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화자의 시점
나는 예전에는 소설의 줄거리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소설을 읽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 『두고 온 여름』은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가 된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다.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없어도 흥미진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소설이 물 흐르듯 읽히는 게 신기했다.
아마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 깊이 이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면을 건져 먹는 재하를 보며 저 애가 내 친동생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보기도 했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내며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다면. 서로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끈끈한 우애 같은 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나눌 수 있었다면.
나는 내 몫의 땅콩 소스를 그애의 그릇에 덜어주었다. 면을 두 볼 가득 문 채 재하는 가만히 웃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주인공 기하와 재하, 두 화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게 좋은 점은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다. 각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폭넓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바람대로 주인공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외로운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살기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기를, 원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렇다. 제 3자가 보기에는 바꾸고 싶은 부분도 본인 인생이 되면 쉽지 않다. 그러니 독자의 입장과 작가의 입장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앞으로 나도 그렇게 소설을 쓸지도 모른다.
그때 재하는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보다 더 유쾌하고 덜 어두웠던 것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지금의 재하를 보려 애썼다. 밝고, 대책 없이 목소리가 크고, 약간은 철없는 모습으로. 그럴수록 이곳에 괜히 왔다는 생각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