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천국으로 3
내가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도저히 이 사람과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끊임없이 나만 잘못했다고 말하며
내가 변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이와 함께 살다가는
내가 정말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계속 이렇게 자책하다가
내 생명까지 포기해버릴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남편에게 이혼을 말했다.
그날의 이야기는 이렇다.
남편이 근무하는 일요일 날,
나는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하루를 분주하게 보냈다.
그날은 마침 친척 집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척 집으로 향했고,
남편도 퇴근 후 6시쯤 합류했다.
저녁 식사를 할 때 남편은 첫째를, 나는 둘째를 맡았다.
첫째는 스스로 잘 먹지만,
둘째는 이제 갓 돌이 넘어 스스로 식사를 하지 못해
내가 계속 도와주어야만 했다.
시간은 무르익어 저녁 9시쯤 되었고,
분주하게 보냈던 하루가 이제 다 끝나간다는 안도감에편하게 쉬고 싶어서 쇼파에 털썩 앉았다.
그때, 둘째가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친척이
나에게 “엄마는 애 안 보고 뭐 하냐.”라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온종일 뒤치다꺼리했는데
‘엄마’라는 이유로 저런 말을 들어야 하나?
그럼 ‘아빠’는 뭐하고?
아빠는 편하게 술 마시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확 상했고,
나는 남편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하루종일 애 봤으니까 이제 오빠가 좀 봐”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은,
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하루종일 일했는데?”
나는 지금 시간이 9시인데,
이제껏 편하게 술 마시다가
갑자기 하루종일 일했다는 남편의 말이 이해가 안됐다.
“지금 퇴근한 것도 아니잖아.”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내 말에 ‘일하는 행위’를 들먹거리는 게 어이가 없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일하면 애 안 봐도 된다는 거야?”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
“그럼 애 보면 일 안 해도 된다는 거야?”
이게 지금 무슨 황당한 말이지?
나는 남편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둘째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온종일 가정 보육하는 나에게
지금 돈 벌어오라는 말이 아닌가?
고작 자기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나에게 저런 말을 한다고?
나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가슴 속에서 분노가 일었고,
이러다간 친척 집에서 소리를 치며
화를 폭발시킬 것 같아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와달라고 말하고
나 혼자 집으로 와 버렸다.
내가 온종일 애들 봤으니,
그쯤은 충분히 혼자 할 수 있겠지.
(우리 집은 친척 집 바로 맞은편 앞 동에 있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이 애들 챙겨서 집에 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술에 취해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날 밤 둘째가 아파서 기침하다 토를 했고,
나는 그 토사물을 손으로 다 받아내며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이부자리를 다시 보았다.
그래, 결국 이렇게 고생하면서 애를 보는 건 나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남편에게 돈 벌어오라는 소리나 들었다.
온종일 돌이 갓 넘은 아이에게 시달리며 지쳐있는 내게,
남편은 한 시간의 쉼조차 주기 싫어서 돈 벌어오라는 소리나 하다니.
나는 화가 너무 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다음날 남편을 본체만체했다.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똑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우리는
3일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의 3일은 내게 지옥 그 자체였다.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남편과의 단절감이 나를 더욱더 괴롭게 했다.
남편은 내가 먼저 대화를 걸지 않으면
절대 아무 말 하지 않을 사람이다.
십 년 넘게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도 있다던데,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그렇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내 자존심과 남편과의 관계 회복 사이를 갈등하다가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 싶어서 내가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아직 남편을 사랑하니까.
그래, 내가 더 사랑하니까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할 기회를 살피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남편에게 물었다.
“저녁밥 어떻게 할 거야?”
그때 남편이 화가 잔뜩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꺼.”
내 그동안의 갈등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나는 또다시 분노에 휩싸였고
분노를 넘어선 미칠듯한 무언가가
내 속에 날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동안에 단련된
모든 인내심을 동원해 꾹- 참고
“나한테 말을 왜 그렇게 해?”하고 말을 말았다.
남편도 더는 나를 자극하지 않고 아무 말이 없었다.
속에서 천불이 끓는다.
지금 확 들이받아?
백번쯤 고민한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내가 참기로 스스로 약속했으니까
내가 더욱더 노력하기로 했다.
