의 너로 깨어날 것이다. 내 말은, 시간이 예전의 너에게 새로운 형태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내 말은, 너는 나이가 들었고, 비통할 일이 없고, 새로워졌고, 쇠락했다는 뜻이다. 너는 둘 다이다. 항상 둘 다일 것이다. _마거릿 렌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