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한 번 놀러 갔던 친구 집이었는데 골목을 잘못 들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어디서 왔는지 안다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온 길이 보였다. 친구 집을 찾지 못했지만 내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진정한 자아를 알게 되는 순간이 마음에 길을 잃었을 때라 생각한다. 내 마음가장 약할 때 스스로를 볼 수 있다.
마음에 길을 잃어 주저앉은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였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분명 길을 잃었는데 어디로 가고 싶지 않은 게 문제였다. 요즘도 하는 일이 힘들면 길을 잃는다. 이 길이 맞는 건지 궁금하다. 그러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시작된다.
나는 길을 벗어나기를 좋아하고, 내가 아는 것 너머로 나가보기를 좋아하고, 아마 몇 킬로미터쯤 더 걸어야 하겠지만 다른 길을 통해서, 지도와 다투는 나침판에 의지하여, 도중에 만난 낯선 사람들이 알려준 천차만별의 방향 지시에 의지하여 돌아오기를 좋아한다. _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책 『길 잃기 안내서』는 길이 없어도, 잃어도 괜찮다는 저자의 다독임이다. 길을 잃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길 잃기는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다는 믿음도 희미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가 잃은 친구와 증조할머니와 고모. 할머니가 살던 곳이 양로원인줄 알았지만 정신병원이었다. 할머니는 조현병으로 오랜 치료와 약물 복용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저자는 할머니가 과거와 함께 고통이 제거되었길 바랐다. 저자는 누군가의 빈자리를 잊기 위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지만 오히려 더 또렷하게 기억되었다.
마음이 길을 잃으면 더 찾고 싶어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 나는 분명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라간 건데 우울함의 중심에 가 있었다. 별 것 아닌 일에 울컥하거나 무너져버렸다.
먼 곳의 푸름은 시간과 함께, 멜랑콜리의 발견과 함께, 상실의 발견과 함께, 갈망의 질감과 함께, 우리가 그동안 건넌 지형의 복잡함과 함께, 긴 여행에 세월과 함께 온다. _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작가는 어떤 장소나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자신의 이야기와 ‘먼 곳의 푸름’,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었다. 아마 여전히 스스로 잃어버린 길을 찾아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뭔가 잘못된 길을 간다고 여겼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를 때가 많았다. 긍정적으로 살고 싶은데 알면서도 쉽지 않았다. 몇 시간 전인 평온할 때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길을 알지 못했다. 마치 길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혼자 끙끙대며 자책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나 때문에'라는 원망이 마음에 길을 잘못 안내했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혼자만에 생각에서 벗어나 도움을 청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답을 들은 것도 아닌데 후련해졌다. 나만 상처를 가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에 안심이 되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전엔 힘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여겼다. 시간이 갈수록 상처는 쌓였고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가볍게 생각한 면이 있다. 큰 고민은 내 몫이라 여겼다. 스스로 경험해야 비로소 인생을 배우게 된다. 아파보니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길을 잃어보니 길을 아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었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말은 우리가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심지어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_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은 질주하는 말과 같다고 했다. 내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밑바닥이 더 세세하게 드러났다. 거슬러 올라가니 초라한 내 모습이 있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감정을 억눌렀다. 감정을 억지로 조절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되었다. 감정을 조절하려다 오히려 번아웃이 왔다.
한 번에 많은 변화를 주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걸어온 곳으로 한 걸음씩 돌아가면 되었다. 잘못된 길에서부터 천천히 돌아갔다. 언제 어디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되새겼다. 잘 되지 않을 땐 감정을 글로 적어 마주했다. 자책으로 가는 마음을 붙잡아 자연스레 흘려보내는 연습을 했다.
내가 누구고 어떤 목표를 두고 있는지 떠올렸다. 나는 몸이 불편하지만 나다. 간혹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매일 글을 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다.
삶에 다른 풍경을 원한다면 마음에 길을 잃어도 괜찮다. 구불구불한 길에 둘쭉날쭉한 감정을 만나더라도 나는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