그날 밤, 잠을 자기 위해 침대로 올라온
남편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우리 이야기 좀 하자.”
그때 남편이 하는 말.
"네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기 전까지 절대 너랑 말 안 해."
남편은 이렇게 말하고 거실로 휙 나가버렸다.
내가 남편의 손을 잡기까지,
정말 엄청 용기가 필요했었다.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하나님, 남편과의 사이가 잘 풀리게 해주세요.
우리가 서로 상처입히지 않고 대화하게 해주세요.’
근데 결과가 이거라니.
너무 참담했고,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동안의 숱한 싸움 덕분인지,
나는 이 감정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국, 이것은 한순간의 감정일 뿐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사과해야 남편이 대화를 한다고 하니,
어서 빨리 뭐라도 말을 해야할 것 같은데,
도무지 무엇을 사과하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도대체 뭐지?
나는 남편이 저렇게까지 화를 날 만한 상황이
뭐가 있을까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과거에 남편은 내가 갈등 상황일 때 피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때도 이렇게 분개하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내가 대화하다가 그냥 집으로 와버려서.
그게 그렇게 화가 났던 것일까?
나는 남편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남편이 싫어할 만한 행동은 그것 같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나 혼자 집에서 가버려서 미안해.”
남편의 연락을 기다린 지 한 시간 째.
남편은 나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용기를 내준 건 고마운데 그게 아니다.
자신에게 하루종일 육아 안 했다고 말한 게 기분이 나빴다.
그 말은 일하고 온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이며,
일하는 것도 육아하는 것과 똑같은 일인데,
그러니까 자신도 육아에 참여한 셈인데,
그런 자신에게 육아를 안 했다고 한 게 너무 화가 났다.
그 발언으로 인해 평소에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내가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경시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느껴졌다는 말들이었다.
나는 정말 억울했다.
나는 종일 둘째로 인해 지쳤으니까,
9시에라도 편하게 쉬고 싶어서
잠깐만 봐주라는 의미로 한 말인데,
갑자기 노동의 가치를 경시하며
남편을 무시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 ‘하루종일 육아 안 했다’는 식으로 말했냐,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분명히 내가 그렇게 말했고,
그건 확실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나는 그런 의도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재차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에게
너는 전혀 반성의 의지도 없으며,
지금 변명만 하고 있다고
제발 스스로 돌이켜보고 잘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번을 서로의 주장만을 반복했다.
남편의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나는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심이 있는 사람이니까.
남편을 내가 그동안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행동했던 모든 것 이면에는
내가 정말 남편을 그저 돈벌이로만 생각하고
사랑하는 척만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되돌아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나를 그동안 속여왔던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런 진심이 은연중에 남편에게 드러났고
그로 인해 남편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그 이후로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아침까지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
정말 내 잘못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곰곰이 내 행동을 돌이켜 반성하라는 말에
내 바닥 깊숙이 들여다보며
나의 못난 점을 찾아다녔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 보면서 매일 그렇게 생각했다.
이 남자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이 사람을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주고 싶다.
근데 결과가 이거였다.
내 뿌리 깊은 이기심으로 인해 남편을 상처 주는 것.
정말 잘해주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슬펐다.
내 말투 때문인가?
나는 왜 말을 이렇게밖에 못 하나.
내 의도는 정말 그게 아닌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죽도록 원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사과하고 노력했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나를 믿어주지 않고
더욱더 분노하는 남편을 보니
정말 막막하고 참담하고,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아오고, 창문 밖으로 빛이 들어오는데
이제는 이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그동안 정말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하나도 바뀌지 않는 이 현실이 너무 비참했다.
그래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진심으로.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죽는 것보단 이혼하는 게 낫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결심하니 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남편과의 관계를 포기하기로 다짐하니,
오히려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생겼다.
나는, 따뜻했던 우리의 지난날들과
사랑이라 불리기 충분했던 기억들이
격렬하게 나를 붙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포기하지 마.
너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 고통의 굴레에 더 이상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느꼈다.
높은 산 정상에 다다랐다가 내려온 다음 날과 같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고통의 끝까지 자신을 내던진 이 경험은
내 마음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비록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내 마음이 한층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내 안에 여전히 삶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를 지키고, 우리가 다시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